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터뜨려야 할 때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이누이트족의 노래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겨울에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까.
아니오 나는 신발과 바닥창에 쓸 가죽을 구하느라
늘 노심초사하였습니다.
어쩌다 우리 모두가 사용할 만큼 가죽이 넉넉하다 해도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여름에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까.
아니오 나는 순록 가죽과 바닥에 깔 모피를 구하느라
늘 조바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빙판 위의 고기 잡는 구멍 옆에 서 있을 때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기잡이 구멍 옆에서 기다리며 나는 행복했습니까.
아니요, 물고기가 잡히지 않을까 봐
나는 늘 내 약한 낚시 바늘을 염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잔칫집에서 춤을 출 때 인생은 경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춤을 춘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했습니까.
아니요, 나는 내 노래를 잊어버릴까 봐
늘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았습니다.
내게 말해 주세요. 인생이 정말 경이로 가득 차 있는지.
그래도 내 가슴은 아직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이누이트 족 코퍼 지파의 전통 노래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
내게 말해 주세요. 인생이 정말 경이로 가득 차 있는지.
그래도 내 가슴은 아직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처음도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면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 찬다 하고 마지막 부분도 내 가슴은 아직 기쁨으로 가득 찬다로 마무리되고 있다.
모든 것이 동면에 접어드는 겨울
신발과 바닥창에 쓸 가죽을 구하느라 늘 노심초사.
경이로 가득 찬 여름이 와도 순록 가죽과 바닥에 깔 모피를 미리 마련하느라 조바심을 친다.
고기잡이 구멍 옆에서도 고기가 잡히지 않을까 불안하고
설령 고기가 나타나도 내 약한 낚시 바늘이 고기를 잘 낚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잔칫집에서 춤을 출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안절부절못한다.
살아가는 일... 어둠의 시간이 지나 새벽이 밝아오고 태양이 하늘의 지붕 위로 올라올 때
기쁨으로 가득 차지만 하루 24시간이 늘 그러한 것은 아니다.
또다시 하루의 끝에서 어둠이 곁에 내릴 때 오늘 보다 나은 내 일을 기대하지만 새로 시작되는 내일이 늘 찬란하고 경이로운 것은 아니다.
춤을 출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싯줄을 드리울 때도
우리 안에 도사린 불안들.
불안하다는 것은 실존의 증거이기도 하다.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끝없이 무언가에 매달리는 우리들....
혼돈과 혼란의 세상 속에서도
꽃들은 어김없이 피고 진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아도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묵묵히 중심을 잡아가는 꽃들.
분명 꽃에게도 내재된 불안이 있으리라. 그런데도 오므린 꽃망울을 일시에 터뜨리고 마는 저 찬란한 용기를.... 바람이 어떠하든 하늘이 어떠하든... 머뭇거리지 않는다.
터뜨려야 할 때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들.
웅크린 것들을.....
경이롭고 찬란한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테니까.
봄이 왔습니다. 인생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오직 봄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걱정을 안고 살면서 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봄이 내 곁을 언제가 스쳐가 버리더라도 조바심. 걱정, 노심초사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묵묵히 제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는 것뿐./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 2024.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