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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에게로..그리고 너도 견디고 있구나..

'가능'이 너무 쉬운 숙제라면 '불가능'에게로 

어느 기차역, 노숙자는 낡은 시집을 읽으며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면 무심코 눈길을 주었다     

나는 염치 불고하고 시집 제목을 훔쳐보았다

<불가능에게로>     

시인의 이름은 희미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기차는 철로에 앉은 비둘기들을 몰아내며 들어왔고 비둘기들은

도시의 눅눅한 하늘로 흩어졌으며  나는 기차를 탔다. 차창 너머로

보랏빛 시집 제목이 보였다. 내 목적지인 것 같았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 지성사. 허수경 표 4 글 인용     


기차역 노숙인이 낡은 시집을 읽는다

실제 <불가능에게로>라는 시집이 존재하는 시인의 상상력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읽는 시집 제목은 어쨌든 ‘불가능에게로’이다.

그가 발을 딛는 현실이 가능하지 않아서일까? 그는 불가능을 좇는다. 

기차를 타고 떠나며 차창 너머를 바라보는 시인도 그 보랏빛 시집의 제목 ‘ 불가능에게로’가 자신의 목적지인 것 같다고 고백한다.

 


1월 1일, 새해 새날 아침이다.

해가 따사롭다. 어쩐지 ‘불가능에게로’를 향해 가야 할 것만 같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어떤 것들을 찾아서...     

에드몽 자베스는 “쓴다는 것은 기원에 대한 정열을 갖는 일이다. 글쓰기는 바닥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바닥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다. 따라서 쓴다는 것은 목적지에 가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목적지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고 이야기했다.  

   

천장에 이르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라 바닥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바닥은 늘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기에... 

목적지를 향해 가서 멈추려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넘어서는 것이라면

결국 우리는 끝없이 바닥에 이르러야 하고 끝없이 불가능을 향해 가야 한다.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황지우 『겨울산』  부분 발췌     


황지우 시인의 시 『겨울산』의 첫 문장으로 새해를 열고 싶다

그의 말처럼 어차피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이 세상에 세 들어 사는 것

고통은 일종의 ‘월세’ 같은 것이라고...

'너’는 겨울산이기도 하고 우리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이루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은 무언가를 견디는 일이다

겨울 산이 그러하고 겨울나무들이 그러하듯, 돌과 바위가 그러하듯...

등산로 입구 낡은 의자가 그러하듯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부분 발췌

        

어린 눈발들이 하필이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린다. 철이 없어서일까. 세상을 몰라서일까. 두려움이 없어서일까. 강은 떨어지는 어린 눈발들의 소멸에 가슴 아프다.

밤새도록 긴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어린 눈이 뛰어내려도 곧바로 소멸하지 않을 공간을 만든다.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살얼음을 깔아서 어린눈이 뛰어내려도 바로 소멸하지 않게............     

같은 눈을 보고도 시인은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경이롭다. 

어린 눈, 젊은 눈, 늙은 눈..... 아... 세상의 눈(雪)에도 연령이 있겠구나.

무모한 눈, 침착한 눈, 불같은 눈, 차분한 눈, 평범한 눈.... 그저 그런 눈....

세상의 눈(雪)에도 표정과 성격이 있겠구나.

     

세상을 잘 알지 못할 때 거침없이 무언가에 몸을 던진다. 어린 눈처럼.......... 돌아보면 그 어린 눈을 보듬어 준 무언가가, 누군가가 분명 있었다.

생각해 보면 말이다.           


떠나야 할까? 머물러야 할까?

머물 수 있다면 머물러라. 떠나야 한다면 떠나라

어떤 자는 달리고, 어떤 자는 웅크린다

늘 지키고 있는 불길한 적 ‘시간’을 속이려고!

아아! 쉼 없이 달리는 자들이 있다

                       샤를 보들레드 『여행』 부분 발췌       

   

인생. 머무름과 떠남은 공존할 수 없지만

머무르면서 떠나고 떠나면서 머무르려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결국은 시간을 속이며 쉼 없이 달려야 한다.


불가능에게로

월세처럼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고통'을 품고 지상에 세 들어 사는 지구별의 세입자가 되어

'너도 견디고 있구나'를 중얼거리며.......... 2024년 새해새날/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 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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