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게 있지. 고도!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게트

<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는 1952년에 출판되어 극히 일부의 지식인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베케트에게 일약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으로, 20세기 후반 서구 연극사의 방향을 돌려놓은 부조리극의 대표작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일반 극장 못지않게 학교와 감옥에서도 많이 공연되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며, 아일랜드에서는 현재 닐 조던 등 이름난 영화인들이 베케트의 희곡들을 영화화하는 ‘베케트 온 필름(Beckett on film)’이라는 프로젝트가 추진하는 등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작품이다.

20250825_103118.jpg

사무엘 베게트는 영어 프랑스어로 번갈아가며 작품을 썼다. 이처럼 두 가지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그의 뛰어난 언어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 모국어보다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스타일 없이 쓸 수 있어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중 인물들의 말투가 언어의 뉘앙스를 뛰어넘어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모국어란 그 말을 쓰는 인간과 합치되어 너무 친근하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말이다. 베게트에게 있어서 말은 그 누구도 아닌 모든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는 도구이자 존재의 핵심이다.

문학계와 연극계의 본격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1953년 <고도>의 공연 때부터이다.

영국 연극학자 마틴 에슬린이 <고도>를 부조리 연극이라 지칭함으로써 반연극 또는 부조리연극이라는 새로운 연극 운동의 장르가 되었다.

<고도>의 내용과 형식이 기존 연극과는 달라 관객들은 충격 속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해야 했다. 미국에사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게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 하는지 물었을 때 베게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고도는 신인가. 빵인가, 자유인가.,..

고도 Godot가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 Dieu를 하나로 입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으나 고도의 정의는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 각자의 몫이 아닐까?

베게트의 연극에는 비극적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실제로 그는 ‘삶을 지배하는 것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나는 고통받고 있으므로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인간의 고통을 말한다.

베게트는 인간의 존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시킬 수 없음을, 그 어떠한 인간도 완전히 침묵시킬 수 없음을 증명하려 했다. - 오증자 작품해설 일부 발췌 -

20250825_104121.jpg

고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기다림, 한적한 시골길, 한 그루 앙상한 나무 만이 서있는 언덕 밑에 블라디미르와 애스트라공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장소와 시간이 불분명한 곳에서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기다림,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여전히 살아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을 하는 것이다. 서로 질문하기, 되받기, 욕하기, 운동하기, 장난과 춤추기 등

그 모든 노력은 고도가 오면 기다림이 끝난다는 희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하루해가 다 지난 무렵 그들이 기다림에 한계가 왔을 때 나타난 것은 고도가 아니라 고도의 전갈을 알리는 소년이다. 고도가 오늘 밤에는 오지 못하며 내일은 꼭 오겠다고 했다는 전갈만을 남기고 소년은 사라진다.

기다림으로 시작되는 1막이 다시 2막의 기다림으로 끝나는 구조.

결국 고도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고도라는 존재의 부재, 그리고 동시에 현존을...

고독 1막의 무대 설명은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았다>

2막은 < 이튿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 그것이 전부다

아직 날이 저물기 전의 늦은 오후

여느 날과 같은 어느 한 때

한 그루의 나무가 어떤 나무 인지도 불분명하다.

나무는 실질적으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숨고 싶어도 몸을 숨길 수 없고 목을 매려 해도 목을 맬 수 없다.

밤이 되어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한 디디와 고고.. 다시 내일을 그리고 고도를 희망한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시골길에서 누군인지 모르며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그런데도 ‘이 모든 혼돈 속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그건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제1막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저녁.


에스트라공 : (단념하며) 안 되겠는데

블라디미르 :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오랫동안 타일러 왔지. <블라디미르 정신 차려, 아직 다 해본 건 아니잖아>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싸움을 다시 계속해 왔단 말이야.

에스트라공은 힘을 다해서 마침내 구두를 잡아 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멍청한 눈으로 구두 속에 손을 넣어본다.

블라디미르 : 어떻게 됐어?
에스트라공 : 아무것도 없다

블라디미르 :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니.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P 14

블라디미르 : 걱정이 되는데(침묵) 도둑놈 하나가 구원을 받았겠다.(사이) 비율치고는 괜찮지? 고고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혹시 뉘우친다면?
에스트라공 : 뭘 뉘우쳐?

블라디미르 : 그야...

에스트라공 :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말이야?


p 18

에스트라공 : 여기가 확실하냐?

