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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빙하기 역'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내 속의 고아가 물었다, 어디 슬펐어?.../ 허수경

<빙하기의 역 >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얼어붙은 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내 속의 할머니가 물었다, 어디에 있었어?

내 속의 아주머니가 물었다, 무심하게 살지 그랬니?

내 속의 아가씨가 물었다, 연애를 세기말처럼 하기도 했어?

내 속의 계집애가 물었다, 파꽃처럼 아린 나비를 보러 시베리아로 간 적도 있었니?

내 속의 고아가 물었다, 어디 슬펐어?

.....

왜 나는 너에게 그 사이에 아무 기별을 넣지 못했을까?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

빙하기의 역에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

우리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

아이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낙과처럼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을 단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내 속의 태아가 답했다, 잘 가

허수경 시집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수록


1월의 종반을 향해 간다.

새해 새날의 다짐이 희석될만하면 패자 부활전 같은 음력 설날이 기다리고 있다.

허수경 시인의 <빙하기의 역>에서

오랜 시간이 흘러 얼어붙은 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다시 마주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에게 묻는다

내 속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

내 속에 살고 있는 젊은 여자, 점점 늙어가는 여자...

내 속에 살고 있는 잠재적 할머니가 될 여자에게

내가 살아온, 살고 있는, 살아갈 날들에 대해 묻는다.

같은 나일까?를 끝없이 의심하면서

거울에 비친 여자를 다른 사람 보듯 바라본다.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는 시인의 말에 동의하면서..


빙하기의 역에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

우리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

아이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낙과처럼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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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에서...

빙하기 같은 생의 시간에서 손가락 사이로 덧없이 빠져나가는 것들을 바라본다.

인생이란 빙학기 역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 볼이 빨개지고... 발이 시려오는 곳

내 안의 나를 차례대로 불러내어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눈다.

아이, 젊은 여자, 늙어가는 여자, 늙어버린 여자, 늙은 여자.. 잠재적 노인...... 그리고 세상에 없을 여자..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사실은 이 여러 자아 가운데 하나의 자아만을, 미리 정해져 있는 특정한 하나의 자아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만. /<생의 한가운데에서> 루이 저 린저


수백 개의 다른 자아는 어느 것 하나 진정한 자아가 아닌 듯싶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모두 합쳐야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는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니나의 말은 확신이 들어있다.

한때 루이저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주인공 니나붓슈만을 닮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니나는 냉소적 광기 혹은 광기 어린 냉소. 무엇이든 생에 대한 확신과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만큼 세월이 흐른 뒤.. 나는 확신을 잃어간다. 내 안의 어느 모습도 내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허수아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대역’을 하고 있는 듯 한 느낌

나는 어디에 있을까?


고모할머니조차도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고 계세요. 서서히 찾아오는 죽음, 누런 살이 부어오르는 모습, 끔찍한 붕괴의 과정,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육체의 자기주장...

저녁때쯤이었죠. 할머니는 안락의자에 앉아있었고 나는 아주 오래된 사진들을 찾아냈어요. 그 사진 속 고모는 예쁘고 젊은 처녀였어요. 아름다운 신부. 그런데 지금 저기에 늙고 추악한 여자가 있는 거예요. 구역질이 날 정도의...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인간이 정신적으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면 삶은 끔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있는 이 늙은 여자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할머니의 파멸은 할머니의 파멸만은 아니죠.

늙고 부어오른 몸은 반송장 같았어요. 불안을 느끼고 빨리 밖으로 나갔어요. 집 뒤 정원에는 과꽃과 달리아를 심은 적이 있었죠. 꽃을 피우고 있었죠.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봐라. 너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에,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들어가라. 노인을 보고 너 자신을 보라.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할머니가 막 운명하시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마치 종을 치다가 갑자기 중단한 시계처럼 기침이 딱 멈추고 축 늘어졌어요. 죽음이 찾아온 거예요.

루이저 린저 <생의 한가운데> 중에서


예쁘고 젊은 처녀, 아름다운 신부, 추악하고 늙은 여자.. 구역질 날 정도로

니나는 고모의 사진첩에서 젊은 고모의 모습을 보면서 놀란다.

노화라는 자기 붕괴의 모습..

육체적인 변화를 할머니 혼자만의 파멸이라 할 수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의 파멸일 것이다.

노화를 파멸이라 부르는 것은 잔인한 표현일 수 있다. 노화는 순리 같은 것이지 파괴나 파멸은 아니니까.

다만 노화에 끌려가고 싶지는 않다.

당연한 수순 같은 것일지라도....

끝없이 삶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싶은 것. 그러면서도 그 '책임'이란 단어가 주는 부담이 두렵다.

고개를 돌려 내 주위를 바라본다

너무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 봄이 오면 조금씩 덜어내야겠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움켜쥐고 있었단 생각을 한다.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나만의 것.

나만의 시간. 나만이 해결해야 할 일들

어린아이. 여자. 젊은 여자. 늙어가는 여자. 늙은 여자. 할머니..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없을 어떤 것.

주말부터 연휴가 이어진다. 그 시간을 잘 보내려 한다. 나를 찾으며/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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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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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4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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