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의 날들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살아있다는 걸 발견하게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 파울로 코엘료
기적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신이 보내는 신호는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고 천사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신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은 우리가 그 혹은 그녀를 허락하는 곳이면 어디든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과 일치하는 것이고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일이다."
토머스 머튼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다. 이 강물에 떨어진 것들, 나뭇잎, 곤충, 새의 깃털들은 모두 돌로 변해서 강바닥에 가라앉는다고 전설은 말한다. 내 마음을 갈가리 찢을 수 있다면 그래서 흐르는 강물에 내던질 수 있다면.. 이 고통과 그리움은 끝나고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련만.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다... 눈물은 이 강이 다른 강과 만나는 것, 그리고 그 강이 다시 또 다른 강과 만나는 곳, 내 마음과 눈이 미치지 못하는 머나먼 곳, 마침내 바다와 만나는 곳까지 흘러가리라.
내가 사랑하던 이를 되찾아 다시 잃은 것은 일주일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 이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나는 이걸 저 피에트라 강에 던져버릴 수 있으리라. 물은 불로 써진 것들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성인들이 말했으니..
모든 사랑 이야기는 닮아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사는 남자애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세상을 알고 싶어 했다. 자신의 꿈이 소리아 땅 너머에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라고사로 이사했고 거기에서 나는 그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소리아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가 도처를 유랑하면서 자신의 날개가 돋아나도록 하는 동안, 나는 한 곳에 뿌리내리려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는 파울로 코엘료의 1994년 작.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발,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의 생사뱅과 루르드를 거쳐 피에트라 강가에서 끝나는 이 '순례기'는 일주일의 기간 동안 한 여자와 한 남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두려움 없는 '사랑'을 통해 자아를 찾는 영혼의 구도를 이야기하면서 사랑이야말로 무미건조한 일상을 '마법의 순간'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촉매제라고 설파한다.
1993년 겨울. 필라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필라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평범한 스물아홉의 처녀이고, 그는 오래전에 고향을 떠나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11년 만에 마드리드에서 재회한다. 하지만 공통의 화제라고는 어린 시절의 추억뿐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란 쉽지 않다.
두 사람이 함께 하게 된 짧은 여행에서 필라는 평범하고 안온한 삶을 추구하며 쌓아왔던 자신만의 성벽이 조금씩 허물어짐을 느끼게 된다. 그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사랑. "오랫동안 잊으려고 했지만, 그 문장은 늘 그곳에 있었어. 그 문장을 속에 담고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아주 짧은 문장이야... 사랑해."
피에트라 강가에서...
1993년 12월 4일 토요일,
1993년 12월 5일 일요일,
1993년 12월 6일 월요일,
1993년 12월 7일 화요일,
1993년 12월 8일 수요일,
1993년 12월 9일 목요일,
1993년 12월 10일 금요일
일주일 동안 사랑을 찾았고 일주일 만에 사랑을 잃었다.
1993년 12월 4일
강연장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격식을 갖춘 곳이었다. 강연장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았을 때 내가 기억하고 있는 11년 전의 소년과 달랐다. 그는 아름다웠고 눈은 빛나고 있었다.
“위험을 감수할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불행합니다. 꿈을 좇아 길을 떠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고통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뒤돌아볼 때.... 지금 네게 남겨진 것이라곤 네가 생을 낭비했다는 사실뿐이라는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주어진 매 순간에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마법의 순간은 깨닫지 못한 채 지나가버리고,
순식간에 운명의 손길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 버린다
1993년 12월 5일 일요일
“삶은 나에게 가르쳤어. 우리가 뭔가를 배울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다고 비록 그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에도 말이야.”
도로변 카페에 멈출 때까지 두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리아는 그에겐 시간 속에 빙결된 마을에 불과하리라.. 별 수 없이 정적을 견뎌야 했다.
“난 정말로 네가 오늘 밤 강연회에 같이 가주었으면 좋겠어.”
그가 조그만 붉은 주머니를 건네었다
주머니 속에는 오래되어 녹슨 메달이 들어있었다. 한쪽면에는 자비로운 성모가 다른 면에는 예수 성심이 새겨져 있었다.