블라디미르 : 뭐가?

에스트라공 : 기다려야 하는 게 여기가 확실하냐?

블라디미르 : 나무 앞이라 하던데

..

에스트라공 : 이리 오기로 돼 있는데

블라디미르 : 딱히 오겠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에스트라공 : 만일 안 온다면?

블라디미르 : 내일 다시 와야지

에스트라공 : 그리고 또 모레도.

블라디미르 : 그래야겠지

P 23

에스트라공 : 기다리는 거지

블라디미르 : 기다리는 동안 뭘 하느냐고?

에스트라공 : 목이나 매고 말까?

....

블라디미르 : 네가 먼저 해봐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네가 나보다 가벼우니까

...

에스트라공 : 고고는 가벼우니... 나뭇가지가 안 부러져서 고고가 죽고.. 디디는 무거우니까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디디만 남는다...


p30

에스트라공 : (입안 가득 당근을 물고) 우린 꽁꽁 묶여 있는 게 아닐까?

블라디미르 : 묶여있다고?

에스트라공 : 그래 묶여 있단 말이야, 손발이 다

블라디미르 : 도대체 묶긴 누가 묶고 누구에게 묶여 있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 네가 말하는 그 작자에게

블라디미르 : 고도에게? 고도에게 묶여 있다고?

에스트라공: 그자 이름이 고도라고?

블라디미르 :그럴걸.

에스트라공 :이런! (먹다 남은 당근 청의 한 끝을 손에 들고 눈앞에서 돌려본다) 이상한데, 먹을수록 맛이 없어진단 말이야.

블라디미르 :나는 정반대다.

에스트라공 :정반대라니?

블라디미르 :난 먹을수록 맛이 난단 말이다.

에스트라공 :(한참 생각하더니) 그게 바로 정반대라는 거냐?

블라디미르 :기분 문제지.

에스트라공 :성격 문제다.

블라디미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에스트라공 :날뛰어봤자 소용없는 일이지.

블라디미르 :타고난 대로니까.

에스트라공 :꿈틀거린다고 별수 있니?

블라디미르 :근본이야 달라지지 않는 거지.

에스트라공 : 별 수없는 거야. (먹다 남은 당근을 블라디미르에게 내민다) 마저 먹을래?


p 32

포조와 럭키의 등장

채찍 소리 포조 나타난다. 포조가 럭키의 목에 맨 끈으로 럭키를 몰고 들어온다. 처음에는 럭키만 나타나고 끈은 그 뒤에 끌려 나오는데 끈이 너무 길어서 럭키가 무대 한가운데까지 온 다음에야 포조의 모습이 나타난다.럭키는 무거운 트렁크와 접는 의자와 음식 바구니를 들고 팔에는 외투를 걸치고 있다. 포조는 채찍을 들고 있다

....

p37

럭키는 트렁크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이 기울어지다가는 얼른 허리를 편다. 또다시 허리가 구부러지기 시작. 그것은 선채로 잠이 든 사람의 리듬이다.

에스트라공: 왜 짐을 내려놓지 않지?

블라디미르 : 내가 어떻게 알아.

...

p41

에스트라공 : 여보세요. 저 뼈다귀가 필요하신가요?

럭키는 한참 동안 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포조 : (혼잣말로)여보세요라니! (럭키가 고개를 떨군다) 대답해! 필요한 거야? 아닌 거야?

(럭키의 침묵) 당신이나 가지시구려. 이상한데 뼈다귀가 싫다 기는 처음인데

블라디미르 : (단호하게 그러나 더듬거리며) 인간을 (럭키를 가리키며) 저런 식으로 다루다니... 그건 한... 인간을... 정말 창피하다.


p 47

에스트라공 : 짐! 왜 짐을 계속 들고 있죠? 절대로 땅바닥에 놓는 일이 없으니

포조 : 왜 저놈이 제 몸을 편하게 하지 않느냐 이 말이지? 그럴 권리가 없는 걸까? 그건 아니지. 그렇다면 그러고 싶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왜 싫은 걸까?

그건 내게 감동을 주려는 거요. 버림받지 않으려고

에스트라공 : 뭐라고요?

포조: 저놈은 내 동정을 사려는 거지 내 마음을 끌려고 그러지만 내가 넘어갈 사람인가

블라디미르 : 그렇다면 쫓아보버릴 생각이신가요?

