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겨울을 건너는 법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며 생각한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9년 동안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사제 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역관 이상적에게 보낸 편지에 그려 넣은 그림이다.       

 추사는 논어의 ‘자하’ 편에 나오는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라는 글을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글에 인용하였다.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측백나무)의 푸름을 더 깨닫게 되는 것처럼 위리안치의 유배형을 받은 스승을 잊지 않고 변함없는 마음을 보여주는  제자의 인품을 빗대어 표현한 그림이다.   

  


달창이 있는 소박한 집을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두 그루의 나무가 있다.

 맨 오른쪽 한 그루는 늙은 소나무가 분명하지만 나머지 한 그루와 왼쪽 2그루를 두고 무슨 나무인지 해석이 분분했는데 초기 많은 자료에서는 잣나무로 번역했다가 지금은 측백나무로 보는 견해가 많다고 한다. 

가지가 휜 소나무와 달리 잣나무(측백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서있다.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소박한 집, 욕망과 탐욕을 버린 선비의 마음이 담겨있는 듯하다. 인간이 기거하는 집은 그림 속 자연에 비하면 더없이 작다. 그 작은 집 안에 거주하는 인간은 또 얼마나 작을까. 자연 앞에, 그림의 여백 앞에, 겨울이라는 거대한 계절 앞에... 

동그란 달창을 지닌 집에 사는 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림 속 집은 결핍과 결여로서의 집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비워버린 ‘비움’의 집이다.  어쩔 수 없는  '없음'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없음'을 선택한 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때로는 바람이 지나가는 걸 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바람이 지나가는 걸 듣는 것만으로도

태어날만한 가치가 있구나     

             - <겨울을 건너는 법> 시 일부/  송종찬      


달창 집안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깊은 밤 부엉이 울음소리를 듣고 나무가 어깨에 어린 눈을 받아주는 소리를 듣는다.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타악기 소리를 듣는다.     

겨울은 들어야 할 것이 많은 계절이다. 말하지 말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계절이다.     

집을 사이에 두고 두 그루의 나무들의 수런거림을 듣는다

세상 모든 것들이 변해가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깨닫게 하는 계절이다.


소한 추위가 대한 추위보다 더 하다고 한다. 무사히 소한을 지났나 싶은데... 오늘은  날카로운 바람이 분다. 아침에는 약간의 눈이 바람에 흩뿌렸다. 

그 바람 속에도 동백나무는 꽃봉오리를 품고 있다. 나무 안의 뜨거운 것들이 이 겨울을 견디게 하나보다...

듬성한 나무와 나무사이로 바람은 자유롭게 걸어간다. 무성한 잎들이 져버린 겨울의 숲 속, 소리들만 가득하다.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


한 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비로소 각성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겨울은 한 해의 끝과 다른 한 해(새해)의 시작을 움켜쥐고  느슨해지지 말라고 정신의 각성을 촉구하는 계절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무엇을 했는가... 다시 ‘세한도’를 바라보면 새 날을 다짐하는 아침이다.

저마다의 겨울을 잘 건너가야 한다...... 머지않아 다가올 어떤 봄날을 위하여 /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선정


작가의 이전글 불가능에게로..그리고 너도 견디고 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