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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알제같은 공간이 그리운 여름,고독과 펄떡이는 피

모든 꽃들은 열매가 되려 하고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한다

카키에게 알제란 ..... 찬란함과 남루함을 동시에 제공하는... 햇빛의 무게, 새들의 날개소리가 그리워 지는 곳.


알제의 여름      

    

우리가 어떤 도시와 주고받는 사랑은 흔히 은밀한 사랑이다. 

파리, 프라하 심지어 피렌체 같은 도시들은 웅크리고 돌아앉아 있어서 그것 특유의 세계에 테를 두르듯 한계를 짓는다. 그러나 알제는, 그리고 그와 더불어 바다에 면한 도시들처럼 몇몇 특혜 받은 장소들은, 입처럼 혹은 상처처럼 하늘로 열려 있다. 우리가 알제에서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나 다 향유할 수 있는 것,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바다, 어떤 햇빛의 무게, 인종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거리낌 없이 주어진 풍성한 선물 속에는 더욱 은밀한 향기가 담겨있다.....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소리가 그리워진다.          

알제가 요구하는 것은 혜안을 지닌 영혼, 즉 위안받으려 하지 않는 영혼이다. 이곳은 우리가 신념의 행동을 하듯 명징한 의식에 따른 행동을 하도록 요구한다. 제가 먹여 키우는 인간에게 저의 찬란함과 남루함을 동시에 제공하는 이곳은 얼마나 기이한 고장인가... 이곳에서는 누구나 타고난 풍부한 관능적 감각이 지극한 헐벗음과 일치한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한결같이 젊은 사람들의 고독과 펄떡펄떡 뛰는 피를 요구한다. 

 시작과 종말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이 고장의 여름이다. 여러 달 동안 시내의 거리는 사람 하나 안 보일 정도로 황량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과 하늘은 남는다.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항구 쪽으로 그리고 미지근한 바닷물, 여인들의 갈색 육체 같은 인간의 보물들을 향하여 내려간다. 이 같은 풍요를 만끽한 그들은 저녁이 되면 기름 먹인 천으로 된 식탁보와 석유 등이 고작인 그들 인생의 무대장치 속으로 되돌아온다... 8월이 깊어지고 햇볕이 거세어져 감에 따라 집들의 흰 빛은 더욱 눈부시게 되고 사람들의 피부는 더욱 짙은 열기를 띤다. 태양과 계절에 따라 돌과 육체가 주고받는 대화......

비밀스러운 신호와 부름으로 가득 차있는 곳...

                                                  알베르 카뮈 『결혼. 여름 』        

      


헤르만 헤세에게 여름은....


나는 햇볕에 푹 읽을 용기가 있다. 나는 숙성되기를 갈망한다. 죽을 용의도 있고 다시 태어날 용의도 있다. 세상은 그 이후로 아름다워졌다.

....     

이 모든 것은 이제 다시 와야만 한다. 여름, 곡물밭의 찌는 듯한 열기와 숲의 서늘함, 갈대가 무성한 호숫가에 드리워진 부드러운 저녁놀, 정오의 파랗게 빛나는 하늘 아래서 만끽한 뜨거운 여정과 웅장하고 거세게 울리는 뇌우, 봄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지만 사실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는 여름을 기다리는 때이다... 태양과 지구가 사랑하고 투쟁하면서 서로 좀 더 가까워지면...

  그때가 되면 밤나무들은 이해할 수 없이 풍부하고 화려하고 하얗고 붉은 꽃잎에서 빛을 발산하고 그때가 되면 재스민 꽃들은 감각을 마비시키는 듯한 자욱함 속에서 달콤하고 격렬한 향기를 내뿜는다.... 그때가 되면 검은 숲의 땅은 발효하고 어디에서나 이글거리며 거칠게 도취된 생명의 열기가 은밀하게 요동친다. 여름, 진정한 여름은 짧기 때문이다.     


여름의 한 복판을 건너고 있다. 절기상으로는 이미 입추를 지났다. 카뮈의 여름과 헤르만헤세의 여름을 읽으며 태양처럼 강렬했던  두 사람을 생각한다

카뮈의 표현을 빌면 찬란함과 남루함을 동시에 제공하는 알제에서는 누구나 타고난 관능적 감각이 요동친다. 알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결같이 젊은 사람들의 고독과 펄떡펄떡 뛰는 피를 요구한다.      

. 8월이 깊어지고 햇볕이 거세어져 감에 따라 집들의 흰 빛은 더욱 눈부시게 되고 사람들의 피부는 더욱 짙은 열기를 띤다. 태양과 계절에 따라 돌과 육체가 주고받는 대화......

비밀스러운 신호와 부름으로 가득 차 있는 곳...     

카뮈의 펄떡이는 심장을 요구하는 알제와 같은 곳이 내게 있을까. 

여름을 지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무성한 초록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초록도 지친 것처럼 보이는 여름의 한 복판. 흐느적거리는 열기 속에 새들의 날갯짓은 변함없다. 

