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기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라는 표제는 셰익스피어의 <템피스트> (5막 1장)에 의거한 것이지만 역설적 의미를 지닌다. 과학이 전쟁(1차 세계대전)과 결부되면 어떠한 비극을 초래하는 가를 체험하고 목격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태동한 소설인 『멋진 신세계』는 기계문명의 극한적인 발달을 그리며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발견한 과학의 성과 앞에 노예로 전락하여 마침내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하게 되는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A. F. 즉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해 낸 해를 기원으로 삼은 시대의 세계국(World State)에서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까지 다섯 계급으로 나뉘어,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량 생산된다. 이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수면 학습과 전기 충격을 통한 세뇌로 각자의 신분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정해진 노동 시간을 끝내면 자극적이고 단순한 오락들로 시간을 보내며, 항상 소마(soma)라는 약을 통해 환각과 쾌락을 느낀다. 누구도 불만이 없고, 만인은 만인의 소유이며, 심지어 죽음까지도 무의미한 세계. 이 완벽한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다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전체주의적 정치체계의 대두와 연결 지어 전체주의적 지배자가 목적달성을 위해 근대과학을 마음껏 이용할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모든 진보에는 반드시 그 희생의 대가를 동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헉슬리는 갖고 있었다
‘만인을 위한 만인의 행복’
배양병에 의한 인간제조의 기슬이 전체주의적 목적에 악용되어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상태로 계획경제적으로 인구가 조절된다. 필요한 질의 인간이 필요한 양만큼만 병에서 태어난다. 병에서 태어나므로 부모자식, 가족관계가 없다.
난자 하나에, 태아 하나에, 성인이 하나―그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보카노프스키를 한 난자는 움트고, 발육하고, 분열한다. 8개에서 96개까지 싹이 생겨나고, 모든 싹은 완벽하게 형태를 갖춘 태아가 되고, 모든 태아는 완전히 성숙한 어른이 된다. 전에는 겨우 한 명이 자라났지만 이제는 96명의 인간이 생겨나게 만든다. 그것이 발전이다
보카노프스키법... 전에는 한 인간이 자라던 곳에서 96명이 자란다. 보카노프스키법은 사회 안전의 중요한 수단. 표준형 남녀와 균등한 집단. 아흔여섯 명의 일란성쌍생아들이 아흔여섯 개의 동일한 기계를 조작하는 것... 공유, 균등, 안정이 실현된 것이다
보카노프스키 처리를 거친 난자들은 발아를 하고 갈라져 수많은 태아가 되었다. 사회 기능 설정실에서는 에스컬레이터들이 우르릉거리며 지하실로 내려갔고, 지하실에서는 진홍빛 어둠 속에서 복막 위의 태아가 푹푹 찌는 듯한 열을 받으며 대용 혈액과 호르몬을 공급받고 점점 자라났다. 반면에 독소가 주입된 태아들은 쇠약해져서 발육이 중단된 엡실론들이 되었다. 나지막이 윙윙거리고 덜컹대는 선반들이 몇 주일 동안 한없이 반복되는 발달 단계를 거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기어가듯 느릿느릿 이동해 태아 숙성실로 들어가고, 병에서 갓 나온 아기들은 공포와 경악의 첫 고함을 질렀다
계급을 미리 정하고 조건반사적 습성을 훈련시키면서 사회화된 아기를 만들어내는 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 모든 조건 반사적 단련의 목표는 자신들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숙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카키색 복장의 델타계급을 위한 신 파블로프식 조건반사 양육실
꽃과 책을 아기들에게 보여준 후 아기들이 정신없이 행복해하는 상태까지 기다렸다가 갑자기 경보용 벨소리와 동시에 전류 쇼크를 제공한다.
아기들의 작은 몸통은 비틀리고 경련하기 시작한다.... 경보용 벨소리를 멈추니 아기들은 다시 정상적인 공포 수준으로 돌아왔다. 그 후 다시 아기들에게 책과 꽃을 보여주고 또다시 전류 쇼크와 금속성 사이렌소리를 동시에 들려주는 훈련을 무려 2백 번 이상 반복하면 아기들은 책과 꽃에 대한 본능적 증오심을 가지고 성장해 나갈 것이다.
