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그래서 나는 '나'자신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므로 그래서>
산책은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들어간다
해 질 무렵이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
우리는 지나가는 그늘
공기조차 알아채지 않도록
그건 나무에게 이름을 걸어주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
없는 슬픔이 도와
그러므로 그래서
...
<그러므로 그래서> 부분 이규리
그러므로
그래서
모처럼 산책을 나선다.
까치 두 마리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밤새 무너진 둥지를 보수 공사 중이다
부리에 나뭇가지 하나 물고 허공을 가른다는 것...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기 몸보다 더 길어 보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물고...
그것을 붓처럼 입에 물고 허공을 가르고.... 아마도 어린 새끼들이 있을 둥지에.... 촘촘히 한 기둥을 엮어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까치 부부의 모습을 잘 보려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카메라에 담는다. 까치는 보이지 않고 앙상한 둥지만 찍혔다. 그러므로 그래서 까치를 카메라에 잡아두는 것은 늘 어려운 일.
밤새 내린 눈...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풀이 파묻혀 있다.
새하얀 눈 위로 직립한 것들....
멈추어있지만 걷고 있는 것들...
그러므로 그래서 감히 잡초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
눈 위에 찍힌 발자국들...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그 발자국에 또 제각각의 발자국이 중첩된다.
익명의 발자국들 당분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강아지도 살찐 길냥이 한 마리도...
그러므로 그래서 ‘우리’라고 불러도 괜찮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는 2월이다
늘 그런 시기다. 내게 2월은 늘 흔들리는 시기.
그러므로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기
그러므로 그래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 시기
그러므로 그래서
어떤 경우든 상관없다는 시기...
쇼펜하우어는 인생이란 건 결국 언제나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것뿐, '나'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했다. 한겨울 같은 2월, 그러므로 그래서 나는 '나'자신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 이규리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 새끼들 부리에 넣어줄 때
한 마리씩 차례대로
새끼는 새끼대로
노란 주둥이를 찢어질 듯 벌리고 기다릴 때
그 외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노랑이나 목숨은 입구가 단단하여
.....
그렇다면 한 생을
정확하게 전달했는가
나는
쩍 벌린 노랗고 붉은 입...
찢어질 듯 벌린 입 사이로 어미새는 공평하게 먹이를 나눈다
입을 쫙 벌리고 벌레가 목구멍 안으로 들어오는 그 짜릿함을 위해
아기새들은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빨갛고 노란 구멍으로... 실수 없이... 빠짐없이 먹이를 투여하느라
어미새는 자기 배곯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먹이를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어떤 한순간에 집중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손가락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는 것........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달리는데 머릿속 생각은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쏟아지는 눈발... 산의 능선이 흐릿해진다. 진종일 머리에 새하얀 것들을 이고 있던 나무들.
도리질하며 내던질 수도 있으련만 그냥 가만히 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무언가를 무한히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숨 죽이고 그렇게 가만히..
그렇다면 한 생을
정확하게 전달했는가
나는
찢어질 듯 벌어진, 붉게 충혈된 생의 구멍 안으로
무언가를 투여해야 한다. 생존이든 생활이든 생계든.......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있는 그 구멍 안으로........
시인의 말처럼 마음은 늘 다른 마음이 된다.
마음에도 여러 층위가 있어서 어떤 마음으로 단정할 수 없다.
저 눈을 뚫고 이동할 생각을 하면서 심란한 마음으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고 있다.....
바락바락 입을 벌리고 있을 내 생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쉬지 않고 맹렬하게 치열하게 눈이 내린다.... 아마도 진종일....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