“어느 날이던가 지금처럼 가을... 우리가 열 살 때였을 거야. 너와 함께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 광장에 앉아 있었어. 나는 네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었지. 몇 주 동안 계속 연습했던 말이었어.
하지만 내가 말을 막 시작하자마자 네가 메달을 잃어버렸다고 했어. 산사투리오의 작은 예배당에서..”
“난 메달을 찾았어. 하지만 광장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이미 오랫동안 연습했던 그 말을 할 용기가 사라졌어. 그래서 나 자신과 약속했어 내가 그걸 완전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을 네게 메달을 돌려주겠다고. 거의 이십 년 전의 일이야. 오랫동안 잊으려고 했지만 그 문장은 늘 그곳에 있었어, 그 문장을 속에 담고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아주 짧은 문장이야.”
이윽고 나를 바라보았다.
“사랑해”
발바오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온 세상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연인들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1993년 12월 6일 월요일
사랑은 덫으로 가득하다. 사랑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랑은 오직 밝은 면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 그 빛이 만든 그림자는 볼 수 없게 한다.
“필라, 역할을 해내려고 애쓸 필요 없어.”
“역할을 해내다나니 그게 무슨 말이야?”
“ 항상 누군가와 전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 전쟁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하지. 자신의 삶과 전쟁을 하는 거야. 그들은 자기 머릿속에서 연극을 만들기 시작해, 그리고 자신들의 좌절에 대해 대본을 쓰는 거지.”
이제껏 내가 원하는 많은 것들을 옆으로 밀어놓았고 내게 열려있던 길들을 포기했다. 평화로운 영혼이라는, 보다 큰 꿈을 위하여 수많은 다른 꿈들을 희생시켰다.
“하지만 난 네 사랑을 얻기 위해 계속 싸울 거야.”
“삶에는 얻기 위해 끝까지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어.”
한 사내가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를 만났어. 평생 자기 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친구였지. '이 친구에게 돈을 좀 줘야지.' 사내는 생각했어. 하지만 옛 친구는 부자가 되어 있었고, 실은 오래전에 사내에게 졌던 큰 빚을 갚기 위해 그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그들은 예전에 자주 갔던 술집에 갔어. 옛 친구는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술을 한 잔씩 듈렸지.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성공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했어. 그러자 그는 자신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고 대답하는 거야. 사람들이 물었어.
"다른 사람으로 산다는 게 뭐요?"
그가 대답했어.-
"그 다른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가르치죠. 하지만 그는 내가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나이 들어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평생 궁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믿지요. 언제나 돈 벌 궁리를 하고 계획을 세우다 보면, 결국 이 지상에서의 날들이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살아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은 거지요. “
” 삶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 아니오. “
듣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말했어.
"좌절도 있지요. 누구도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한 싸움에서 뭔가를 잃는 편이, 자신이 뭘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좌절하는 것보단 훨씬 낫겠지요."
"그게 다요?"
다른 누군가가 물었어.
"그래요. 이게 전부입니다. 내가 이걸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늘 되고 싶었던 바로 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 안의 다른 사람은 방 한쪽 구석에 서 있었죠. 나를 지켜보면서 말이죠. 하지만 난 그가 내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만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어요. 비록 그가 나를 겁주고 미래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경고했지만 말이죠. 내가 내 생에서 그 사람을 몰아낸 그 순간부터 신성한 힘이 기적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들은 주사위를 던진다. 그들은 우리에게 게임에 참여하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질 때, 가족과 이별할 때, 직장을 그만둘 때, 꿈이 좌절당할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잘 것 없는 욕망으로 가득 찬 우리의 삶을 조롱한다. 모든 것들을 한 손에 쥐게 되든, 그중 하나라도 얻기 위해 노동과 인내를 감수해야 하든,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주사위를 던질 뿐이다. 그리고 우연히 당신이 선택될 수도 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이기든 지든 모든 것이 운일뿐이다.
1993년 12월 7일, 화요일
사랑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덧없는 일이었다.
사랑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사랑은 스스로 말한다.-
사랑은 늘 어딘가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그저 그걸 받아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순간, 사랑 역시 우리를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한다.
나는 소리아의 광장을 떠올렸다.
