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나무와 고양이와 산책자와 어둠
1.
나무가 새의 발목을 쥐면
활엽이 불어난다
....
잠시, 라는 수식어가 즈믄, 처럼 부러졌다
서성거리다 부러진 나무를 나무가 주워갔다
2
건조한 입술 대신 부리가 길어졌다
새가 나무의 언어를 쥐고 날아간다
부리는 새의 풍경 중 가장 외로운 발음이다
....
3
새는
좌우가 다른 날개를 나누고
하늘은 어제와 오늘로 나뉘고
붉은 발목이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낳고
단단한 부리로 알을 낳고
당신의 당신이 구전되는 날
그런 날도
송용탁 시인 < 있었습니다> 부분
있었습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새가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새를 고르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 부러진 나무의 언어를 쥐고 하늘을 가르는 새 한 마리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 나무의 언어로 둥지를 짓고 둥지 안에서 나무를 키우는 새 한 마리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 그 새을 키우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새의 날개가 좌 우의 하늘을 가를 때
하늘은 어제와 오늘로 나뉩니다. 붉은 발목은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낳고
.... 당신의 당신이 구전되는 날, 그런 날도 있었습니다.
온전한 비움의 나무 아래 선다.
새를 키우는 나무도, 나무를 키우는 새도 온전히 잠든 시간이었다.
그 많은 새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 어디에 있을까.
살찐 고양이 한 마리 벤치 위에 웅크리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빈 손뿐인 나무는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서 있다.
나무들은 어둠을 떠 받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어둠이 더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오지 않도록 그렇게.
사계절의 이야기가 구전되는 밤
이천이십육 년의 첫 달.
있었습니다.
우주목 혹은 수호신 같은 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고독한 산책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서로 스쳐가고 스쳐가는 시간.
어둠 속에서 익명으로 소환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떠받치고 있는 어둠 사이로 걷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무를 고르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시간.
나무는 여전히 새 한 마리 고르고 있습니다.
아침이 오면... 어디선가 날아와 어깨에 내려앉아 나무의 언어를 물고 둥지로 날아가려는 그런 새 한 마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또 가고
또 다른 하루가 같은 간격으로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로든, 어딘가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천이십육 년 첫 달의 이야기도
기록 속에만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 겨울밤, 어둠을 떠받치고 서있던 나무들과, 어둠을 물고 사라지던 살찐 고양이의 뒷모습과 그 어둠의 일부였던 사람들의 모습도.....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 2024.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