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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우크라이나 언론인 안드리 차플리엔코는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러시아군 사이에 급증한 자살이 북한군에게도 확산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군이 전선에서 철수한 후, '하늘'이라는 글씨가 적힌 나무 옆에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나무에는 흰 글씨의 한글로 '하늘'이라는 문구가 적혀있고 뭔가를 매달 수 있는 밧줄도 걸려 있었다고 한다. - 기사 내용 발췌 -


북한군자살1하늘.jpg

북한군 병사가 머나먼 우크라이나 땅에서 죽어갈 때. 그가 목을 매단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에 하얀색으로 ‘하늘’이란 한글이 적혀있다.

차가운 우크라이나 땅에서 죽어간 무명의 젊은 군인..

아마도 20대일 그가 왜 ‘하늘’이란 글자를 나무에 남기고 죽은 것일까?
불명예스럽게 포로가 되느니 극단의 상황에서는 자해나 자살을 하도록 미리 훈련받았다 하더라도 나무에 적힌 단어가 ‘충성’, ‘조국’, ‘애국’도 아니고 ‘가족의 이름’도 아니고 '하늘'이라는 점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가 목을 매기 전 바라본 우크라이나의 하늘은 무슨 빛으로 다가왔을까?

20여 년의 푸른 생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이름도 생소한 남의 땅에서 저버렸다.


죽음과 관련하여 ‘하늘’이란 시어는 잘 알려진 천상병 시 <귀천>에서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천상병 시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미래사) 중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는 시인

그의 이 세상 ‘소풍’은 정말 아름다웠을까.


천상병 시인(1930~1993)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히메지(姬路) 시에서 태어났고, 1952년 「문예」에 시 '갈매기'가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1967년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고, 고문 후유증에 음주와 영양실조로 거리에 쓰러져 서울시립정신병원에 행려병자로 입원하기도 했다. 시인이 작고한 줄 안 문인들은 1971년 그의 유고시집 「새」를 발간했다. 이후 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문학선집 「구름 손짓하면은」 등을 출간


찬싱병.jpg

<나의 가난은> / 천상병 (1930~1993)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행복> / 천상병 (1930~1993)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행복과 가난 그리고 아름다운 소풍

그의 진솔한 시에는 탐욕도 욕망도 없다.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인생은 고통이고 세계는 최악이다."

"욕망의 성취를 통해 인간은 항구적인 행복도 인식도 얻을 수 없다. 욕망의 성취는 거지에게 던져준 동냥과도 같아서 비참한 삶을 내일까지만 연장시켜 줄 뿐이다. 어떤 욕망이든 그것이 충족되고 나면 또 다른 욕망이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현상은 무한히 계속된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인간이 한없이 고통 속에 사는 것은 욕망에 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천상병 시인의 시 <행복>을 읽고 있으면

그가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라고 했는지 공감이 간다.

불평과 불만이 없는 삶, 그것은 풍요와 충족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젊은 병사는 차가운 땅에서 어머니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고국의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의 나무에 ‘하늘’을 적고 떠났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젊은 군인은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이란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탐욕의 수단이 아닌가...

며칠째 쏟아지던 눈이 그쳐있다. 모처럼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움직이고 있다.

언젠가 나도 하늘로 돌아가는 날 이 세상 소풍이 감히 "아름다웠노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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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있는 내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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