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 누구에게든

내 속의 고아가 물었다, 어디 슬펐어?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빙하기의 역>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얼어붙은 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내 속의 할머니가 물었다, 어디에 있었어?

내 속의 아주머니가 물었다, 무심하게 살지 그랬니?

내 속의 아가씨가 물었다, 연애를 세기말처럼 하기도 했어?

내 속의 계집애가 물었다, 파꽃처럼 아린 나비를 보러 시베리아로 간 적도 있었니?

내 속의 고아가 물었다, 어디 슬펐어?

....

왜 나는 너에게 그 사이에 아무 기별을 넣지 못했을까?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하지만

무언간, 언젠가, 있던 자리라는 건, 정말 고요한

연 같구나 중얼거리는 말을 다 들어주니


빙하기의 역에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

우리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

아이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낙과처럼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을 단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내 속의 태아가 답했다, 잘 가

허수경 시집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 수록

20240124_084452.jpg
20250608_103142.jpg

‘기억’이라는 단어에 매달린 한 주다.

아마도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여운 탓이겠지만...

1749647527310.jpg

기억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빙하기의 설원에 이르지 않을까.

꽁꽁 언 그곳 어딘가에 아무 표식도 없이 묻어버린....

기억들.... 어쩌면 암매장하듯.... 허둥지둥 파묻힌 저마다의 기억들.

하지만 무언간, 언젠가, 있던 자리라는 건,

봉분이 사라진다 해도 남는 것.

내 속의 할머니, 내 속의 아주머니, 내 속의 아가씨, 내 속의 계집애

그리고 내 속의 고아가 차례대로 묻는 질문들

고아의 물음이 가슴에 훅 들어왔다.

“ 어디 슬펐어? ”

슬픔을 슬픔이라 하지 못하고..... 슬픔마저도 가슴에 묻어버렸었다.

빙하기 어딘가 슬픔의 기억들이 봉인된 무덤들이 있으리라.

무언가, 언젠가, 있던 자리...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감정이 널뛰기를 한다. 똑같은 나. 똑같은 일상에서 기분은 최상과 최하를 넘나들고 있다.

내 안의 제어 장치가 고장이라도 난 것일까?

그러나 나는 표정 하나 안 바뀐 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다.(살고 있다)

그것도 비루하지만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기 관리와 제어 능력이 탁월하다고?

사실은 아닌 것이다. 흔들림과 균열을 감당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드러나지 않는 담을 높이 쌓은 것일 뿐.


비가 온다. 모처럼

청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비.......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와 흙을 깨우는 냄새.

만일 누군가 내게 기억의 색을 묻는다면 나는 무슨 색을 끄집어낼까?

알록달록한 만장이 휘날리던 그 봄날.... 꽃 상여와..... 흐느낌의 후렴구.

관 위로 무심하게 떨어지던 흙덩이들의 비명....

검은 정장과 하얀 소복.

동그란 흙무덤과 그 위로 자리 잡아가던 연초록 잔디


또 다른 기억은 병동의 프리지어 향기다. 그 샛노란 향기 속 옆 환자분의 교회에서 온 목사님이 기도를 하고.... 그를 기도의 힘으로 반드시 일어나게 한다고... 하였지만 커튼 뒤로 들려오는 건 상실과 이별의 울음소리였던 것을.

의료기구들을 주렁주렁 매단 나의 젊은 아버지는 그 혼란 속에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던가.

이별 연습을 하기도 전에 세상은 ‘이별’이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었다. 나의 20대.

그래서일까? 나의 기억은 항상 기쁨의 순간보다 이별의 순간에 멈춰있다.

기쁨이 잠시 스쳐가는 풍경이라면 슬픔이나 아픔이나 고통 같은 것들은 오래도록 집요하게 남아있는 풍경들이다.


모처럼 비가 온다.

내 속의 고아가 물었다.

“어디 슬펐어?”

슬펐어?라고 물어주는 이가 곁에 있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나는 슬퍼 보이지 않는.... 그냥 정신없이 분주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런 물음을 은연중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만일 누군가 (내 속의 고아가 아닌) 내게 “어디, 슬펐어?”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빙하기의 역에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

우리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

아이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낙과처럼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 내 속의 태아가 답했다, 잘 가

1715730643891.jpg

2025년의 절반이 가고 있다.

6월이다....

시간이 흘러 2025년의 6월은 나의 기억 속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기억........... 왜곡되고 변질되게 마련인 기억이지만

그 해 6월은 참 아름다웠노라고..... 찬란했었다고

내 속의 고아에게 말할 수 있는 기억이었으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어린 낙과처럼 살고 싶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 2024. 12

20250608_093530.jpg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예감은 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