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숲에서... 쓰는 즐거움, 지속의 가능성, 멸종에의 거부
멸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종의 울음소리가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쓰고 있는 한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김경주 – <우주로 날아가는 방 5> 부분 차용*
“좋은 글이 가지는 힘을 믿는다.”는 모토 하나로 세상의 모든 손가락을 불러 모으는 브런치가 벌써 열 살이 되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경쾌한 흐느낌과 행간 사이에 잠복된 목소리를 듣는다. 누군가의 글이 내 감각기관에 들어와 내 안의 힘센 기억들을 불러오고, 세상을 향한 나의 두드림은 북소리가 되어 누군가의 청각기관으로 들어간다. 손가락 끝에서 만들어진 활자들이 혈관 속으로 들어가 혈액을 타고 돌며 서로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브런치를 하면서 그 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2020년 10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의 생일 즈음. 무언가 나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나를 위한 선물. 내 안의 목소리를 끌어내어 활자화시키는 일, 그리고 그 목소리들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세상의 목소리에 화답하고 소통하는 일. 그것은 모두 브런치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근무하던 학교 도서관, 골리앗 같은 책꽂이 사이에서 나는 한 마리 곰을 보았다. 그 곰은 책갈피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연필로 끝없이 밑줄을 긋고, 연필 끝의 조그만 지우개를 질겅질겅 씹다가 활자들을 모두 들이마시고 ‘꺼억’하고 트림을 뱉어내었다. 책과 책 사이에 숨어있는 곰 한 마리는 유년 시절 내 자아가 만들어낸 상상의 것이었으리라. 어느 날 곰은 서가의 책갈피 사이에서 뛰어나와 메마른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활자들을 검은 잉크처럼 들이마신 곰 한 마리가 불러주는 언어를 부단히 받아 적으며 지난한 시간들을 건너왔다. 내 안에 눌러앉은 곰은 더 많은 검은 잉크를 요구했고 어느 날부터는 새로운 활자들을 요구했다. 이제는 내가 곰을 위해 활자들의 신선한 조합을 끝없이 만들어야 했다.
무언가를 쓰는 일은 지속적이고 꾸준한 행위여야 하며 끝없이 스스로를 독촉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 강제적인 행위여야 한다.
첫 작품 ‘sizzle’을 브런치에 올리던 날 하루 종일 울리는 브런치 지기들의 알람 소리. 하트모양 라이킷들.....
그것은 뜨거운 환대였다. 서로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데도 오직 ‘글’ 하나로 빠르게 연결되는 속도감이 경이로웠다. 그 속도감에 매료되어 나는 가슴속 곰을 데리고 초록으로 물든 브런치의 숲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브런치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여간 568편의 글들.... 나의 곰은 이제 브런치의 행간에 걸터앉아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질겅질겅 지우개를 씹어가며 검은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면서 나의 글을 검열하고 있다. 소통과 연결, 눈물과 웃음, 환희, 배설, 격려, 치유, 위로를 주는 글의 힘을 믿는다. 손가락 끝을 통해 활자화된 글자들이 누군가에게 날아가 힘이 되어주고, 누군가의 글이 내게로 날아와 지친 몸에 날개가 되어줄 수 있음을...
5년 동안 꾸준히 브런치를 하면서 느낀 확신이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그런 세상
내 자유 의지가 운명을 지배하는 곳
...
쓰는 즐거움
지속의 가능성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소멸해 가는 손의 또 다른 보복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쓰는 즐거움> 부분
브런치 작가를 하면서 두 권의 산문집을 낳았다.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2022) 『빨강 수집가의 시간』 (2024) 은 브런치의 곳간에 쌓인 568편이 글이 만들어낸 작품집이다.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로 지정되기도 했고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으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말처럼 ’ 내 자유의지가 운명을 지배하고 있음을,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소멸해 가는 손의 또 다른 보복‘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자각하고 있다.
10년 동안 거목으로 자라난 브런치의 숲에서 내가 끝없이 무언가를 쓰고 있는 한, 끝없이 내 안의 곰이 나를 재촉하는 한, 끝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경쾌한 울림이 있는 한, 끝없이 공감해 주는 브런치지기들의 환대가 지속되는 한, 끝없이 씀을 통해 힘센 기억들이 지친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한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기에 무언가를 쓸 수 있고 쓸 수 있기에 나는 살아있다. 오직 브런치를 통해서.../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