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물 슐튜테(Schultüte)

다시 새해를 맞는 지금, 슐튜테 안에 복을 부르는 소리를 담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물 슐튜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위해 부모들이 준비하는 특별한 선물 ‘슐튜테(Schultüte)’는 독일의 오랜 전통이다. 슐튜테는 두려워하지 말고 달콤하게 시작하라는 의미로 초콜릿, 사탕, 마시멜로, 문구, 머리핀 등을 담아 놓은 고깔모자 모양 상자다.


부모들은 너무 무겁지 않게, 너무 두렵지 않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슐튜테를 채웠고, 아이들은 기쁘게, 설레게, 날아갈 듯 행복하게 슐튜테를 열어보았을 것이다. 아주 오랜 기억 속, 학교 갈 날만을 기다리며 날마다 열어보던 분홍 자석 필통은 나만의 슐튜테였다. 학창 시절 수없이 필통을 바꾸었지만, 입학 첫날의 분홍 자석 필통만큼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새해가 오고 있다. 달력을 한 장 넘기고 다시 맞이하는 새해는 묘하게 안도감을 준다. 지난달은 누구에게나 연습 같은 것이었으니 새로운 계획을 세워도 된다고, 틀렸어도 괜찮다고 위로를 건네주는 시간처럼 여겨진다. 해마다 입학생을 받아주는 이천이십육 번째 인생학교가 시작되었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끝없이 무언가를 배우는 학생들이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시 < 두 번은 없다 >에서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가르침을 주는 선생도 없고, 시험도 없어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는 없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해 배워야만 하는 곳이 인생학교다.


다가오는 설날, 나를 위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슐튜테를 준비하고 싶다. 슐튜테 안에 무엇을 담을까? 너무 무겁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두렵지 않게, 기쁘게, 설레게, 행복하게 할 것들을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새해 아침이면 어김없이 대문 앞에 짚으로 된 복조리가 걸려있곤 하였다. 쌀을 씻는 용도라기보다는 대부분 장식용이었지만 복조리 장수들의 카랑한 목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오면 복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슐튜테 안에 복을 부르는 소리를 담고 싶다. 겨울을 이겨낸 나무의 초록 숨소리, 새의 날갯짓 소리, 산사의 풍경소리, 윷가락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소리, 도란도란 즐거운 목소리, 커다란 솥 안에서 떡국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 하늘을 가르는 연이 바람을 타는 소리, 풍물놀이패의 웅숭깊은 징 소리 그리고 조용조용 책장 넘기는 소리와 자판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 인생학교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 그 모든 소리로 채워진 슐튜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선물일 것이다.


또다시 2026년 새해 인생학교의 교문이 활짝 열려 있다. 우등생도 열등생도 없이 모두에게 특별한 배움을 주는 인생학교를 향해 ’복(福)‘으로 가득 찬 저마다의 슐튜테를 가슴에 안고 전진한다.

2026.2.13 .경남신문 금요에세이 지면 수록/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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