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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간다

앙티브 해의 저 비스듬한 한 그루의 나무에 위로받으며. 

<앙티브>는 모네가 니스와 칸 사이 지중해 연안 마을에 머물며 그린 작품이다. 모네는 앙티브에서 거주한 적이 없지만 그는 1888년 앙티브에 머물며 집중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앙티브 Antibes>, 1888

비스듬한  나무 한 그루가 그림의 전면을 차지한다. 나무의 뒤로는 앙티브만이 있고 그 너머는 에스테렐 산맥이 있다. 작품 명은 <앙티브>인데 사실 그림 속 앙티브는 연하늘빛과 연푸른 빛이 뒤섞인 잔잔한 바다처럼 보일 뿐 그다지 강렬한 이미지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 시선은  비스듬한 한 그루의 나무에 집중된다.

나무는 바람이든, 태풍이든.... 어떤 다른 요인으로 인해 한 방향으로 굽어있다.

최승자 시인의 말처럼 어떤 나무들은 바다가 그리워 뿌리마저도 바다를 향하는 것일까. 염분 냄새 풍기는 바다를 좇아 뿌리의 후각은 얼마나 예민하게 작동하였을까.


어떤 나무들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것을 향해 굽어가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움을 좇아 비스듬해진다면 그나마 행복하다. 어쩔 수 없이 비스듬해져야 하는 상황, 세상의 바람이 직립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은 두렵다.

앙티브 해의 나무는 세파에 견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스듬히’를 택한 것일까. 

아니면 자발적, 능동적 의지로 바다에 닿고자 ‘비스듬’해진 것일까.     


산에 가보면 안다

그 어떤 나무도 온전한 직립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립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단어인지를 실감한다.

무엇을 위해서든, 무슨 이유로든... 대지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조차도 온전한 직립을 이루지 못한다. 

비스듬히 기대고 비스듬히 의지한다.

수많은 ‘비스듬히’들이  저마다의 각도로 서로에게 ‘비스듬히’가 되어준다.          

프랑스 시인 에르베 바진은 “강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른다. 세월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간다.”라고 이야기한다. 

앙티브 해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바다의 물이 흐른다. 그것을 바라보던 모네의 시간도 지나갔다. 세월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동일한 혹은 서로 다른 풍경 앞을 우리가 지나간다. 비스듬한 나무 한 그루를 세워두고... 비스듬한 한 그루의 나무의 모습에 위로받으며  지나간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저 나무도 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간다고 중얼거리며

..... 나는 오늘을 건너고 있다. 그리고 지나간다. 생의 한 지점을.../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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