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분실인 것 같습니다

엄마 속엔 늘 엄마가 겹겹이 들어 있었지만 나는 늘 그렇게 홑겹이었다

"관내분실인 것 같습니다."


상처 입히고, 다시 사과하고, 또 상처를 주고, 다음 날에는 없었던 일처럼 행동하는 그 모든 것이 다 지긋지긋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


*『관내분실』은 기억·기록·상실·존재의 의미를 그려낸 김초엽의 작품이다.

‘관내분실’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관내분실이란 단어와 살짝 다르다. 현재의 도서관이 책을 빌리고 반납하고 정보를 찾는 곳이기에 대출하고 싶은 도서가 도서관내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주로 관내분실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소설 속 도서관은 책을 대여하고 정보를 검색하는 곳이 아니라

죽은 이를 추모하는 공간, 이미 죽은 이들의 마인드가 그곳에 데이터형태로 보관되어 있어서 유족 혹은 고인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인텍스를 통해 마인드에 접근할 수 있다. 더 확장된 의미로 해석하면 관내분실은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은 존재들을 상징한다.

과거에 분명 존재했으나 공식 기록에서는 삭제된 인물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사람이었지만, 기록 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된 상태였다.

완벽한 기록과 관리가 이루어지는 사회일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조용히, 체계적으로 ‘분실’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록되지 않는 존재는 정말 사라진 것인가,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인간의 삶은 무의미해지는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힌다.


임신 8주에 접어든 지민이 갑자기 엄마의 마인드를 보고 싶어서 찾은 도서관

“관내분실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인덱스를 삭제해 고인의 마인드에 접근할 방법을 없애버린 듯합니다. 분명 이곳에 마인드는 존재하지만 접근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죠.”

직원의 말에 지민은 불화상태로 헤어진 엄마를 더 만나보고 싶은 집착을 느낀다.

양극성 장애를 앓던 엄마는 지민을 출산 후 산후 후유증이 겹치면서 사랑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의 극단을 오간다. 엄마의 간섭을 견딜 수 없어 지민은 유학을 떠났고 엄마는 그 후 병원으로 들어갔다.

유일한 방법은 고인을 상징할 수 있는 사물들을 가져와서 직접 접근하는 방법이다. 지민이 알고 있는 엄마의 유품들은 대부분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평범한 것들이라 마인드에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빠 송현욱을 찾아간다.

엄마에게 접근할 수 있는 인덱스를 삭제한 이가 아빠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 또한 엄마의 유언 때문이기도 했다는 말을 듣는다.

“네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실제 같아서... 나는 더 견딜 수 없었다.”


북 디자이너 김은하.

엄마가 출산하기 전까지 다니던 출판사. 발간된 책 표지.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엄마가 한 번도 전문적인 자기 일을 가진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지민은 자신이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 가를 뒤늦게 깨닫는다.

문득 지민은 자신 또한 뱃속 아기로 인해

욕심을 내고 있던 프로젝트에서 제외된 것을 팀장으로부터 듣는다.

“아무래도 출산 휴가 들어가고 또 아기가 태어나면 바빠질 테니... 지민 씨가 일 욕심 많은 건 알지만 기존 프로젝트 마무리하는 것으로 업무 분장을 고려했어요.”

누구의 탓도 아닌 것이다.

아기.... 뱃속에 생명을 품었다는 이유로 배려 아닌 배려를 받는 사회.

지민을 임신한 엄마 또한 지금 지민이 느끼는 감정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지민은 엄마를 이해할 것 같았다. 너무 늦었지만

아기를 위해...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집안에 유폐된 여자. 그 여자의 일은 하루 종일 전화기를 들고 딸에게 전화해 대는 것. 조금이라도 늦으면 불안해하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일과 맞바꾼 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북디자이너 김은하가 아닌 ‘지민이 엄마’로 불리면서...


소설의 끝부분에 지민은 북디자이너 김은하라고 적힌 책을 들고 도서관 검색대로 향한다

마침내.... 엄마의 소품들로 꾸며진 아늑한 서재, 마지막 만났을 때보다 희끗한 머리칼을 지닌 엄마가 앉아있었다. 지민은

“엄마. 모든 것을 이해해요.”