“나는 베타 계급으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합니다. 그 까닭은... ”
이런 말들을 계속 반복하여 듣다 보면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평생을 통해. 판단하고 욕망하고 결정하는 의식. 스스로가 부여하는 지속적인 암시다.
총통은 말했다
“태생적인 모친을 갖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이지를 상상해 보라. 가족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한 남자와 주기적으로 잉태하는 한 명의 여자와 여러 연령층의 소란한 아이들로 인해 시끄럽고 질식할 것 같이 비좁은 몇 개의 방, 소독도 제대로 하지 않은 감옥, 어둠과 질병. 악취..”
총통의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구토가 나오려는 학생들도 있었다.
“세계는 아버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비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가학적 색광부터 동정까지 별의별 도착증으로 충만해있었다. 세상은 형제, 자매, 삼촌, 숙모 등으로 충만했다. 그리하여 광증과 자살로 충만했다.”
“ 울부짖는 소리- 우리 아기, 우리 엄마, 나의 유일하고 유일한 사랑 따위, 신음하는 소리- 내 죄, 나의 하나님, 고통을 비명, 열병에 걸려 내뱉는 중얼거림, 노령과 빈곤에 대한 한탄... ”
P 93
“지금 올라갔다 내려간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그건 어떤 인간이 마지막으로 사라져 갔다는 뜻이야. 뜨거운 가스가 되어 올라간 거야, 남자, 여자? 알파계급? 입실론?... 확실한 것은 지금 사라진 것이 누구였든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했다는 거야. 지금 모든 인간은 행복하니까.”
헨리가 레니나에게 말했다.
버나드와 레니나는 뉴멕시코의 야만인보호구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존과 린다를 만나는데.. 뚱뚱한 금발의 토인 여자. 린다를 본 레니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지저분했고 뚱뚱했다. 늘어진 피부, 깊은 주름살, 자줏빛 반점, 늘어진 볼, 충혈된 눈,...
린다는 많은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었고 그들의 아내들로부터 보복을 당했으며, 아이들에게서도 손가락질을 당했다. 아이들은 린다에 대한 욕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돌을 던졌다. 존은 아이들과 맞서다 온몸이 피범벅이 되곤 했다.
린다는 존에게 글을 가르쳤다 존은 빠르게 습득했다. 12살 되던 해 우연히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게 된다. 항상 외톨이였던 존은 아무도 고독하지 않다는 세계를 열망하게 된다.
“우리와 함께 런던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
버나드가 물었다. 사실 이것은 이 젊은 야만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이 작은 집에서 깨닫고 난 다음 은밀히 다져온 전략에 따른 싸움의 개시였다.
“가고 싶은가?”
“정말입니까? 린다도 함께?”
“그렇지.”
“오오 멋진 신세계여! 그러한 인간들을 담고 있는 멋진 신세계여! 즉시 떠납시다.”
존이 거듭 말했다.
소장은 버나드를 질책하듯 가리키며 말하기 시작했다.
“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사람, 알파플러스인 제군들의 동료- 아니 장차 이곳을 떠나면 옛 동료가 되겠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신뢰를 배반했습니다. 포드님의 가르침에 따라 근무시간 외에는 ‘ 병 속의 유아처럼’ 행동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사회의 적이 되었고 모든 질서와 안정의 전복자가 되고 문명 자체의 모반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를 축출할 것을 제의합니다. 이 본부에서 그가 차지했던 지위로부터 축출시키고... 아이슬란드로 보내면 그는 치욕적인 본보기로 다른 사람들을 오도할 기회가 줄어들 것입니다.”
“마르크스 자네에게 내린 판결을 지금 당장 집행해서는 안 될 어떤 이유를 제시할 수 있나?”
“네 있습니다.”
