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기에 아름다운 날들이라고...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모관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비가 내리는 날은 추모하기 좋은 날이다.
인적이 드문 추모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향한다
네모난 유리격자 속에 수많은 영혼이 목을 길게 빼고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누가 오는 것인가?’ 사실 그들도 궁금하지 않을까.
살아생전 자식들의 차가 대문 앞에 멈추는 소리, 현관 벨을 누르는 소리, 아파트 입구 차단기를 통과했다는 안내 멘트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테니..
시어르신들을 모두 한 곳에 모셔왔다.
가장 높은 곳부터... 세대순으로... 그리고 아파트 분양을 하듯.. 그 나머지 공간에 미리 입주(?) 예약을 해두었다. 추모관 한쪽 벽의 일부가 우리 일가들의 공간이 된 셈이다.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p193~ 제3부 존재와 타인 /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부분
비가 내린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메모들이 보인다.
추모와 기억의 공간. 살아있는 자들의 활자가 세상에 없는 자들의 영혼에 가닿을 수 있을까?
메모지 위에 꾹 눌러쓴 글씨들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산자들을 위한 것이리라.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라는 이 명쾌한 명제 앞에 사라지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다. 무언가를 하면서 허기지고
무언가를 하면서도... 번 아웃된 것 같은 피로를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엄밀히 말하면 나의 허기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하지 않은 현실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이 정지된 고요 속,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뿐
네모난 유리 상자 속.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이 나를 내려다본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언젠가 더 시간이 흐른 뒤 나도 네모 격자 속에서 이곳에 방문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으리라....
적요와 고요 속에..
두 번은 없음을 실감하면서.. 두 번은 없었음을 확인하면서.
6월이 가고 있다. 어느새 능소화가 피어나고 있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 2024.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