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적당히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γνῶθι σεαυτόν (gnôthi seautón, 그노띠 세아우톤)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최초로 언급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델포이 신전 내부 기둥에 새겨져 있는 글귀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 아테네에서 소프로니코스와 산파인 파이나레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에 정통하고, 웅변술과 대화법에 능했던 것으로 보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는 소피스트들의 사변적 궤변과 금욕주의를 신봉하지 않았고 철학의 용도는 자기 수양뿐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 모두의 심성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사상을 책으로 남기지 않아서 제자인 플라톤의 《대화》와 크세노폰의 《회고록》을 통해 전해 내려 오는 정도다.
현실 철학을 강조한 그는 길거리, 시장, 김나지움을 돌아다니면서 정치가, 시인, 예술가의 본분,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 관심거리 등에 대해 젊은이들과 생각을 나누었다. 대화의 목적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거나, 가르치려 함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상대가 자기 안의 것들을 끄집어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정립되지 않은 생각들, 모호한 것들을 대화를 통해 끄집어내어 형체를 갖게 하는 일. 자기 자신을 (너) 알게 하는 일을 중요시했다.
내 안의 ‘나’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나다운 나도 있고 나답지 않은 나도 있다. 가면을 뒤집어쓴 나의 모습. 진실하지 않은 모습... 수많은 나의 모습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아직도 나는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p187 얼굴들은 서로 다른 이를 향하고 있다
요즘은 ‘너 자신을 알라’의 시대가 아니다. ‘너 자신을 알려라’의 시대다.
코로나 팬더믹을 거치면서 인플루언서들의 시대가 열렸다. 연결되어야 하고 노출되어 있어야 하고... 조회수나 구독수가 중요한 시대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전 세계에 5000만 명이상의 인플루언서가 존재한다고 한다.
인플루언서의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엄청난 수익 때문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너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아는’ 일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 만의 빛깔과 향기, 질감을 파악하는 일.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한 고유성을 지닌 존재자로서의 자신을 제대로 아는 일.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나다움’을 지켜가는 일.
2025년 현재 소크라테스가 거리를 걸으며 ‘너 자신을 알라’를 ‘네 안의 것을 끄집어내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서로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려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네모난 기기 안에 눈을 맞추며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가상공간 안에서 ‘나’를 찾으려 하는 시대.
본질의 나보다 좀 더 그럴듯해 보이는 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와 ‘ 너 자신을 알려라’ 사이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적당히 알아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분명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을 더 잘 알기에 감추고 싶은 면은 최대한 은폐하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집중적으로 부풀리는 우리에게 소크라테스는 무슨 말을 건넬까 궁금해진다.
4월도 둘째 주에 접어들었다. 벚꽃 잎이 도로 위로 흩날린다.
어쩌면 벚꽃도 자신을 알리기 위해 연분홍 꽃잎을 쉴 새 없이 흩날리는 것일까.
벚꽃은 무료 구독을 허용하는 착한 인플루언서임에 틀림없다
벚나무를 향해 ‘종아요’를 꾹 누른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