“들어와요”
뚱뚱하고 낯설고 괴물처럼 생긴 중년의 린다가 엉덩이를 흔들며 들어왔다.
모두가 ‘악’하고 놀람과 공포의 중얼거림을 표했다.
“제가 린다예요. 당신이 나에게 아이를 임신시켰어요. 내가 그 아이의 어머니예요.”
“존”
존은 모카신을 신은 발로 가만가만 들어와 소장 앞에 무릎을 꿇고 맑은 목소리로
“아버지”하고 말했다.
이 우습고 속된 어휘를 듣자마자 히스테릭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 그게 소장이었다,
창백하고 눈이 휘둥그레진 소장은 치욕으로 고통을 느끼며 귀를 막고 방을 뛰쳐나갔다.
죽음에 대한 조건반사 훈련은 생후 18개월에서 시작되는데 모든 유아는 위독 환자 병원에서 매주 이틀간 오전을 보내야 한다. 별별 장난감이 비치되어 있고 특히 사망자가 생기는 날엔 초콜릿 크림을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아이들은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죽음을 모든 생리작용과 똑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하는 것이다.
쌍둥이들이 계속 몰려들어왔다. 한 가지 얼굴, 카키색 제복. 온통 콧구멍과 창백한 눈망울을 글리며 린다의 침상으로 기어올랐다.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 린다는 이제 호흡할 수 없는 공기. 그녀에겐 이젠 존재하지 않는 공기를 할퀴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다시 베개 위로 쓰러졌다.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지고 입술이 파래졌다.
간호사들은 아이들에게 외쳤다 “ 초콜릿 에클레어를 원하는 사람?”
카키색 제복을 입은 다섯 명의 쌍둥이들이 초콜릿 에클레어를 들고 강아지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존과 눈이 마주 지차 그중 한 명이 “죽었나요?”하고 물었다.
P. 323 “여러분은 노예로서 살아가는 신세가 좋습니까?” 그들이 병원으로 들어서자 야만인은 이런 말을 하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고 눈은 열정과 분노로 번득였다. “여러분은 아기처럼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까? 그래요, 아기들. 질질 울고 토하면서 말이에요.” 야만인은 그들의 짐승 같은 우매함에 화가 치밀어서 자기가 구하러 온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욕설까지 퍼부으며 덧붙여 말했다. 모욕적인 그의 말은 거북의 등 껍데기처럼 굳어버린 그들의 우둔함에 부딪혀 튕겨 돌아왔고, 그들은 둔감하고 심술궂은 불만의 표정이 담긴 멍한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요, 게우면서 말이에요!” 그는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 슬픔과 회한, 연민과 의무감 따위의 감정은 그의 주변에 모여 선 인간 이하의 괴물들에 대한 강력하고도 벅찬 증오 속으로 흡수되었다. “여러분은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인간성과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합니까?”
P. 333~334 “세계는 이제 안정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때문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내나 아이들이나 연인 따위의 강한 감정을 느낄 대상도 없고, 마땅히 따르도록 길이 든 방법 이외에는 사실상 다른 행동은 하나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혹시 무엇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소마가 기다립니다. 그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창밖에 던져버렸어요, 야만인 씨. 자유 말입니다!” 그가 웃었다. “델타들이 자유를 이해하리라고 기대하다니! 그리고 이제는 그들이 「오셀로」를 이해하리라고 기대하고요! 참 순진한 청년이군요!”
총통은 말했다.
“알파의 병에서 태어나 알파로서 조건 반사 훈련을 받은 인간이 엡실론 세미 모론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때 미쳐버릴 거야.... 최적의 인구는 빙산과 같은 형태를 띠도록 구성하는 것이지. 구분의 팔은 물 밑에 있고 구분의 일은 물 위에.. 우리는 변화를 원하지 않아 모든 변화는 안정을 위협해.”
“행복하게 시중드는 쪽을 택하는 방법으로, 나의 행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시중들기 시작했지. 다행한 것은 세상에는 섬이 많다는 점이야. 섬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지 모르고 쩔쩔매고 있을 걸세. 왓츠군 자네는 열대성 기후를 좋아하나? 마르케사스 군도?”
