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본다’는 행위는 사물의

존재 속으로 녹아 들어가 그 존재와 일체가 되는 것 / <말테의 수기>

<말테의 수기>


릴케는 이 소설의 완성에 6년이 걸렸다. 이 책은 파리에서의 암담한 생활을 기조로 한 릴케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말테는 나의 정신적 위기 속에서 태어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에는 소설다운 줄거리의 전개가 전혀 없으며 일기, 수기, 편지, 과거의 추억과 비망록, 단편의 이야기들을 모아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말테 라우리즈 브리게는 파리에 사는 덴마크 귀족 출신 28세 청년이다. 말테는 감정이 무척 예민하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 예를 들면 파리의 거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눈먼 캐비지 행상이라든가 꾸불거리는 도관이 밖으로 드러난 폐가, 문득 목격한 낯선 사나이의 죽음과 같은 일들이 그의 내면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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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그는 자기가 병이 들어서 무엇을 할 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병원에서 치료를 권하지만 병원의 까다로운 절차에 심한 고통을 받고 뛰쳐나온다. 또 무서운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모포의 가장자리 털실이 바늘처럼 뾰족해지지 않을까? 침대에서 떨어진 빵조각이 방바닥에서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건 아닐까?



9.11일 툴리에 가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첫 문장)


... 사실 그랬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이며, 그것만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큰 파편들은 소리 내어 웃고 작은 파편들은 킥킥 거린다.

소음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다. 바로 정적이다. 큰 불이 났을 때고 가끔 극도의 긴장된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서서 어깨를 추켜올리고, 얼굴을 위로 향한 채 무서운 충격이 오기를 기다린다.


말테는 “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지만 모든 것이 더욱 깊이 나의 내부에 들어와서 여느 때라면 멎어야 할 곳에서 멎지를 않는다. 나도 모르고 있던 마음의 밑바닥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거기까지 들어간다.”라고 했다. 그는 아무 목적 없이 파리 시내를 헤매었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늘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가 거리에서 보는 것은 요오드포름과 기름과 불안의 냄새가 자욱한 병원, 비틀거리다 쓰러지는 남자, 무거운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임산부, 기묘한 경련의 발작을 일으키는 노인, 거지와 패배자들이다.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볼 수가 있게 되었다. 지금은 아직 서투르지만 될 수 있는 대로 그것에 시간을 잘 쓸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보는 것은 말테에게 순수한 수동적 행위다. 그것이 주는 인상과 자극을 무엇 하나 거부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이처럼 아무런 선택이나 거부도 없이 오로지 보는 것을 배운다는 것. 이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 말테는 보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 제대로 보는 법.... 자신의 의식이 개입되는 일 없이!


P 12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얼굴들이 있는가를 한 번도 의식한 적이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많다. 누구나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너무도 자주 차례차례 얼굴을 바꾸어 닳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 얼굴을 늘 그대로 간직할 것 같지만, 40세도 될까 말까 해서 마지막 얼굴을 가지게 된다. 물론 그것은 얼굴의 비극이다. 그들은 얼굴을 소중하게 여기는데 익숙하지 못하여 8일 만에 마지막 얼굴에는 구멍이 뚫리고 여기저기가 종이처럼 얇아져서는 차츰 얼굴이 아닌 바닥이 드러난다. 그래서 얼굴 아닌 얼굴을 쓰고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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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제3부 존재와 타인 : 얼굴들은 서로 다른 이를 향하고 있다 p188~


이 작품은 특히 소년시절의 추억이 많이 등장하는데 시종직인 조부 브리게의 고통과 죽음, 젊은 나이에 죽은 어머니, 어머니가 죽은 후 집에 와 있게 된 어머니의 여동생 아벨로네에 대한 것, 그리고 아벨로네를 사랑하게 된 것 등이다.

"사실 시는 경험인 것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도시와 온갖 사람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을 알아야만 하며 여러 동물도 알아야 하고 새들이 나는 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그만 꽃들이 아침이면 어떤 몸짓으로 피어나는 지도 알아야 한다.” 즉 예술가에게 있어 ‘본다’는 행위는 사물의 존재 속으로 녹아들어 가 그 존재와 일체가 된다는 행위이다. 예술가는 이 ‘보는 행위’를 통해 사물의 존재에 진실성과 생명을 부여한다. 우리들은 자기가 받아들이기 싫은 것은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며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p 27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추억 그 자체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별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드문 시간에 시의 첫마디가 추억 가운데서 머리를 들고 일어서 나올 것이다.


p 31

<신>이라고 말하면서 무언가 공동의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두 명의 어린 학생들을 보아라. 한 아이가 칼 한 자루 사고, 옆에 있는 아이도 같은 날에 똑같은 것을 샀다고 하자. 일주일이 지나서 두 아이들은 서로 칼을 보여준다. 비슷한 점이 아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음이 드러난다. 두 개의 칼은 각기 다른 두 아이의 손에서 그렇게 달라졌다. 아, 그렇지, 마음속에 <신>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신>을 쓰지 않을 거라고 믿는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 같기만 하더라도 무엇인가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그저 가능한 것 같기만 하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야 하리라... 이런 불안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은... 하지 못한 일 중에서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 젊고 보잘것없는 외국인 브리게는 6층 방에 앉아서 낮이나 밤이나 글을 써야만 할 것이다. 그래, 써야만 한다. 그것이 그의 종말이 되기도 할 것이다.