헤세는 햇볕에 푹 읽을 용기가 있고 스스로 숙성되기를 갈망한다고 적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이제 다시 와야만 한다고.. 여름,  검은 숲의 땅이 발효하고 어디에서나 이글거리며 거칠게 도취된 생명의 열기가 은밀하게 요동치는 그 여름. 여름, 진정한 여름은 짧기 때문이라고..  


헤세의 팔월... 팔월말... 그리고 늙어가는 여름... 시든 잎

여름 중 가장 아름다운 하루였다.. 여름은 점차 짧아지는 날들로 농축된 듯 빛나고..

여름은 늙고 지쳐서 가혹한 손들을 내려뜨린 채... 잠들고 소멸하고 사라진다.


<팔월>     

여름 중 가장 아름다운 하루였다.

지금 그것은, 조용한 집 앞에서

꽃향기와 감미로운 새들의 날갯짓 속에서

되돌아올 수 없이 은은히 울려 퍼진다     

이 시간에 여름은, 가득 찬 그의 술잔에서

붉게 타오르는 놀 속으로

금빛 샘물을 넘칠 듯 부어 넣어

그의 마지막 밤을 자축하고 있다

        



<팔월 말>     

우리는 이미 포기하고 있었으나. 다시 한번

여름은 그 위력을 되찾았다.

여름은, 점차 짧아지는 날들로 농축된 듯 빛나고,

구름 한 점 없이 작렬하는 태양을 자랑한다.

...     



<늙어가는 여름>       

   

여름은 늙고 지쳐서

가혹한 손들을 내려뜨린 채

땅 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끝이다

여름은 그 불꽃을 흩뿌렸고

그의 꽃들을 태워버렸다     

모든 것은 그렇게 되어 간다. 결국에 가서

우리는 지쳐서 되돌아보며 추위에 떨면서 빈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절망한다, 언젠가 행복이 있었던가

.....

한 때 여름은 봄을 쳐 없애고

자신이 더 젊고 더 강하다고 알고 있었다

이제 여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

잠드는 것.... 소멸되는 것........ 사라지는 것이다          

   



여름'의 어원이 '열매를 열음'에서 왔다는 말이 있다. 생명이 싹을 틔우는 봄을 지나 햇빛과 물이 풍족한 여름은 많은 열매가 열리기 좋은 계절이다.

‘여름’은 ‘녀름’의  ‘ㄴ’이 두음법칙에 따라 떨어져 나간 것이라는 설도 있다. 15세기의 『두시언해』에 보이는 “괴외히 녀르메 나조히 몬져 외오(寂寂夏先晩)”의 ‘녀름’이 그것이다. 고요한 여름에 일찍 저녁이 찾아온다고 노래한 것이다.


영어<summer>는 고대어는 sumor (hot season of the year)로서, 원시 게르만어 sumur 에서 유래하였는데 르완다어 sambura는 지붕을 열다 (to take off roof, reveal publically)의 뜻이라고 한다. 지붕을 열 정도로 가장 더운 계절을 의미 한다.      


겨울에는 이 뜨거운 여름을 그리워할 것이다. 

대지가 열기로 달궈지고... 쉼 없이 꿈틀거리는 것들로 가득 찬.  광기와 허무, 도발과 권태로 가득한...          


모든 꽃들은 열매가 되려 하고

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한다

영원한 것은 지상에 없다.

변화와 도주 밖에는     


헤르만헤세 <시든 잎> 부분      

    

모든 봄은 여름이 되려 하고 모든 여름은 가을이 되려 하고 모든 가을은 겨울이 되려는 것인가.     

변화와 도주 외에  영원한 것은 지상에 없다고 이야기한 헤세도 없다. 

    


너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의 마음의 안정을 잡아채는 것은 무엇이냐?

네 방문의 손잡이를 더듬는 것은 무엇이냐?

거리에서 너를 부르면서도

열린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아아. 네가 방해하고 있는

네가 그 마음의 안정을 잡아채고 있는

네가 그 방문의 손잡이를 더듬고 있는

네가 거리에서 부르면서도

그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바로 그 사람이다.     

   - 프란츠 카프카 시선집 발췌-


올여름 내내 무력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내게 카프카의 시는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 같다. 무기력함인지, 계절 탓인지... 세월 탓인지...

그 방문의 손잡이를 더듬고 있으면서도...

그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이는 바로... 너라는 시로 읽혔다.

분명 시에서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되어있는데..  

  

한바탕 지나가는 소나기가 내렸다. 새들의 날갯짓이 빨라졌다. 갑자기 비가 내릴 때 저렇게 많은 새들은 모두 어디에서 비를 피할까.

여름이다...... 열매가 많아서 열음이든 지붕을 열어야 해서 여름이든....

마음만 분주하다.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는 것만 같다.


모든 꽃들은 열매가 되려 하고

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한다는데....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함인가... 대체...

날씨 탓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석연치 않다.

카뮈와 헤세와 카프카의 여름은 찬란했으리라

그 찬란 속에 그늘도.....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도.. 일탈도 무기력도 있었으리라.

8월이다. 여름의 절정이다.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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