잃어버린 메달을 그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순간을 기억해 냈다. 그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지만 그걸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모험과 부 그리고 꿈을 찾아 떠날 사람이었다..
나흘 동안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려 애썼지만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내 안의 다른 사람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그와 함께 달리기로 결심했다. 그와의 여행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가져올 위험까지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를 찾아 사방을 헤매던 사랑이 결국 나를 찾아왔다.
나는 창문과 함께 내 마음도 열었다. 햇살이 방 안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내 영혼은 사랑으로 범람하고 있었다.
”가장 경이로운 건 우리 자신이야. 아주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도 우리로 하여금 산을 움직이게 하지... 선물은 그것을 받고자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거야. 단지 믿고 받아들이고 실수를 두려워하지만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
”주여, 주의 뜻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어린양들의 나약함을 알고 계시기에 그들이 견뎌낼 수 있을 만한 고통만을 주십니다. 당신은 제 사랑을 이해하십니다. 오직 그것만이 제가 온전히 저의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오직 그것만이 제가 다음 생까지 저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피레네 산맥 쪽으로 창이 나 있었고 온 집 안이 흰 눈빛과 햇빛으로 가득했어... 나는 그 집을 잊을 수가 없었어 기도를 드리러 성당에 갈 때마다 온전히 놓아버리지 못함을 깨달을 뿐이야.
꼭 그런 집에서 음반을 들으며 너와 함께 있는 나를 상상했어. 우리의 아이들이 집 주변과 생사뱅의 들판에서 노는 모습을... “
나의 고뇌에 대해 스승께서는
” 그 세계에 머물든 아니면 신학굟 돌아오든. 네가 선택한 세계에 전념해야 한다. 나누어진 왕국이 적들에 대항해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듯이 나누어진 사람은 삶을 당당하게 마주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
1993년 12월 8일 수요일
그는 두 세계에 살고 있었다. 어느 곳엔가 두 세계의 교차점이 존재했는데 나는 그 지점이 어딘지 알아야 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저는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를 둘러싸고 뒤흔들어놓는 폭풍우 속에 갇혀버렸어요. “
”맞서 싸우시오. 그건 아주 중요한 것이니까. “
”신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 지상에 오셨기 때문이오. 우리는 그, 분의 꿈의 일부이며 그분께서는 그 꿈이 행복한 것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을 슬픔이나 패배로 끌고 간다면 그건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인간들은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신을 죽이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든. 불 속에서든, 추방을 하든 혹은 우리 마음속에서든 말이오. “
나는 치유의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고통받는 자들을 쉴 수 있게 하는 사람. 병자에게 건강을, 친구에게 희망을 줄 사람에게 하얀 커튼이 드리워진 집은 그의 소명과 어울리지 않았다
”잔을 깨버려. 그건 상징적인 몸짓이야. 유리잔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깨뜨려도 행복할 수 있어. 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을 멈추고 이 잔을 깨.... 우리를 어리석은 편견들로부터 자유롭게 해 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게 해 달란 말이야. “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유리잔을 향해 다가갔다. 무심히 바닥에 잔을 떨어뜨렸다.
1993년 12월 9일 목요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 가자. “
” 어디? “
”피에트라 수도원“
추억들, 그 며칠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날들은 나의 또 다른 생처럼 보였다. 그 시간은 사랑의 손길에 닿지 않았기에 내가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 세계는 변화하고 그와 함께 우리도 변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본래 내 것이었던 운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고 이제 내가 나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서 산을 움직일 필요는 없어. 나는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고 혼자서 고통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었어. 만일 내가 계속해서 내가 가던 길을 따라간다면 우리는 결코 하얀 커튼이 걸린, 산이 보이는 우리 집을 가질 수 없을 거야,
“내가 원하는 건, 너와 함께 가는 것, 네가 싸우는 동안 네 곁에 있는 것. 모든 이에 앞서 모험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는 거라고.”
“어젯밤 그 카페에서 나는 바르셀로나에 전화를 걸어서 강연회를 취소했어. 사라고사로 가자. 네가 그곳에 웬만큼 자리를 잡았으니까. 우리 둘이 새로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일자리도 금방 구할게. “
나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필라“
그러나 나는 이미 이 터널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깨를 기댈 친구 없이. 나는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병자들과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 행해지지 않을 기적과 더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지 않을 미소. 그리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있는 산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오직 어둠뿐.