“나쁜 기후일수록 좋습니다. 기후가 나쁠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바람과 폭풍이 거센 곳이라면 ”
제1의 목적은 사회안정으로 병에서 태어난 인간은 각자 정해진 계급에 할당되는데 자기 계급에 기계적으로 적응될 수 있는 훈련을 받으며 주어진 환경을 불만 없이 받아들이게 한다. 소마의 보급으로 쾌락을 누릴 수 있으며, 극단적 자유연애, 완전한 잡혼이 장려된다. 불안이나 격정을 느낄 필요도 없이 인간들은 자신의 계급에 만족한다.
질서 정연한 구조 속에도 예외는 존재하는데 첫 번째 예외는 버나드 마르크스이다.
감마급의 평균체격보다 별로 크지 않았고 알파계급 표준치보다 무려 8cm나 작았기에 하층 계계급과의 접촉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상층 계급에 속하면서도 하층 계급의 열등한 육체를 지닌 버나드는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고 언제나 고독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 반사회적 사상을 품고 있는 이방인이었다.
“내가 자유롭다면 조건반사적 교육으로 노예화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되었을까?”
“우리는 다섯 살 때부터 모든 사람은 행복합니다를 배우지요.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지 않습니까? 타인들과 같은 방법이 아닌 당신 자신의 방법으로 행복해지고 싶지 않나요?”
두 번째 예외적 인물은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우월한 헬름 홀츠 왓슨.
건장한 체구, 두툼한 가슴, 우람한 어깨를 지녔으나 동작은 민첩하고 탄력적이며 날렵했다. 검고 아름다운 머리카락, 머리에서 발끝까지 알파플러스였다. 그의 직업은 감정공학대학(창작과) 강사였으며 수면 시 교육용 시구절을 쓰는 재주도 있었다. 지나치게 유능한 것이 그의 단점이었다. 지나친 지적 능력은 버나드가 갖는 육체적 결함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와서 정신적 과잉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그는 너무나 뛰어나다 보니 전체주의 정책에 대해 회의적이다.
세 번째 예외적 인물은 야만인이라 불리는 존,
소장과 베타마이너스 계급 린다 사이에서 태어난 청년으로 노란 머리, 연푸른 눈을 지녔다.
맬파이스의 사냥꾼들이 린다를 발견하여 데려왔고 그의 아버지(토마킨)는 문명국으로 달아나버렸다. 배양병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란 그는 우연히 탐독한 셰익스피어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고난 없이 욕망을 성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인의 고독을 허락하지 않는 문명국에서 인간적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자살하고 만다.
존과 전체주의적 문명국의 통치자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화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신경을 쓰고 있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조건반사 훈련이 되어 있단 말일세. 해야 할 일은 대체로 매우 유쾌한 것이며 여러 가지 자연적 충동은 모두 자유롭게 만족되기 때문에 저항할 유혹이란 존재하지 않지. 만일 불행한 우연으로 인해 어떤 불쾌한 사태가 일어나면 분노를 진정시켜 주고 적과 화해시키고 인내하고 수난을 참도록 하는 소마가 있다는 것... 이제 반 그램짜리 두 알만 삼키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지.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기독교 정신을 터득하는 것. 그것이 소마의 본질이지.”
“하지만 눈물은 필요한 것입니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변화를 위해 눈물이 따르는 그 무엇일 겁니다. 이곳에는 희생을 치를 가치가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썩어버리고 말 보잘것없는 육신을 운명과 죽음과 위험에 내맡기고 겨우 계란 껍데기 한 개를 얻는다는 것(햄릿, 4막 5장) 이런 처사에도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위험 속에서 삶을 산다는 것에도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지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문명을 먹었어, 문명이 나에게 독을 먹였어... 나는 나 자신의 사악함을 먹은 거야.”
