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여름.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그들을 살찌게 하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돌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네 말을 다 듣는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대양의 소금 같이. 허공 속 외침같이... 나는 내 모든 겉모양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모습 겉모습들은 저녁의 지친 새들이 둥지에 틀 듯 제속으로 돌아올 거예요. 고개를 돌리고 순간을 지워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 보세요. 제 어미가 입으로 물어다가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어린 고양이가 제 몸을 맡기듯 당신을 가만히 맡겨보세요.”
내가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연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비틀거릴 것이고 내 상대역이 묻는 질문에 해야 할 대답을 잊어버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멍청하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
.....
바구니를 들고 가기에 무거웠다. 바구니에서 물루를 꺼냈다. 두 눈은 흐릿하고 털은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두 다리는 축 늘어져있었다. 물루가 놀라울 정도로 고분고분 내게 몸을 맡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물루는 세상 어디에서나 화해한다. 모든 곳에서 영접받고 축복받을 것이다. 자신을 맞아들이는 장소와 결합하여 차츰차츰 그 형태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되어버릴 것이다. 완강한 저항이 철저한 복종으로 변했다가 어떤 새로운 생존 속에서 다시 반항으로 소생할 것이니.. 이제 그를 묻어주어야 할 차례였다.... 정원 한 구석 커다란 월계수 아래에 구덩이를 팠다. 마침내 물루는 제가 좋아했던 정원에, 제 집으로 여기며 지냈던 정원에 묻혔으니, 쒜레느 근처 섬에 매장되는 파리 고양이들보다 더 행복하고, 무엇보다도 가슴이 조여들도록 답답한 공동묘지에 묻히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며... 그는 이제 땅 속에 누워있었다. 바로 그날 저녁부터 떨어진 낙엽이 그 위를 덮었다.
-장 그르니에 <고양이 물루> 부분
고양이 한 마리 자동차 아래 앉아있다. 폭염 속...
상당히 고급진 외모를 지닌 고양이.
나는 고양이 종류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털빛깔이나 눈의 색깔 등이 막 키운 고양이는 아닌 듯싶다.
아파트 정원에 사는 모두의 고양이.... 길냥이와는 생김새가 다르다.
스스로 가출한 것인가?
아니면 품종묘는 외모 중심으로 품종을 개량한 종이라 병에 취약하다 보니...
누군가 키우다가 유기한 것일까.
해가 지기 시작한다, 고양이는 자동차 아래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에메랄드 빛 눈으로 고요히 바라볼 뿐
만일 잃어버린 것이라면
아파트 단톡방에 이미 집사의 간절한 사연이 올라왔을 법한데... 단톡방은 조용하다.
집사의 퇴근 전일까?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산책은 두렵다.
아파트 전체가 자기 집이라 할 수 있는 황갈색 고양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내 산책길의 관심사인 황갈색 고양이... 혹독한 추위와 폭염을 견디어 낸 대견한 그녀
둥지에 캣맘이 먹이와 물을 가져다 놓은 걸 보면 다른 일은 없는 듯한데....
둥지를 기웃거린다. 산책할 때마다 살아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다.
빨간 양귀비 흐드러진 들판을 위풍당당하게 걷던 검은 고양이...
행복해 보였다. 그 힘찬 걸음 아래... 생은 아름답고 찬란해 보였다.
거침없이... 후회 없이... 자신의 생으로 직진하는 경쾌함
그리고 유기된 것인지, 자발적 가출인지 알 수 없는.. 자동차 아래 고양이.
고요한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세계.
춤추는 것 같은 걸음걸이...
그 아름다움 뒤에 죽음이 스며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고양이 물루가 한쪽눈에 치명적 상처를 입어... 결국은 최선이라 할 수밖에 없는 방법을 선택하였던 그르니에. 월계수 아래 물루는 깊은 잠에 들었다.
가끔씩 물루는 사냥을 할 것이다.
가끔씩 물루는 춤을 출 것이고...
대지와 서서히 하나 되는 그 시간만큼 물루는 행복하였으리라.
<빨강 수집가의 시간> 제1부 빨강의 기억. 비어있어 유지되는 빈집 p71~~ 재개발 공고가 난 빈집, 주인은 떠나고 고양이들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다. 집주인은 고양이 부부.....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공고가 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이미 빈집들은 허물어졌고 터를 닦는 기초공사는 끝났다. 그런데... 여전히 건물은 올라가지 않고 있다... 집을 잃은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쳐간다. 날씨 탓인지...
7월이라는 숫자가 중압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번아웃된 느낌이다. 활자화된 책 대신 살아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
고양이 물루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어디를 향해 그리고 그 목적지는?
부지런히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고개를 저어 본다.
이 계절은 이토록 끝없이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고 있다.
내가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여름.
우리들은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고 있다는
집사의 간절한 메시지가 아직도 단톡방에 올라오지 않고 있다.
마음이 스산해진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