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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들소를 그리는 이의 붉은 마음

알타미라 동굴벽화 / 과거로부터 온 편지

붉은 들소를 그리는 이의 마음

과거로부터 온 편지     

          

*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

 선사시대 유적지인 알타미라는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에 위치한 동굴이다.

1868년, "모데스토 쿠빌리아스"라는 사냥꾼이 잃어버린 개를 찾아 헤매다 처음으로 알타미라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고 8년 후 이 지역의 고고학자였던 마르셀리노 사우투올라(Marcelino Sanz de Sautiola)가 처음으로 조사했는데 그의 딸 마리아가 동굴 안쪽 거대한 벽화를 처음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BC 15,000년 ~ 10,000년에 그려진 그림인데 주로 붉은색·검은색·보라색으로 그린 들소가 있고 2마리의 멧돼지, 여러 마리의 말, 1마리의 암사슴 등이 그려져 있다.

사냥이 잘 되게 해 달라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그린 동굴벽화이다. 이러한 동굴벽화는 피레네 산맥을 중심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에 100여 곳 분포되어 있다.  (인용자료 부분 발췌)

붉은 들소를 보라.

뿔과 도드라진 근육. 눈동자. 발굽...

붉은 들소를 그리는 이의 모습이 궁금하다.     

동굴에 그린 그림이 사냥에 성공하기 위한 주술적 용도인지, 종교적 의미인지,

사냥할 동물의 목록인지, 사냥한 동물의 목록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세월을 거슬러 끝없이 살아있는 들소.  이 동물 앞에 서 있을 낯선 사람의 모습을 생각한다

혼자서는 사냥할 수 없어 무리 지어 사냥에 나섰을....

거대한 들소 한 마리는 당분간 굶주림을 면해주리라.

먹잇감으로서의 동물을 이토록 예술적으로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 동물들을 표현할 문자 언어의 발달이 더디었기에 최대한 실물에 가까운, 살아있는 것처럼 역동적인 모습을 구현하기 위함이었을까? 

     

대체 무엇으로 저토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벽화를 남길 수 있었을까.

제대로 된 채색 도구 하나 없는 시대에 땅 속에서 캐낸 적철광이 섞인 붉은 흙에 죽은 동물의 피를 섞어서 채색하는 것이 전부였을 터인데... 피를 바른다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처럼 여기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테니까.

인류학자 로르브랑세는 들소의 몸통을 붉게 칠할 때 그 넓은 면적을 쉽게 칠하는 방법의 하나로 원시적인 물감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원하는 부위에 집중적으로 뿜어내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양손 가득 붉은 안료를 묻혀 들소의 몸을 채색하였든. 입에 붉은 안료를 머금고 있다가 스프레이처럼 뿜어내었든.... 그들은 전위 예술가가 분명하다. 

붉은 들소를 채색하는 자신의 몸도 거룩한 피로 채색이 되어있었을 것.

피가 흐른다. 피가 돈다는 말은 살아있음의 상징이다.

     


<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 


세월은 가고 순간들이 돌아온다

가까운 방에 들리는 너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가?

여기가 아닌 거기가 아닌 곳에서 : 너는 듣는다

바로 지금이라는 다른 시간 속에서

시간의 발걸음 소리를 너는 듣는다

무게도 장소도 없는 현실들을 만들어가는 시간,

마당으로 흘러들어 가는 빗소리를 들으라,

밤은 숲 속에서 이미 더욱 깊은 밤,

이파리들 사이 번갯불이 머문다.

표류하는 희미한 정원

들어오라, 너의 그림자가 이 벽지를 채우게 하라.          


옥따비오 빠스-  부분 발췌 

   

동굴 예술가.... 그 혹은 그녀(남자와 여자의 일이 나누어있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역사적 의미보다는 상상력에 의지하여)는 무리 중 벽화를 담당한 한 명이었을까. 자발적인?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아니면 거룩한 일이라 모두의 추대로?

구석기인의 예술적 표현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벽화로 짐작할 수는 없지만 벽화를 그리는 그 혹은 그녀, 누군가는 안료를 섞어주고 누군가는 온몸이 붉은색으로 물들었으리라. 

해가 뜨고 동굴 안에 붉은 들소를 환하게 비출 때 사냥을 나가고... 해가 지고 누군가는 살아 돌아오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하고.... 사냥한 들소의 몸을 가르고...  빨갛고 뜨거우며... 선명하고 신성한 피를 벽에 그려진 들소에 바르고... 

동굴 안에  짙은 어둠이 내릴 때... 어둠 속 들 소그림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무언가를 남기려 했던 몸짓....


모든 문명은 폐허로부터 오고

모든 문명은 과거로부터 오고

모든 무명은 무(無)에서 온다.     

동굴 예술가의 땀에 젖은 등에서, 동굴 예술가의 눈빛에서,  피의 색채로 범벅이 된 그의 팔에서..... 무게도 장소도 없는 현실이 그 혹은 그녀가 마주한 동굴벽에 멈춰있다     

여기가 아닌 거기가 아닌 곳에서.......

들소의 울음을, 들소의 발자국 소리를, 들소의 절규를 들었을까

먹고 먹히는 것이 삶의 전부이고, 신앙이며 당연한 진리였을 그 시대에 대체 왜 동굴  벽 앞에 섰을까.

그들에게 후대란, 그들에게 미래란 없는 단어...

그에게는 오직 벽화를 그리는 그 순간만 존재하는 것.

          

얼마나 오래도록 들소를 보았을까?

먹잇감으로서가 아닌 ‘들소’로서의 ‘들소’를 

들소의 강렬한 눈빛과 그의 눈빛이 마주치고 들소의 꿈틀거림이 그의 꿈틀거림과 뒤섞였으리라.

그들은 들소가 되고  들소는 그들의  몸 안에서 뛰놀았으리라./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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