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력을 완화시키는 쿠션 같은 베개.
베개
옆으로 누운 귀에서 베개가 두근거린다
베개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난다
동맥이 보낸 박동이 귀에서 들린다
심장이 들어오고 나가느라
베고 있던 머리가 규칙적으로 오르내린다
베개와 머리 사이엔 실핏줄들이 이어져있어
머리를 돌릴 수가 없다
숨소리들이 모두 입술을 벌려
베개에서 출렁거리는 리듬을 마시고 있다
고막이 듣지 못하는 소리가
잠든 귀를 지나 꿈꾸는 다리로 퍼져간다
소용돌이치는 두근두근을 따라
온몸이 그렇게 동그랗게 말려 있다
김기택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베개...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그 밤을 베개는 안다. 어떤 슬픔이 몰려오던 밤 눈가에 고인 눈물이 베개로 흘러내리던 기억도 잠을 자기 위해 천장을 향해 누울 때
베개는 몸의 중력을 완화시키는 일종의 쿠션 같은 것이다.
베개에서는 사람의 냄새가 난다. 희로애락의 냄새. 삶의 냄새......
햇살 고운 날. 베개를 햇볕에 넌다. 베개에 스며든 젖은 기억들을 말리기 위해,
베개는 배시시 웃으며 넉살 좋은 배를 드러낸다.
햇살들이 깔깔거리며 마구마구 쏟아져 내린다. 세상 좋아 보이는 푹신한 몸 위로.
베개와 머리 사이에 실핏줄들이 이어져있어 나는 함부로 머리를 돌릴 수 없고
내 심장 뛰는 소리와 베개의 박동소리가 일치한다.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밤새도록 뒤척이는 소란을 다 받아주고... 흐느낌을, 때론 베개를 향해 내리치는 분노의 무게를... 고개를 파묻고 킥킥거리던 그 웃음을, 고독과 외로움을, 걱정과 번민을 받아들인다.
목이 편한 베개를 찾아 수시로 베개를 바꾸곤 했다. 베고 눕기에 편하지 않으면 밤새 뒤척였다.
붙박이장 한 구석에는 오래전 혼수로 가져온 청색과 홍색 비단옷을 입은 동그란 베개가 있다. 당시 유행이었을 것이다.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청색과 홍색 비단 이불과 베개가 세트로 혼수 용품에 들어있던 때가 있었다. 단 한 번도 배어보지 않은 베개, 베고 잠들기에는 상당한 높이가 있는 그 베개가 붙박이장 속에 잠들어있다. 결혼을 증언하는 증인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청, 홍색 비단옷에도 사람의 온기가 묻기를...
어젯밤, 베고 누웠던 흔적이 묻어있다.
볼우물처럼.... 또 나의 하루가 그곳에 고여 있다.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밤새 삶의 무게를 받아주느라 고달팠을... 나의 충직한 베개가 비로소 편안히 누워있다.
달력을 또 한 장 넘겼다.
벌써 9월이다...
한낮의 태양의 눈빛이 순해졌다./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서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