엄마는 지민을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지민의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린다.

신파 같은 결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당연히 화해와 위로의 결말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기억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 기억은 기억을 저장한 이의 상황, 판단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 기억하는 일은 어쩌면 철저히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하는 일은 어떤 한 사람의 일생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객관적인 정보로 저장해 두는 것.

관내분실에 나오는 ‘마인드’의 개념은 아마도 사람에 의해 왜곡되거나 다른 의도로 해석된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 정보일 것. 그 사람에 대한 객관적 정보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무리 치밀하고 정교하게 분석된 정보라 해도 그 사람을 제대로 온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지민은 엄마와의 마지막 말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었기에

엄마의 마인드를 찾아 들어가 그 마지막 기억을 바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자기 회피나 합리화 같은 것이 아닐까? 이미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어디론가 떠났을 엄마. 그 엄마의 마인드를 찾아 가상의 공간에서 엄마를 불러내고 ‘이젠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살아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데이터 속의 누군가를 불러내 용서와 이해, 화해를 청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엄마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표현한 시.

배종영시인의 ‘마트료시카’에 이런 부분이 있다.


엄마 속엔 늘 엄마와 똑같은 엄마가 겹겹이 들어 있었지만

나는 늘 그렇게 홑겹이었다


엄마는 엄마 속에 엄마를 숨겨놓고

혹시나 그 엄마 닳아 없어질까,.

내어 줄 엄마가 다 떨어질까 전전긍긍했다

나는 지금껏 도대체

몇 명의 그 엄마를 우려먹고 살아온 것일까


엄마는 언제가 부재하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가능한 한 많은 엄마를 엄마 속에 준비해 준다

겹겹이 겹겹이.. 자식이 화장지를 톡 뽑아쓰듯 끄집어내면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그렇게 수많은 엄마를 아무렇지 않게 뽑아 쓰고 우려먹은 자식은...

마트료시카의 마지막 인형... 마지막 엄마 앞에 비로소 오열한다.

더 이상 뽑아쓸 엄마.

더 이상 우려먹을 엄마의 부재에...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홀겹이었는가를 깨닫는다.

열 달 동안 우리는 엄마 배 속에 살았지만 우리는 엄마를 모르고

엄마는 긴 생애동안 고작 열 달을 품었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안다.


마트료시카 / 배종영/ 2026 강원일보 신춘


열 달 동안이나

엄마 속에 있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엄마를 모른다


그런데 엄마는

고작 열 달 동안 안고 있었음에도

나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


막연,

그렇게 막연은 배운 것 같다

세상이 천애(天涯)의 무인도 같을 때도

엄마가 목선 한 척 노 저어

내게로 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그 믿음은 늘 편도여서

무작정 기다리기만 했지 내가 다가간 기억은 없다

...

엄마 속엔 늘 엄마와 똑같은 엄마가 겹겹이 들어 있었지만

나는 늘 그렇게 홑겹이었다

엄마는 엄마 속에 엄마를 숨겨놓고

혹시나 그 엄마 닳아 없어질까,.

내어 줄 엄마가 다 떨어질까 전전긍긍했다

나는 지금껏 도대체

몇 명의 그 엄마를 우려먹고 살아온 것일까

...

지금은 아무리 엄마를 열어 보아도

엄마 속에 거듭된 손질의

그 엄마가 없다

* 마트료시카 : 나무로 된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로냐(러시아어로 엄마)


엄마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과 어미라는 말...

나는 어딘지 ‘어미’라는 말에 더 끌린다

동물의 어미... 가장 바닥에서 모든 것을 다 내놓을 것 같은

그 어미라는 말이 그래서 좋으면서도 그래서 싫다.

어미라는 단어가 어미인 자신을 다 닳아 없어지게 할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

관내 분실한 엄마를 마인드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만나 화해하는 대신 지금 이곳에서 엄마를 만나야 한다.

불행히도 나는 화해할 엄마가 없다. 지금 이곳에.

내가 몇 번을 우려먹고 내가 몇 겹을 뽑아 쓴 나의 거룩한 엄마가 이제는 없다.

홑겹의 이기적인 나만 남아있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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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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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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