포조 : 저렇게 지칠 줄 모르고 짐을 들고 섰는 꼴을 보면 내가 내린 결정을 후회할 거라 생각하는 거지. 짐꾼이 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지

블라디미르 : 쫓아버릴 생각이신가요?

포조 : 하긴 운명이 장난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저놈과 내 처지가 바뀌지 말란 법도 없지. 다 팔자소관이지.... 생 소뵈르 시장까지 데리고 가서 좋은 값으로 팔아버릴 생각이오. 솔직히 말하면 이런 녀석은 쫓아버릴 것도 없이 그대로 죽여버려야 하는 건데

럭키 운다.

P51

포조 :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웃는다)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침묵)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침묵)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침묵) 인구가 는 건 사실이지만.


P59

포조 : 하늘을 보시오. 붉고 하얀빛을 줄기차게 쏟아 내리던 하늘이 그 빛을 잃고 엷어지더니 조금씩 더 엷어져서 결국은... 딱 그치고는 움직이질 않게 된단 말이오... 하지만 부드럽고 고요한 이 베일 뒤에서 밤이 밀려와 (목소리가 떨린다) 우리에게 달려든단 말이오. (손가락들을 소리 내어 꺾으며) 이렇게 와락! 우리가 전혀 예상 못한 순간에 말이오.(침통한 목소리로) 이 빌어먹을 땅덩어리 위에선 모든 게 이렇게 되고 마는 거지

오랜 침묵

에스트라공 : 하지만 우린 약속을 받았으니까

블리디미르 : 참을 수가 있지

에스트라공 : 지키기만 하면 된다

블라디미르 : 걱정할 거 없지

에스트라공 :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블라디미르 : 기다리는 거야 버릇이 돼 있으니까


p 63

포조 : 어느 쪽을 원하오? 춤을 추게 할까? 노래를 부르게 할까? 낭독을 하게 할까? 생각을 하게 할까?

에스트라공 : 누구에게 말입니까?

포조: 누구에게 라니?

블라디미르 : 저자가 생각도 합니까?

포조 : 전에는 하도 멋있는 생각을 해서 내가 몇 시간이고 귀를 기울인 일도 있었다오

그런데 지금은...

...

에스트라공 : 춤을 추게 하는 게 어떨까요?

포조 : 럭키 춤춰! 이 망할 놈아

럭키는 바구니와 트렁크을 내려놓고 무대 전면으로 걸어 나와 포조를 향해 돌아선다. 럭키가 춤을 춘다. 곧 멈춘다.

에스트라공: 그게 다 춘 겁니까?

포조 : 더 춰

럭키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 후 멈춘다.

포조 : 지금 저놈이 춘 춤을 뭐라고 하는지 아시오?

에스트라공 : 램프 상인이 죽음

블라디미르 : 노인의 암

포조 : 노끈 춤이라 한다오 제가 노끈에 친친 감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p67

에스트라공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누구 하나 오지도 가지도 않는군. 정말 견디기 힘들구나

블라디미르 : (포조에게) 저자에게 생각하라고 해보시죠.

포조 : 그럼 모자를 갖다 줘, 모자가 없으면 생각을 못하니까

블라디미르 조심조심 럭키이 주위를 돌다가 뒤로 가만가만 다가가 럭키에게 모자를 씌워주고는 얼른 물러선다,

럭키 : ... 반가우니 속단은 금물이고 또 한편으로는 미완성인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소해지고...왜 그런지 모르지만 테니스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지 모르지만... .. 미완성!

포조 : 이놈의 모자를!

블라디미르가 럭키의 모자를 잡아챈다

럭키는 입을 다물고 쓰러진다. 무거운 침묵. 승자들은 헐떡인다.

...
P79

포조 : 앞으로!

럭키 움직이지 않는다

에스트라공 : 앞으로!

블라디미르 : 앞으로!

채찍 소리 럭키, 휘청거린다.

포조 : 더빨리! 더빨리!


p 80

블라디미르 : 덕분에 시간 잘 보냈다

에스트라공 : 이젠 뭘 하지?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p83~86

소년 겁먹은 듯 다가오다가 멈춘다

블라디미르 : 너 고도씨의 부탁을 받고 온 거지?

소년 : 네... 고도씨거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

...

p 90

에스트라공 : 우리가 이렇게 붙어있은 지가 얼마나 될까

블라디미르 : 한 오십 년?

...

