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천이십오 번째 봄날은 ‘라 돌체 비타’ 이기를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
앙리 루소 Football Players 1908 년
앙리 루소의 공놀이하는 남자들을 보고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를 떠올렸다.
라 돌체 비타는 주로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즐기는 상황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이탈리아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학, 예술을 사랑하고, 삶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이탈리아인들의 생활방식이 드러나는 용어다.
하늘색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와 오렌지색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 붉은 공을 든 남자의 표정이 흥미롭다.
남자는 지금 ‘라 돌체 비타’를 외치고 있다. 즐거운 인생!!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 멀리 보이는 풍경들...
앞으로 질주한다. 뒤돌아보지 않고.... 누군가 뒤에서 따라붙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조차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 -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앙리 루소는 아마도 빨간 공을 한 손으로 높이 쳐들고 달리는 검은 콧수염의 남자를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한 듯싶다.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영광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공을 들고 인생의 골대를 향해질 주고 싶은 자신의 바람을 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러하듯 루소 또한 생전에 화가로서의 명예와 부를 거머쥐지 못하고 후대에 이르러서야 재평가받았다.
1844년 앙리 루소는 프랑스 라발에서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바로 돈벌이를 시작했다. 변호사 사무실 심부름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절도죄로 인해 7년간 군 복무를 해야 했다. 군악대 소속 클라리넷 연주자로 복무하던 중 입대 5년 차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의무 복무가 중지되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잡일을 전전하다가 1871년에야 말단 세관원으로 취직했다.
가난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아온 그는 화가가 되어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주중에는 세관원으로 일하고 주말에 집중적으로 그림을 그려 일요화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미술관을 돌며 거장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41세에(1885년) 살롱전에 처음으로 참가한다.
미술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작품에 대해 화가들은 악평을 쏟아냈지만 루소는 굴하지 않고 1886년부터 줄곧 앙데팡당전에도 작품을 응모한다. 자신을 그림을 손수레에 싣고 다니며 판매하기도 했는데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아내와 아이 4명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관원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나섰지만 아무도 그의 작품을 인정해 주지 않았기에 과외를 하거나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 생계를 유지했다.
심지어 자신의 고향 라발시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어
<라발시 시장님께>
저는 라발시 출신의 시민입니다. 시장님께 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스승 없이 독학으로 회화를 배운 화가입니다. 그림 한 점을 추천하오니, 부디 제 고향에서 사들여 소장해 주면 좋겠습니다..... 저의 소박한 희망이 실현되리라 믿습니다. 시장님의 호의를 기대합니다.
앙리 루소 올림.
이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지금 그의 대표작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 < 잠자는 집시 >를 자신의 고향 시장이 구매해 주기를 간절히 요청한 것이다. 무명화가의 설움이 느껴지면서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베짱이 엿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열정과 노력의 대가가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했는데 피사로, 고갱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그의 그림을 인정하고 피카소가 적극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정글 연작이나, '야드비가의 꿈' 같은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그토록 갈망하던 화가로서의 성공과 부의 길이 열리는 듯했는데 다리에 난 상처로 패혈증이 걸려 1910년 66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루소의 유해는 빈민들이 묻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제2부 존재의 자국들. 우리 안의 야드비가
루소에 대한 실질적 평가는 그의 사후에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는데 1924년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화가들이 루소를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선정했다. 시대를 앞선 위대한 화가였다는 걸 비로소 인정한 것이다.
빨간 공을 든 검은 콧수염 남자는.... 공을 들고 있는 동안은 ‘라 돌체 비타’였으리라.
빈민가의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앙리 루소.
삶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음에도 그의 열정과 노력이 죽음 이후에야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노란 개나리와 수선화가 만발한 봄날. ‘라 돌체 비타’를 외치고 싶은 봄날이라고 말한다면 반어일까? 역설일까? 흐드러진 벚꽃 아래를 걷는 사람들,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있다.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감히 '라 돌체 비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봄날의 풍경은 말 그대로 ‘라 돌체 비타’!!
결국 인생이란........ 봄날 피는 꽃 같은 게 아닌가...
아주 짧은 순간의 기쁨을 위해
견디고 감내해야 할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
우리에게 이천이십오 번째 봄날은 ‘라 돌체 비타’ 이기를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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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