릴케는 죽음을 삶의 끝이라 보지 않고 삶 속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옛날에는 누구나 열매 속에 씨가 있는 것처럼 사람 속에 죽음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죽음을, 어른들은 큰 죽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그것을 자궁 안에, 남자들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어쨌든 독특한 위엄과 말없는 자부심을 주는 죽음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실존적 주체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주체성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삶이 대량 생산에 의해 자기 존재에서 소외되어 있듯이 그들의 죽음 또한 대량 생산적이 되어 개인에게서 소외되어 있음을 비판한다.

‘지금은 5백59개의 침대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무슨 공장같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규모가 어마어마한 까닭에 하나하나의 죽음 따위는 제대로 계산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자기 자신만의 죽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여태까지 자라온 자기와 지금부터 자라게 될 자기를 한데 합친 듯한 죽음‘을 했다. 주체적인 인간만이 사멸하는 인간 실존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울스고르의 크리스토프 데트레프 브라게 시종관의 죽음.. 하나의 목소리, 7주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크리스토프 데트레프가 아니고 그의 죽음이었다... 시종관이 일생 동안 내부에 간직하면서 길러냈던 사납고도 장엄한 죽음이었다. 그 자신이 평온했던 시절에는 다 써버릴 수 없었던 지나친 교만, 의지, 지배력이 그의 죽음 속으로 흘러들어, 이 죽음은 이제 올스가르드에 머물면서 그 잉여분을 탕진했다.

늘 똑같았다.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죽음을 가졌다. 죽음을 갑옷 속에... 아주 어린아이조차도 흔해 빠진 그 어떤 죽음을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지금껏 살아온 것과 앞으로 있게 될 것을 합쳐서 죽었다.

여자들이 아이를 잉태하고 서 있으면 그 모습이 얼마나 우수에 찬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는지. 그녀들은 자기도 모르게 가느다란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그 커다란 뱃속에는 두 개의 열매가 들어있었다. 하나는 태어날 아이였고 다른 하나는 죽음이었다. 그 말끔한 얼굴에 감도는 짙고도 거의 풍요로운 미소는 이따금씩 이 둘이 몸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그녀들이 생각하는데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p 23

나는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 밤새도록 앉아 글을 썼던 것이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트렁크 하나와 책 상자 하나를 가진 채, 사실 어떤 것에도 호기 심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어쩌면 사람은 추억에 다다르기 위해서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P 48

자기의 운명을 탕진해 버린 인간들의 껍질. 운명이 뱉어낸 침처럼, 축축하게 벽에, 가로등에. 광고탑에 달라붙어 있거나 아니면 뒷골목에서 천천히 흘려내려 가는 하수처럼 칙칙하고 더러운 흔적을 남기고 간다.... 노파는 15분간이나 곁에 서서 낡고 긴 연필 한 자루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꼭 쥔 더러운 손에서 지독히도 천천히 연필을 내보였다... 그것이 어떤 신호라는 것, 내용을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신호라는 것, 버림받은 자만이 아는 신호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그 여자가 신호를 주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신호에는 어떤 약속이 들어있으며, 그것은 내가 사실상 예감했어야 할 장면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P 51

방 한 개만으로 족했을 텐데, 한 개의 안락의자와 꽃과 개들, 그리고 돌이 많은 길을 갈 때 필요한 튼튼한 지팡이, 그 밖에는 아무것도 더 필요 없었을 텐데. 다만 노란 상앗빛 가죽으로 묶인, 오래된 꽃무늬가 그려진 책 한 권, 거기에 글을 써넣었을 텐데. 많은 것을 써넣었을 텐데....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는 것은 신뿐이다. 나의 낡은 가구들은 어느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다. 살 집도 없어 비가 내 눈에 내리고 있습니다. 신이여.

P 53

나는 늘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많은 도시와 도시의 작은 구역들과 묘지, 다리 그리고 길을 돌아다녔는지 아는 것은 하늘뿐이다.


P 57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혼잡한 인파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거리 사이로 카니발인 데다가 저녁 시건까지 겹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있어서, 이리저리 쏘다니고 서로 몸을 밀쳐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약간의 작은 가게들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받아 환했고, 겉에 생긴 상처에서 고름이 솟아나도록 입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초조히 앞으로 밀치고 나가려 애쓸수록 그들은 더욱더 웃어댔고 더욱더 밀쳐댔다. 한 여자의 스카프가 어쩌다 내게 콱 걸려 내가 그것을 끌고 가게 되자 사람들은 나를 멈추게 하고는 웃어댔다. 나도 함께 웃어야 한다고 느꼈으나 웃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 눈에 잘게 자른 색종이 한 움큼 던져 매을 맞은 것처럼 눈이 따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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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바르트 뭉크/ <칼 요한 거리의 저녁> 저 그림 속 어딘가 창백한 얼굴의 말테가 숨어있을 것만 같다.