1993년 12월 10일 금요일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다. 나는 그날밤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거의 죽을뻔했다는 것을 안다.
고통은 삶의 일부이다. 고귀하고 숭고한 사랑. 어떤 명분이나 소명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받는 것은 견디기 쉽다. 사랑은 고통받는 자의 마음을 성숙하게 한다.
”모든 사랑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하지만 그 경험들이 기억나지 않아요. 나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새로운 희망의 모습으로, 새로운 꿈의 모습으로 사랑이 다시 온다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
여인은 내게 연필과 종이를 주었다.
” 마음속의 것들을 적어봐요. 그걸 영혼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종이 위에 좋은 거예요. 그리고 던져버려요. 이곳 피에트라 강은 너무나 차가워서 그 속에 빠진 모든 것들, 나뭇잎이며 벌레, 새의 깃털 같은 것들이 모두 돌로 변해버린다는 전설이 있어요. 강물 속에 아가씨의 고통을 던져 넣는 것도 좋을 듯해요. “
오랫동안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목놓아 울었다.
”내가 동굴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어. 널 찾을 수 없어 사라고사로 갔지. 거기서 또다시 소리아까지 갔고, 나는 널 찾아 사방을 헤매었어. 그리고는 다시 피에트라 수도원으로 돌아왔어. 한 여인을 만났어 네가 여기서 온종일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 “
”네가 강가에 서 있으면 나는 네 곁에 서 있을 거야. 네가 잠들면 나는 네 문 앞에서 잠들 거야. 그리고 네가 멀리 떠난다면 난 네 발자국을 좇을 거야... 죽는 날까지 널 사랑할 거야. “
”이 걸 읽어봐 “
피에트라 강가에 앉아 나는 울었다.
” 네 사랑이 나를 구하고 내 꿈을 돌려줬어. “
”네 은사가 되살아난 거니? “
” 모르겠어. 하지만 하느님께선 언제나 내게 한번 더 기회를 주셨지. 이번에 그분이 그 기회와 함께 너를 내게 주고 계셔. 그분께서 내 길을 찾도록 도와줄 거야. “
”우리의 길“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쉬지 말고...
누군가의 모습에서 나를 찾아내는 것.
나의 잊힌 모습 중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바로 사랑할 힘을 잃어버렸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수도사 토머스 머튼의 말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과 일치하는 것이고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일“일 테니까.
꼭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할 필요는 없다.
내 안에서. 메말라가는 내 삭막한 가슴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래전 파울로 코엘료 작품을 다시 읽는다.
한때 책꽂이 한편이 온통 그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을 다시 꺼내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게서 사랑할 힘이, 살아갈 힘이 약해져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내게는 끝없는 사랑이 필요하다.
끝없이 그 안에서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쉽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일은 내게는 하나의 산을 넘는 일 같은 것이니까...
모든 사랑은 닮아있다고 한다. 형식과 방법 그리고 본질면에서...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 어쩌면 내가 가톨릭이기에 그의 작품 속 종교적 내용이 거부감 없이 읽히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장 버겁고 비참하고,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주어진다 해도 기꺼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 “라 말할 수 있을까.
답은 "그럴 수 없다."이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고... 삶을 진심으로 사랑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혼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종이 위에 좋은 거예요. 그리고 던져버려요. 이곳 피에트라 강은 너무나 차가워서 그 속에 빠진 모든 것들, 나뭇잎이며 벌레, 새의 깃털 같은 것들이 모두 돌로 변해버린다는 전설이 있어요.
내가 아닌 다른 ’ 역할‘을 하느라 지쳐버린 시간들.
피에트라 강가에 가서 울고 싶다. 그 강물은 너무도 차가워서 그 속에 던져버린. 모든 것들을 돌로 변화시킨다고 하지 않은가.
갈라티아서 6-14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울기 위하여 피에트라 강까지 갈 필요는 없으리라.
다만 이곳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다시 사랑할 힘을 얻고
쉼 없이 걸어가는 일........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일뿐.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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