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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마리솔 에스코바르 <여자들과 개> 야성을 잃어버린 여자들..

삶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삶이고 남을 위해 태양으로 빚은 빵

우리 모두 남인 우리라는 존재

....

삶은 항상 다른 것, 항상 거기 있는 것, 멀리 있는 것

너를 떠나 나를 떠나 항상 지평선으로 남아 있는 것

옥따비오 빠스 <태양의 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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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수집가의 시간> 제2부 빨강의 몸짓, 자기 안의 야성을 입기 부분


마리솔의 『여자들과 개』, 1963∼1964,

‘여자들과 개’(1963∼1964년·사진)는 베네수엘라계 미국 조각가 마리솔의 대표작. 본명은 마리솔 에스코바르인데 ‘마리솔’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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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다른 여러 가지 재료들로 만든, 상자 같은 형상의 작품들로 유명하다. 부모는 베네수엘라인이고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로스앤젤레스와 파리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50년 뉴욕 시로 가서 아트 스튜던츠 리그와 한스 호프만 학교에서 공부했다.

초기부터 나무를 주재료로 해 거친 조각품을 만들었다. 1960년대에 혼합재료로 된 군상 작품들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 작품들은 블록 모양으로 뜬 석고나 기성품·장비 등에 채색을 하고 형태를 약간 변형시킴으로써 무표정한 풍자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저명한 인물들을 풍자적인 모습으로 조각한 것이 유명하다. (부분발췌)


중산층 여성들과 아이, 개의 모습을 모방해 표현했다. 나무를 깎고 색을 칠하고 천이나 박제 개, 신문 등을 조합해 만들었다. 마리솔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작품에 종종 등장시킨다고 한다.


작품에 세 명의 성인 여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검은 모자, 더블버튼 갈색 재킷에 기하학적 무늬 스커트, 명품처럼 보이는 스퀘어백을 들고 있다. 가방을 멘 여자 아이 곁에 서 있는 하얀 모자 여인은 갈색 투피스에 갈색 구두를 신고 있다. 한가운데 모자를 쓰지 않은 여인은 마리솔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나무 얼굴에 붙은 흑백 사진이 마리솔의 사진이다. 연분홍 상의에 초록색 에이프런을 두른 여자. 양쪽 두 여자에 비해 유난히 가슴이 강조되어 있다.

갖춰 입은 두 여인의 마네킹 같은 얼굴은 수시로 변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왼쪽과 중앙, 오른쪽을 바라보는 여인들.... 경제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갖춰진 조건에 있을 법한 두 여인은 자꾸 주변을 살피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인정욕구일까. 이만큼 살고 있다는 과시욕 같은 것일까? 아니면 불안과 경계심의 표현일까?


가운데 서 있는 여인은 희생된 모성처럼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공한 여자들 뒤에는 희생된 모성의 그림자가 있다.

허름한 차림, 앞치마를 두른 여인, 내세울만한 장식 하나 없이 젖을 먹여 키운 모성으로서의 가슴만 강조된 여인의 모습. 사회 속에서 어떤 번듯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유리천장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가방을 메고 리본을 한 여자 아이도 자라서 저 세명의 여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개의 끈을 쥐고 있는 여성 외에 여인들의 손은 보이지 않는다. 감추어진 손, 포박된 손...

흐트러짐 없으나 경직된 표정,

오래전 직장생활을 하던 때, 나의 뒤에는 시가와 친가 두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다.

그들에게 당연히 짐 지웠던 양육의 책임... 자유롭고 싶었을 그녀들의 시간을 억압한 지난날이다.


“우리는 모두 야성을 원하지만 우리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이런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는 그런 욕망을 수치스럽게 여겨 긴 머리카락으로 감추며 살아왔다. 그러나 wild woman의 그림자는 우리 뒤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가 무엇이 됐건 우리 뒤에 걸어오는 그림자는 분명 네 발 달린 늑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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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수집가의 시간> 자기 안의 야성을 입기 p126~


어느 순간 야성을 잃어버린 여인들, 경직된 자세로 붙박이장처럼 서있다.

세련된 차림새와 달리, 표정이 없는 여인들은 부품이 되어버린 자의 모습이다.

육아, 양육, 직장에서의 성공, 경제력....
어쩌면 새 여인은 모두 같은 여인들 인지도 모른다. 명품 백을 들고 개를 산책시키는 여인도 몸을 치장한 것들을 걷어내면 가운데 여자가 된다. 세련된 투피스의 여인도 곁에 있는 아이의 양육을 위해서는 가운데 여자가 된다. 갖추어진 것들의 한가운데 치장하지 않은 한 여인이 서 있다. 그녀의 유일한 장식이며 강력한 무기처럼 보이는 가슴을 강조하며..

마리솔 에스코바르는 작품 < 여자들과 개>를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그녀의 의도를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2월이다. 일 년 중 가장 짧은 달, 어정쩡하게 보내진 말아야 한다.

무심한 햇살이 잠시 머물지만 며칠째 내린 눈은 여전히 녹지 않고 쌓여있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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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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