P 97
“말테야. 온 천지에 바늘이 놓여 있어... ” 어머니는 제법 농담조로 말씀하셨지만,

잘못 꽂힌 바늘이 언제 어디에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으로 떨었다.

“말테야, 너는 소원을 비는 것을 잊지 마라. 소원을 비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돼. 이루어지는 것은 없더라도 소원을 품고 있어야 해. 평생 동안 소원을 품다 보니. 그것이 이루어지길 기대할 수 없는 소원도 있어.”

“인생에서 초보자를 위한 학급은 없고, 언제나 마찬가지로 처리해야 할 지극히 힘든 일이 있을 뿐이란다.”


P 178

아버지의 말끔하고 평온한 얼굴을 보았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확실하게 처리하기 원했음을 알았다.

“당신들은 아버지의 심장에 침을 놓기 위해 여기 오셨군요. 자, 하지시오.”... 나는 누가 심장을 찔리는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 세상의 어떤 사소한 것도 함부로 상상해서는 안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숱한 작은 것들이 합쳐진 것이다.

현실의 모든 것은 속도가 느리고 말할 수 없이 상세하다.

살찐 아버지의 널찍한 가슴이 드러나자 성질 급해 보이는 의사가 문제가 되었던 그 자리를 벌써 찾아내었다. 그러나 콱 찌른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시간은 조금씩 미끄러져 소리를 내며 넘쳐흘렀으며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흘러갔다. 갑자기 어디선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 미지근하면서도 무언가에 막혀버린 듯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 그 소리는 내 귀에 계속 울렸고 나는 동시에 의사가 정확하게 찌르는 걸 보았다. ‘이제 찔렀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 두드리는 소리는 템포로 말하자면 무엇을 망가뜨리는데서 오는 기쁨 같은 것이었다...

이제 수렵관이시던 아버지는 확실히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의 심장만이 뚫린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심장. 우리 가문의 심장이 뚫린 것이었다. 이제 일은 끝났다... 나는 내 심장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의 심장에 비하면 문제가 되지 않음을 처음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낱개의 심장일 뿐이었다.


p 225

소뢰에서 우르고르로 돌아와서 그곳에 있는 모든 책들을 보게 되자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낀 듯 허겁지겁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어쨌든 모든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있지 않으면 한 권의 책이라도 펼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막연히 생각했었다. 한 줄씩 읽어감에 따라 세계가 열렸다. 책들 앞에 세계는 신성했으며 어쩌면 다시 완전히 그 뒤에 있었다.... 이 좁은 방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들이 가득히 보관되어 늘어서 있다. 나는 도전적으로 덤벼들어 책을 한 권씩 필사적으로 읽으면서 무언가 비정상적인 일을 하는 사람처럼 책장을 하나씩 넘겼다... 독서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독서에 매달렸다.


사랑에 대하여

‘사랑받는다는 것은 오직 타버리고 마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잦아드는 일이 없는 기름으로 빛을 내는 등불인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요.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의 지속이다.’ 즉 사랑받는다는 것은 타율적인 것으로서 타 버리고 마는 소멸적인 것이고 사랑을 한다는 것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로써 그것은 곧 실존적 존재의 회복을 의미한다. 주체적으로 진실한 사랑을 실현시키려는 사람들은 결국 영원한 존재자인 신에 대한 사랑의 길로 나아가게 되지만 그 사랑의 길은 어렵고도 아득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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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빛을 끄세요. 그래도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당신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 없이도 당신에게 갈 수 있습니다.

입 없이도 당신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그럼 손으로 잡듯

내 심장으로 당신을 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으세요. 그럼 내 뇌가 고동 할 것입니다.

당신이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당신을 내 피에 실어 나를 것입니다.

『기도시집』 제2부 <순례의 서>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에 대한 사랑의 고백 시


그 누구의 죽음도 아닌 자기 자신의 죽음을 바랐던 그에게, 가장 자기 다운 죽음이 성취되는 날이 왔다. 장미꽃 가시에 찔린 것이 덧나서 백혈병을 일으켰고 이것이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직접 지은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장미꽃이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꺼움이여.


스위스 발리스 주의 한촌 라룽의 들판에 솟아 있는 작고 험한 언덕 위에 올라가서 릴케의 무덤을 오래 찾을 필요가 없다. 슬프게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릴케의 무덤은 예배당 전기공사로 사라진 원래 무덤의 복제이고 릴케의 유골 역시 흩어져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생전에 인식했던 것처럼 두 세계에 걸쳐 존재하며 수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도 아닌 장미의 기꺼운 잠을 자고 있을 릴케를 기억한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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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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