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에르곤 혹은 파레르곤이라 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의 정체는 의미와 무의미의 중첩
머릿속으로 원하나를 그려보자
원의 정의는 한 점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다
원은 테두리를 지닌다. 테두리 선은 원의 안쪽에 속할까? 바깥쪽에 속할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테두리 선이 안과 밖의 경계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테두리선은 그 자체로 안쪽도 바깥쪽도 아니며 사회의 관습에 따라 한쪽 혹은 바깥쪽으로 간주된다.
해체주의는 의미와 무의미라는 전통적 대립구조를 허문다.
파레르곤( parergon)과 에르곤 (ergon)
파레르곤은 에르곤, 즉 완성된 작품에 반대되며, 옆에 있으며, 동시에 부착되어 있지만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작품 구성에 관여하고 작품의 구성요소로 작용한다. 바깥도 아니고 안도 아닌 것, 경계의 변두리에서 맞대어 있을 때는 아주 유용한 나무로 된 장식품 같은 것. 이것은 무엇보다도 경계다.
『회화에서의 진리』 - 데리다
파레르곤은 예술작품의 내부에도 외부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경계다.
데리다는 왜 이토록 모순적이고 애매한 파레르곤에 주목하는 것일까?
조르즈 쇠라의 작품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점묘법으로 알려진 색점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쇠라는 캔버스뿐 아니라 캔버스를 감싸고 있는 틀 (프레임)에까지 점을 찍어놓았다.
데리다는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미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예술작품의 안과 밖 사이의 경계 자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작품 안에도 있지만 그 작품을 둘러싼 바깥에도 있는 것이다.
<모나리자>를 불멸의 명화로 남게 한 요소가 무엇인지 정확히 규명할 수는 없지만, <모나리자>의 얘술적 가치는 다빈치가 그린 그림 안에 있다. 금박액자, 나무 액자, 플라스틱 액자든 본질은 액자가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다.
액자 안에 있는 예술 작품을 에르곤(ergon)이라 한다면 액자 혹은 액자틀은 예술 작품의 주변적인 것에 불과한 파레르곤( parergon)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어로 에르곤은 작품을, 파레르곤은 작품의 밖에 작품과 나란히 있는 어떤 것을 뜻한다.
에르곤이 본질이라면 파레르곤은 일종의 장식이다. 그런데 어떤 액자에 표구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느낌이 달라질 수 있기에 적절한 틀은 예술 작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디.
그런 의미에서 보면 파레르곤이 작품과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다.
-데리다와 들뢰즈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박영욱 부분 발췌
데리다는 예술작품에 있어 에르곤(작품) 뿐만 아니라 파레르곤 (작품 밖에 있되 작품과 나란히 있는 어떤 것)까지도 아름다움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경계, 안과 밖, 의미와 무의미란 이분법적 논리와 시각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 혹은 드러나지 않는 유동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건물 벽면, 어린 나무 한그루 액자 안에 들어있다
에르곤으로서의 어린 나무는 단조로운 콘크리트벽에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자연스럽게 에르곤을 감싸고 있는 파레르곤처럼 보이는 구조물
오래된 가옥의 툇마루에 앉아 쉼 없이 흔들리는 초록을 바라본다.
에르곤으로서의 초록을 가두고 있는 오래된 목재 파레르곤, 아마도 족히 몇 백 년은 되었을 법한...
어떤 파레르곤에 있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에르곤과 파레르곤은 상보적이다
돌아보면 ‘틀’이라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 심지어 나를 가두는 억압 같은 것이라 여겼던 모든 것들이 실은 나를 돋보이게 혹은 성장하게 해주는 파레르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의 에르곤과 파레르곤
나를 만드는 안과 밖, 나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감히 ‘작품’ (에르곤)이라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틀 혹은 장식’ (피레르곤)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쇠라의 작품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처럼 에르곤과 파레르곤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이고 싶다. 나의 모든 것은 작품이면서 틀 혹은 장식이고 그와 동시에 틀 혹은 장식이면서 작품이 되는 것.
뜨거운 여름.... 세상을 만드는 수많은 에르곤과 파레르곤을 찾아 나선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선, 악, 의미와 무의미를 넘나들고 고정된 사고를 무너뜨리는 데 있음을 깨달으면서......
올여름은 유난히 길고.... 길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