에스트라공 : 우린 서로 떨어져 있었던 편이 낫지 않았을까?(사이) 아치피 같은 길을 걷게 돼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블라디미르 :(화도 안 내고) 그야 알 수 없지

에스트라공 : 그래, 알 수 없지. 아무것도

블라디미르 :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되거들랑 언제라도 헤어질 수야 있지

에스트라공 : 이젠 그럴 필요도 없다.

침묵

블라디미르 : 하긴 이제 와서 그럴 필요는 없지.

침묵

에스트라공 : 그만 갈까?

블라디미르 : 가자

두 사람 다 움직이지는 않는다.


20250825_103118.jpg

제2 막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나무에는 잎이 조금 달려있다.


P 99

블라디미르 : 네가 없으니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좋기도 하더라. 이상하지 않니?

에스트라공 : 좋았다고?

블라디미르 :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에스트라공 : 그래 지금은?

블라디미르 : (생각해보고 나서) 지금은... (기쁜 듯이) 네가 다시 왔고,... (감정 없이) 우리가 다시 왔고... (슬프게) 내가 다시 왔지...

P 101

블라디미르 : 나는 반갑다고 해봐

에스트라공 : 난 반갑다

블라디미르 : 나도

에스트리공 : 나도

블라디미르 : 우린 반갑다

에스트라공 : 우린 반갑다(침묵) 그래 반가우니 이제 무얼 한다?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P 104

블라디미르 : (격언조로) 인간은 저마다 작은 십자가를 지도다 (한숨짓는다) 잠깐 사는 동안에. 잠깐 동안에, 그리고 그 뒤로도 잠깐

에스트라공 : 그래, 애기나 해보자, 어차피 침묵을 지킬 수는 없으니

블라디미르 : 맞아. 끊임없이 지껄여야 한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 그래야 생각을 안 하지

블라디미르 : 지껄일 구실이야 늘 있는 거니까

에스트라공 : 그래야 들리지 않지... 모든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블라디미르 :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린다

에스트라공 : 나뭇잎 소리다

블라디미르 : 모래 소리다

에스트라공 : 나뭇잎 소리다

침묵

블라디미르 : 모두가 한꺼번에 지껄인다 ‘

에스트라송 : 저마다 혼자 지껄인다

침묵

블라디미르 : 무슨 얘길 하는 거지?

에스트라공 : 제 인생의 애기겠지


p 115

블라디미르: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떠냐?

에스트라공 : 다 해봤는 걸

블라디미르 : 내 말은 구두를 한 번 신어보란 말이야.

...

에스트라공 : 디디, 우리 둘이 같이 있으면 그런대로 뭐든지 해결해 나가는 거지 안 그래?

블라디미르 : 자 왼쪽부터 신어봐

에스트라공 : 디디, 우린 이렇게 늘 뭔가를 찾아내는 거야. 그래서 살아있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


p128

포조와 럭기 등장

포조는 장님이 되어있고 럭키는 1막에서처럼 짐을 잔뜩 들고 있다.

끈도 1막 때와 같지만 길이가 훨씬 짧아져 포조가 뒤따르가 쉽게 되어았다. 럭티는 새 모자를 쓰고 았다. 그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보자 걸음을 멈춘다. 포조는 계속 걸어오다가 럭키의 몸에 부딪힌다.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 물러선다


P 130

블라디미르 : 이젠 우리만이 아니다. 밤을 기다리고 고도를 기다리고... 또... 어쨌든 기다리는 게 말이다. 저녁 내내 우리 둘이서만 갖은 수를 다 써가며... 하지만 이젠 끝났다. 벌써 내일이 된 거나 진배없으니까

P133

블라디미르 :... 너무 늦기 전에 기회를 이용해야 해, 불행히도 인간으로 태어난 바에야 이번 한 번만이라도 의젓하게 인간이란 종족의 대표가 돼보자는 거다....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가를 따져보는 거란 말이다. 우린 다행히도 그걸 알고 있거든.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

포조 : 사람 살려!

블라디미르 :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다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 이성은 이미 한 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너 내 말 알아듣겠냐?

에스트라공 : 인간은 모두 미치광이로 태어나는 거다. 그중에는 끝내 미치광이로 끝나는 자들도 있고

포조 : 사람 살려! 돈 줄게!

에스트라공 : 얼마 주겠소..

포조 : 100프

에스트라공 : 너무 적어

...