헬름홀츠와 버나드는 존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침묵이 흘렀다. 슬픔에도 불구하고- 아니 슬프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슬픔은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증표였다.
“나도 자네들과 같이 섬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는데 거절당했어... 나도 내일 떠날 거야.”
존은 퍼튼햄과 엘즈테드 사이에 위치한 언덕 마루에 있는 낡은 등대를 자신의 은신처로 택했다... 자기 단련을 한층 힘들게 하고 자기 정화를 하기 위해.. 은신처에서의 첫날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양팔을 뻗고 고통을 견디기도 했다. “용서하소서!” 선한 인간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
문명생활의 구정물에 더는 감염되지 않기 위하여. 적극적인 속죄를 하기 위하여.....
언덕의 정상에서 허리까지 벌거벗은 남자가 버려진 등대 밖에 서서 매듭진 가죽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때리고 있는 것을 목격한 문명국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날마다 취재진이 몰려왔다. ‘서리 주의 야만인’이라는 촉감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채찍을 원한다. 우리는 채찍질을 원한다 “
그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채찍질을 –원한다!! “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지가쟈가장“ 하고 노래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들은 후렴구를 받아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지가쟈가장, 빙글빙글, 그들은 8분의 6박자에 맞춰 서로를 때리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최후의 헬리콥터가 그곳에 이륙한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야만인씨“
아무 응답이 없었다.
등대의 문은 빠끔히 열려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 어두컴컴한 안을 걸어갔다. 아치형 복도를 통해 위층으로 통하는 계단의 바닥이 보였다. 그 아치의 정상 바로 밑에 두 다리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필요한 것입니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변화를 위해 눈물이 따르는 그 무엇일 겁니다. 이곳에는 희생을 치를 가치가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썩어버리고 말 보잘것없는 육신을 운명과 죽음과 위험에 내맡기고 겨우 계란 껍데기 한 개를 얻는다는 것(햄릿, 4막 5장) 이런 처사에도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위험 속에서 삶을 산다는 것에도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모든 것이 조건반사적으로 학습된 유토피아 Brave New World는 Wonderful New World가 아니다.
희생의 결과 겨우 계란 껍데기 한 개를 얻는다 해도... 그것이 삶의 본질이 아니겠냐고 존은 말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3명의 반항아들 버나드 마르크스와 헬름홀츠 왓슨, 존
이 책의 저자 헉슬리와 가장 닮은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또한 헉슬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멋진 신세계... 사실은 하나도 멋지지 않은 신세계
존은 야만인 구역에서는 무리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고(어울릴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문명국에서는 혼자 있을 기회(고독을 누릴 기회)를 갖지 못한다.
총통의 말처럼 세상에 ‘섬’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일까를 생각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섬’, 혹은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섬’...
한 줌의 소마와 한 모금의 알코올 정도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잊을 수 있고
촉감 영화를 보며 오감을 즐겁게 하고, ‘자신의 주어진 위치에 만족한다’를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해서 훈련받으며... 죽음의 순간마저도 고통이 아님을 끝없이 연습하는 그런 문명국이 있다면.... 우리는 그곳으로 건너가기를 기꺼이 원할까?
생로병사를 다 거쳐가면서
산전수전을 겪어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존의 말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
불편한 삶을 선택할 권리, 불행해질 권리를 선택하는 것....
문명국의 입장에서 보면 온통 불행과 불편이지만.....
그 불행과 불편 속에 감추어진 행복과 평안을 찾기 위함이 궁극의 목표가 아닐까.
결국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나를 이끄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허기와 광기... 아마도 나를 이끌고 가는 것, 그러나 그런 이유로 끝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또한 허기와 광기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여전히...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정신도 영혼도... 그 모든 것들도.. 항상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는 느낌...
나를 이끄는 또 하나의 힘은 광기... 불광불급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고.......
Wonderful New World가 아니라 Brave New World에서 아마도 나는 버나드처럼, 헬륨홀츠처럼 그리고 존처럼 문명국의 삶을 끝없이 거부하고 있겠지.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 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