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이제 나의 허기를 어디에서 채워야 할까?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 손택수 < 나무의 수사학 1>
푸른 나무... 치욕으로 푸른 나무를 보았다,
온몸에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푸른 치욕을 피워내고 있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리려는 것처럼
시인의 말처럼 이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리킨 것이리라.
속마음을 감추고 정반대로 이야기하도록
고통의 상처를 푸름으로 표현하도록 그렇게
쓰러지는 것들을 보았다. 직립해 있던 것들이 서서히 대지를 향해 눕는다.
아직 특이한 각도로 서 있는 것들도 있다.
베르나르 포콩은 여름에는 바닥이 있다는데 그 여름의 바닥을 향해 드러눕는 것일까?
모든 것이 여름에 시작된다. 여름에는 바닥이 있어 우리는 그곳으로 내려가 그곳을 받침대로 삼아 모든 그리움을 뒤로하고 새로움을 찾아 나설 수 있다. 한 사랑이, 한 작품이 여름에 시작된다. 나는 유월의 마지막주를 열렬히 사랑한다.
마침내 유월의 마지막주가 오고, 사람들은 더 이상 어찌할 바를 모른다. 모든 여름들의 충족된 허기, 충족되지 못한 허기가 맹공격을 해온다. 원컨대, 다시 한번 자신을 불태울 수 있었으면, 두 눈을 감고 여름 꿈을 속살대는 향수 속으로 투신할 수 있었으면...
-베르나르 포콩 『사랑의 방』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제2부 존재의 자국들 P97~
포콩은 더위가 몰려오기 직전, 유월의 마지막주를 사랑한다고 했다.
모든 여름의 충족된 허기와 충족되지 못한 허기가 맹공격을 해오는 시기,
그 유월의 마지막주. 다시 한번 자신을 불태울 수 있고
여름 꿈을 속살대는 향수 속으로 기꺼이 투신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베르나르 포콩과 달리 나는 유월의 마지막주가 오면 마음이 스산해진다.
충족된 허기와 충족되지 못한 허기가 맹공격을 해올 때 마음은 속수무책이다.
어제 늦은 오후, 그 스산함을 안고 산책을 했다.
모든 쓰러지는, 쓰러지기 시작하려는 가여운 풀들을 보았다.
누가 일부러 넘어뜨린 것도 아니건만....
스스로 대지를 향해 간다.
맹렬한 또 한 계절이 시작되기 전 양귀비는 꽃잎을 이미 떨구고
단단히 여문 씨앗을 품고 대지에 누워있었다. 휴식의 시간이 온 것이다. 긴 동면의 꿈을 꿀 것이다.
유월의 바람에 스며오는 습한 기운..
바람은 비를 데리고 온다. 이른 장마가 시작이라 한다.
잿빛 하늘,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빗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충족된 허기와 모든 충족되지 않은 허기가 뒤섞인 유월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나의 모든 충족되지 못한 허기는 어디에서 채울까?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