블라디미르 : 난 내가 태어날 때 미치광이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단 말이야

포조 : 200 프랑

블라디미르 : 우린 기다리고 있다. 우린 지루하다... 그런데 심심풀이할 일이 코 앞에 나타났는데 뭘 하고 있는 거지? 자 시작하는 거다.(포조를 향해 가다 멈춘다) 조금 있으면 모두들 사라지고 다시 외톨이가 되겠지. 이 허허벌판 가운데서

포조 : 200프랑

블라디미르 : 가요! 가!


p139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 포조! 포조!

에스트라공 : 저놈의 이름이 포조가 확실하냐?

에스트라공 : 다른 이름으로 불러보면 어떨까?

....

블라디미르 : 포조가 저자 이름이래도?

에스트라공 : 아벨! 아벨!

포조 : 이쪽이오

블라디미르 : 이런 짓거리에는 이제 넌더리가 난다

에스트라공 : 또 한 놈의 이름은 카인일 거다. 카인! 카인!

포조 : 이쪽이오!

에스트라공 : 그러면 인류전체다!


p144

블라디미르: 갑자기 왜 그렇게 됐어요?

포조 : 어느 날 깨어보니 캄캄하더란 말이오. 마치 운명처럼 (사이)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내가 잠을 자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오.

블라디미르 : 그게 언제였소?

포조 : 모르겠소


P 147

포조 : 또 무슨 일이오?

블라디미르 :. 친구가 다쳤다오.

포조 : 그럼 러키는?

에스트라공 : 정말 그놈이오?

포조 : 뭐라고?

블라디미르 : 정말 럭키냔 말이오.

포조 :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블라디미르 : 그리고 당신은 진짜 포조고?

포조 : 분명 나는 포조요

블라디미르 : 어제의 그 포조요?

포조 : 어제라니?

블라디미르 : 우린 어제도 만나지 않았소?(침묵) 생각 안 나요?

포조 : 난 어제 누구를 만난 기억이 없소. 내일이 되면 또 오늘 누구를 만났다는 게 생각 안 날 것이오.

블라디미르 : 어제 당신이 럭키를 팔려고 생 소뵈르에 데려간다고 하지 않았소? 럭키는 춤추고, 생각도 했고 그때는 당신 눈이 잘 보였다고요.


p148~ p150

럭키가 짐을 내려놓고 끈 한쪽 끝을 포조의 손에 쥐어준 다음 다시 짐을 든다

블라디미르 : 그 트렁크 속엔 뭐가 들어 있소?

포조 : 모래요(그는 끈을 잡아당긴다) 앞으로!

...

블라디미르 : 떠나기 전에 럭키한테 노래나 한 곡 부르게 하시오.

포죠: 누구에게 말이오?

블라디미르 : 럭키 말이오.

포죠 : 럭키에게 노래를?.. 저놈은 벙어리인걸

블라디미르 : 벙어리라니?

포죠 : 그렇다니까. 신음 소리 한마디 못 낸다오.

블라디미르 : 언제부터요?

포죠 :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기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하고 물어대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그냥 어느 날 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그는 끈을 잡아당긴다) 앞으로!


P 151

블라디미르 :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라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렸다고 말하게 될까? 포조가 그의 짐꾼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얘기를 했다고 말하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벗겨지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잠들어 버린다) 저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다시 얻어맞은 얘기나 할 테고 내게서 당근이나 얻어먹겠지....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 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 친구는 잠들어있다. 아무것도 모른다. 자게 내버려 두자고..


어제 왔던 소년이 들어온다. 걸음을 멈춘다. 침묵

블라디미르 : 고도씨가 보낸 거지?

소년 : 네

블라디미르 : 오늘 밤에는 못 온다는 얘기겠지?

소년 : 네

블라디미르 : 하지만 내일은 온다는 거고?

소년 : 네

블라디미르 : 내일은 틀림없겠지?

소년 : 네

....

침묵


p154

블라디미르 : 그래 고도씨는 뭘 하고 있니?

소년 : 아무것도 안 해요

침묵

블라디미르 : 수염이 있나? 고도 씨는?

소년 : 네

블라디미르 : 노란 수염이냐. 아니면 (망설이다가) 까만 수염이냐?

소년 : (망설인다).... 흰 수염 같아요.

침묵

블라디미르 : 하느님 맙소사


P 156

에스트라공 : 내가 오래 잤니?

블라디미르 : 모르겠다.

...

