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숨죽인 흐느낌이/ 신경림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랴
불어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랴
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
가지들 휘고 꺾이는 비바람 속에서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
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운다면
너희 왜 모르랴 밝은 날 어깨와 가슴에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걸
.....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지어 설 나무들아
신경림 < 나무를 위하여 > 부분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논 끝에 아름다운 별 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림 <나목> 부분
겨울나무 아래 선다.
밤 산책의 정점.. 모든 고요 속에 나무는 그저 서 있다.
새의 둥지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 나무는 어둠을 받치고 서 있다.
아파트의 불빛아래. 수형이 고스란히 드러난 나무
감출 것 하나 없이. 뿌리에서 가지 끝까지 달려가는 물줄기들의 통로
나무들은 알까? 날마다 그 나무 아래에 서서 늘 바라보는 이가 있다는 것을
수호신과 같은 나무 아래서.. 황갈색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어느새 아기를 잉태했다는 것을... 인기척에 놀란 어미가 어둠 한 구석으로 민첩하게 몸을 감출 때 아기 고양이 꼬리 느릿느릿 움직이던 것을. 나무들은 알까?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아무렇지 않게 의연하게 서있지만 사실은 두렵다는 것을
시린 겨울을 나야만 한다는 것을
바람의 집요한 광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벌써 1월의 중반을 넘어섰다.
무엇을 하였는가?
여유 없음의 날들이다. 쫓기듯, 가위눌린 듯....... 끝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와 당위 속에
어둠 속 깊이 잠들지 못한다.
요 며칠 봄날 같은 날씨였다. 예비고1 아이들과 조세희의 소설 <뫼비우스 띠> 이야기를 했다.
그 소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시대 탓일까. 책을 읽지 않은 아이들의 이해력이 문제일까... 문제 풀이보다 우리는 읽고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공장 컨베이어 벨트 같은 아이들의 하루 일정, 학원에서 학원으로의 순례.. 질식할 것 같다.
4학년 학부모가 묻는다. “교재는요?” 아직은 아이의 생각을 ‘교재’에 가두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바라는 것일까. 문제 위에 동그라미 개수가 그 아이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르치는 일이 즐거움이 아닐 때 마음은 고독해진다.
즐겁지 않은 의무와 당위처럼 여겨질 때 나는 오래도록 헐벗은 나무 아래 서 있고 싶어 진다.‘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어미 품에서 벗어나.... 어둠 속에서 당당해질 때
세상은 가혹한 것이 아니기를.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절기상 대한이 다가오고 있다/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