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여자 그러나 웃는 여자

태초의 울음을 더듬더라도... 생이 허락하는 할 늘 웃고 싶은

우는 여자 그러나 웃는 여자


우는 모습은 아마 세계 공용어가 아닐까.

사람이 웃는 모습은 제각각일 테지만..

슬픔에 젖어 오열하는 모습은 인종, 문화, 사회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있다.

가슴 안에 가득 찬 눈물을 분출하는 일...

인간의 몸 70%가 수분이라 하는데

그 수분의 대부분이 눈물이 아닐까... 아무리 울어도 눈물의 샘은 마르지 않으나

실컷 울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정화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눈물이 지닌 치유의 힘일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오래도록 보는 데다 여름철 에어컨 탓인지

눈 안쪽에 이물감이 심해진다.

뻑뻑하고 불편한 느낌....

안구건조증..

상태가 조금 좋아지면 인공눈물을 넣지 않았는데 나 같은 체질은 지속적으로 넣어야 한다고 안과원장님이 말씀하신다. 별로 불편하지 않아도 늘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 주어야 상태가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인공 눈물을 한 보따리 처방받아 돌아온다.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살아가면서 눈물 흘릴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가능한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기쁨의 눈물, 감격과 감동의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흘리고 싶지만...

기쁨은 잠깐이고 슬픔의 뿌리는 참으로 모질고 길어서 오래도록 잠복되어 있다가 잊힐만하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나는 반추 동물처럼 슬픔을 다시 꺼내어 씹다가 깊은 울음 속에 매몰되곤 한다.

슬픔에 매몰되는 것이 싫어서 의도적으로 강해지려 했다.

내 안에서 터져 나오려 하는 오열의 늪을 논리와 이성의 둑으로 막아 세우는 일

감정에 충실하지 않고 때론 연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한번 시작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설움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니까


어두운 방... 아버지의 병실에서 돌아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들으며 울던 그 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별의 전주곡. 다시 올 수 없음이라는 절대불변의 명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짐을 챙겨 시외버스를 타고 선산까지 달려갔던 기억.

마른풀 냄새가 나던 어둑어둑한 저녁...

새 울음소리가 났고 마른풀들은 제각각 뒤엉켜 그로테스크한 춤을 추고 있었다.

결국 그의 무덤 근처에는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다시 버스를 잡아타고 돌아온 나의 20대. 슬픔의 시기였다.

강해지고 싶었기에....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즈음이었을까..

강해지고 싶다.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의 눈물을 모두 말라버리게 한 것일까?


다시 우는 여자가 되었다.

책상 위에 인공 눈물을 차곡차곡 챙겨놓고 주기적으로 우는 여자가 되었다.

눈물 흘릴 일이 없어도 나는 울어야 한다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모니터의 커서를 쫓고 있는 내 메마른 안구를 위하여 인공 눈물의 케이스를 벗기고 눈 안에 눈물을 쏟아붓는다.


<우는 여자 >

나희덕

저녁 무렵 출근하다 우연히 만난 그 친구 때문에

십 년 세월을 담고선 그녀의 눈빛 때문에

함께 손 잡고 가장 먼 곳까지 나갔었던

마른 갈대의 숲과 그 기억 때문에

어느 날 느티나무 위로 빛나던 별처럼

곱게 자라서 만나자던 그 까마득한 약속 때문에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에

....

여기에 불러 세운 세월 때문에

...

십 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 찬구 모습. 오랜 시간만큼 변해버린 서로의 간극 때문에 운다.

우는 여자... 제 설음에도 울고

남의 설움에도 우는 여자.

안구건조증 때문에도 우는 여자

주기적으로 울어야 하는 여자....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

세상에 오던 날..... 그토록 발버둥 치며 오열하던 아기들의 거룩한 울음소리를 기억하는 일

태초의 울음... 울음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일.... 눈물의 시원을 찾아가는 일.....

우는 여자... 그러나 늘 웃고 싶은 여자.

생이 허락하는 한 늘 웃고 싶은 여자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20250122_091627.jpg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40814_093321.jpg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게 있지. 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