에스트라공 : 여기서 멀리 가버리자

블라디미르 : 그럴 순 없다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내일 다시 와야 할 테니까

에스트라공 : 뭐 하러?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리러

....


p157

에스트라공 :. 정말 내일 또 와야 하니?

블라디미르 : 그래

에스트라공 : 그럼 내일은 튼튼한 끈을 가지고 오자

블라디미르 : 그래

에스트라공 : 디디

블라디미르 : 왜?

에스트라공 :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

블라디미르 : 다들 하는 소리지

에스트라공 : 우리 헤어지는 게 어떨까?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

블라디미르 : 내일 목이나 메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이야.

에스트라공 :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 그럼 살게 되는 거지

...

블라디미르 :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책을 읽어도 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마도 오래전 고도를 읽던 때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 시간의 간극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오래전 고도를 기다리던 내가 아닐 테니까

같은 포조가 아니고 같은 럭키가 아니듯

같은 블라디미르가 아니고 같은 에스트라공이 아니듯

같은 소년 같지만 전혀 다른 소년이듯...

포조의 말처럼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될 것이고 어느 날 당연히 죽을 것이다.


고도란 내게 무엇일까?

여자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순간... 누군가는 곡괭이로 구덩이를 판다..

삶과 죽음... 포조의 말처럼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어서

삶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죽음을 증오하게 되고

삶을 증오하면 증오할수록 죽음을 사랑하게 되듯..

베게트는 궁극적으로 ’ 삶을 지배하는 것은 고통‘이고 ’ 고통받고 있으므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그러하지 않은가. 기쁨은 찰나적이고 고통은 오래도록 남아 가슴을 후벼 파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내게 '고도'란 양가감정 같은 것이다

고도를 언젠가는 반드시 다가올 ’ 죽음‘으로 본다면

오늘 오지 않고 ’ 내일‘ 혹은 ’ 그 언젠가‘라는 유예감이 주는 안도가 있다.

죽음은 저벅거리며 오고 있을 테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소년이 ’ 오늘은 오지 않고 내일 온다 ‘고 하면 나는 또다시 하루의 생을 덤으로 받은 것이니까...

고도를 ’ 희망. 기대‘로 본다면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 지쳐 나자빠질 무렵.. 고도고 누구고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마침 소년이 달려와 알려준다. ’ 고도가 내일은 꼭 온다고 ‘

얼마다 힘이 되는 말인가....

죽음이든 희망고문이든..........

어쨌든 우리는 기다리는 존재다.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으며 오래전 연인을 다시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그러나 새로운...

늘 같음의 자세로...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무.... 무성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목을 맬 만큼 튼튼해 보이지도 않은 나무 아래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그렇게 생을 이어간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면 목을 맬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맨 마지만 문장’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라는 문구에서 보듯.... 실천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나무에 목을 맬 용기가 없다면 집요하게 기다리든지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


1막에서 자신 만만했던 포조는 어느 날 갑자기 (실은 바로 다음날) 장님이 되고 러키는 벙어리가 되어 나타난다. 1막에서 그토록 길었던 끈의 길이가 2막에서는 현저히 짧아졌다. 포조와 럭키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일까? 1막에서는 끈의 길이가 부리는 존재와 부림을 당하는 존재 사이의 위계를 상징한다면 2막에서 짧아진 끈의 길이는 벙어리와 장님이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운명 공동체임을 보여주는 것일까.

럭키는 새 모자를 쓰고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1막에서는 모자를 쓰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포조의 말처럼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닥쳐올지) 알 수 없다.

이토록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는 사무엘 베게트의 작품.

’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끝없이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죽음이든 운명이든, 희망이든, 기회든, 신이든, 빵이든, 자유이든, 사랑이든, 연민이든....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할 것이다.

늘.... 그렇게.

니체의 말 ’ 정동(情動)에 휘둘리지 않고 정동이라는 말에 올라타 능숙하게 그것을 다루는 것...‘처럼

휘둘리지 않고 고도를 기다리는 것.

두려워하지도 의심하지도 않고

확신을 갖고 기다리는 것.... 기다리면서 끝없이 일어서는 것. 행동하는 것... 끝없이 삶을 죽을 만큼 사랑하는 것.... 저마다 제각각 지껄이는 소리들에 귀기울이는 것... 덧없는 몸부림을 응원하는 것/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20250824_092820.jpg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작가의 이전글세상의 빛 속으로 빛 헤엄을 치며 떠다니는 수많은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