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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에서 생을 불태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우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불태워야 할까....

한 해의 끝과 시작에서      


한때 우리는 닥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때 세상은

서로 꼭 맞잡은 두 손에 들어갈 수 있으리 만치 작았다

웃으면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했다.

기도문에 나오는 해묵은 진실의 메아리처럼 평범했다.

                                 -출판되지 않은 시들 가운데서 - 부분 발췌 / 바스와봐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 Koniec i  poczatek )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     

.....     

누군가는 허우적대며 걸어가야 하리.

소파의 스프링과

깨진 유리조각,     

......     

누군가는 벽을 지탱할

대들보를 운반하고

창에 유리를 끼우고

경첩에 문을 달아야 하리.      

.....

빗자루를 손에 든 누군가가

과거를 회상하며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누군가가

운 좋게도 멀쩡히 살아남은 머리를

열심히 끄덕인다.     

.....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이 풀밭 위에서

....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1993) 부분 발췌          


끝과 시작의 경계에 서있다

이른 새벽... 새벽미사 일정이 취소된 걸 잊어버리고.. 새벽미사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모든 것이  잠든 새벽.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딘가에선  대설 주의보가 내렸고 또 어딘가에선 봄날이다...

한해의 끝과 다른 한 해의 시작이 교차하는 지금, 누군가의 한 해는 대설주의보가 내렸고 폭풍이 몰아쳤으리라. 또 누군가의 한 해는 달콤한 연둣빛 봄비가... 또 누군가의 한 해는 매미의 여름 같았을까, 흩어지는 낙엽 같았을까.... 안개 같았을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 끝과 시작>의 첫 구절에 이렇게 적고 있다.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시속에 등장하는 전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전쟁의 끝이 평화의 시작은 아니리라... 무엇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삶도 전쟁이 아닌가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천둥번개와 벼락, 소나기 호우주의보 대설 경보와 주의보..

계절에만 그런 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기상이변은 늘 존재한다

풍경일 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자는 인생의 내공이 뛰어난 자일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혜안을 갖지 못한다

같은 풍경 속에서도 길을 잃고 허우적 거린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라는 말을 하였을까?

     


다시 한 해의 끝에서 ‘삶을 붙태우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불태우라’는 말을 생각한다

삶을 태우려다 어설프게 나를 태워버리고... 결국 나는 타버린 재로 남아버린 것 같지만

또다시 저 말이 주는 유혹에 나를 태우려 한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수시로 길을 잃는다. 끝없이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싶은 나는

아직 용기가 남아있는가... 다만 결기뿐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 속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장미가 심하게 흔들린다.

저 앙상하고 보잘 것 없는 가지 속에 빨간 장미가 될 가능성이 숨어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고요하다.     

전쟁이란.... 마음 안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갈등이다          

"한때 우리는 닥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때 세상은

서로 꼭 맞잡은 두 손에 들어갈 수 있으리 만치 작았다"     

한 때 닥치는 대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던 세상은

행복했던 때인가...  닥치는 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은 우리 안의 무언가가 변해버렸기 때문인가.


 D.H 로렌스는 문학의 가장 지고한 목표가 “떠나기. 도주하기, 지평선을 가로지르기, 다른 삶으로 스며들기”라고 이이기 했다.

한 해의 끝과 시작에서 나는 다시 문학이라는 장치를 빌어 (거창하게 말한 것) 사실은 쓴다는 지극히 사소한 행위를 통해 어딘가로 떠나고 어딘가로 도주한다.

지평선을 가로질러 나의 한계를 넘어서고 다른 삶으로 스며들기를 바란다     

다른 삶이란 결국 ‘나와는 다른 삶’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삶’이다...

나는 나를 끝내 던져버릴 수 없다. 다만 지금과는 다른 나를 만나야 한다

지난 시간............. 삶을 태운다는 거창한 명목하에 나를 너무 많이 태워버렸다.....

볼품없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아는 것.... 그  어딘가에 숨은 가능성을 찾는 일...

바로 그것이 한 해의 끝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녀의 말처럼....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이 없으니..../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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