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심긴 그 순간부터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선택할 수 없는 자리
올리브나무
척박한 땅에서 온몸을 비틀며 자신을 짜 올려, 사랑으로 피고, 맺은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 울퉁불퉁한 둥지, 찢기고 꺾여진 가지, 깊이 구멍 뚫린 심장, 올리브 나무의 신성한 기운은 바로 그 사랑의 성흔에 있다.
-박노해
<나의 나무는 >
광야의 마을 길에서 만난 열두 살 마흐무드에게
네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게 뭐냐고 물었다.
소년은 올리브나무에 기대며 씨익 웃어보인다.
“제가 맨 처음 타고 올라갔던 나무예요.
이 나무 아래서 놀고 일하다가 숙제도 해요.
제가 잘못하고 부끄러운 날에는요,
이 나무에 속삭이며 기대 울기도 해요.
저도 이 올리브나무처럼 단단하게 자라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게도 한 그루 나무가 있는가. 소년처럼 나무 아래서 놀고 일하다가 숙제도 하고 나무에 속삭이며 기대어 울기도 하는 그런 나무.
마음이 삭막해져 간다. 마음의 나무가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다. 무언가에 덤덤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열정이 식어간다는 것. 내 안의 나무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
<폭격 속에 살아남아 >
이스라엘은 2006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주변의 고층 건문은 다 파괴되었는데
폭격에 살아남은 올리브나무는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채 새잎을 내고 있었다.
매일 폐허 더미를 헤치며 세간살이 하나라도
더 건져보려 애를 쓰는 여인들은
살아남은 이 나무를 ‘희망의 나무’라 불렀다.
이것도 희망이라고... 그래, 이것이 희망이라고
모든 곳이 폐허. 오롯이 살아남은 나무 한 그루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여전히 새 잎을 내는 나무
아무렇지 않게 잿빛 폐허 속에 올리브 그린 빛 희망을 보여주는 나무...
<목 잘린 천 년의 올리브나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점령한
1967년 이후 최소 250만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불태워지고 목 잘리고 뽑혀 나갔다.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점령자의 손에 잘려나간
천 년의 올리브나무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나니.
‘모든 사람이 잊어보려도 내가 기억한다.
모든 사람이 침묵하여도 내가 증언하다
모든 사람이 쓰러져가도 내가 여기 서 있다.’
인간이란 참으로 잔인한 존재다.
야만과 광기.
신이 인간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다.
전쟁, 희생, 이기심과 탐욕.... 성공이라는 이데올로기... 두렵다
인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사막의 어린 나무>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사막 길의 어린 올리브나무,
뜨거운 모래 폭풍에 쓰러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는 심긴 그 순간부터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선택할 수 없는 이 자리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 푸르러야만 한다.
사람은 편하게 살고 싶고, 쉽게 살기를 바라지만,
강한 불볕과 모진 바람으로 인생을 단련시킨 자에게
고귀한 열매를 맺게 하는 건 하늘의 방식인가 보다
우리는 그런 나무, 그런 창조, 그런 사람에게
감동하고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니.
< 천 년의 시작은 이렇게 >
나무기 잘려나가고 좋은 땅을 빼앗겨도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황무지를 일구며
다시 어린 올리브나무를 심어나간다.
척박한 땅에서 올리브나무 하나 키우기란
아이를 기르듯 공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모래바람과 짐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한 그루 한 그루 낡은 드럼통으로 감싸고
그 위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상징하는
초록, 하양, 빨간색을 기원하듯 칠해두었다.
이 작고 여린 나무들 중에 끝내 살아남아
다시 천 년을 이어갈 올리브나무가 있으리니.‘
그토록 길고 큰 ’ 사랑의 나무‘이 시작은
얼마나 미약하고 눈물겨운지
큰 나무의 시작은 어린 나무에서부터다
거대함이란 아직 사소함에서부터
아주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그 시작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부터
<영혼을 위한 자리>
알 자지라 평원에 자리한 소박한 농부의 집
따스한 햇살이 감싸는 흙벽에 기대앉아
향기 진한 아라빅 커피를 마시며 깊은숨을 쉰다
이토록 작은 영토, 작은 장소, 작은 올리브나무인데
왜 이리 넉넉하고 따스하고 아늑하여
그대와 함께 오래오래 앉아있고 싶은지
작지만 오롯한, 영혼을 위한 자리 하나
흙벽과 작은 올리브나무
단출한 음식.
흙벽의 올리브나무가 주는 위안. 평화 영혼의 휴식
< 묘석 위의 올리브 가지 >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 그 후이다.
파괴는 한순간이지만 재건은 긴 가난과 노동이고
죽은 자는 산 자의 가슴에서 매일 다시 죽는다.
살아남은 이들은 마을 묘지를 조성해
올리브 나무 가지를 바치며 경전을 읽고 기도한다
“죄 없이 죽은 자는 높은 자리에 있으리라.”
신의 손길을 대신하듯 올리브나무 가지가
차가운 묘비를 푸른 숨결로 어루만진다.
죄 없이 죽은 자는 죽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까
전쟁이 삼킨 것들.... 죽은 자는 산 자의 가슴에서 매일 다시 죽고 살아남은 이들은 마을 묘지에 올리브 나무 가지를 바치며 경전을 읽고 기도한다. 평화로움을 , 안식을.
올리브 나무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1889년 생레미드프로방스에서 주로 《올리브 나무》(Olive Trees)를 주제로 최소 15점의 그림을 그렸다. 1889년 5월부터 1890년 5월까지 자신의 요청으로 요양원에서 생활하며 요양원 정원을 그렸고,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허가를 받자 인근의 올리브 나무, 사이프러스나무 및 밀밭 등을 그렸다.
반 고흐는 올리브 나무에 매료되었다. 올리브 나무의 다양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색상과 불규칙한 형태는 그에게 새로운 기법과 접근 방식을 실험하도록 자극했다. 올리브 나무에서 — 그 고대의 뒤틀린 형태가 지닌 표현력에서 — 반 고흐는 모든 자연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영적인 힘의 발현을 발견했다. 그의 붓놀림은 지중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땅과 심지어 하늘까지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다.
올리브 나무 그림은 반 고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1889년 5월에 그린 올리브 나무 연작은 생명, 신성, 삶의 순환을 상징했고, 1889년 11월의 연작들은 겟세마네에서 고뇌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상징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올리브를 따는 사람들》을 그린 그의 그림들은 삶의 순환 중 하나인 수확 또는 죽음을 묘사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준다. 또한 이 그림들은 인간이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어떻게 신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반 고흐는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올리브 나무가 "까다로우면서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동생 테오에게 "올리브 나무를 포착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오래된 은백색 나무들이, 때로는 푸른색이 더 강해지고, 때로는 녹색을 띠거나, 청동색을 띠거나,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이 감도는 주황색 흙 위에서 창백하게 바래기도 하는데... 매우 어렵다"라고 썼다. 그는 "올리브 숲의 속삭임은 매우 비밀스럽고 엄청나게 오래된 무언가를 담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 우리가 감히 그릴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올리브 숲의 속삭임. 비밀스로 움. 엄청나게 오래된 목소리..
올리브 나무 아래 서 보고 싶다.
이제.... 남아있는 것들을 생각할 시간..
그럼에도 멈출 수 없고 전진활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전진하는 것... 정체되지 않게 전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모처럼 휴식이다. 반복되는 일상.
나무는 심긴 그 순간부터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선택할 수 없는 이 자리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 푸르러야만 한다.
선택할 수 없는 자리에서.... 죽어가는 날까지
최선으로 푸르른 나무... 올리브나무.. 영혼의 나무. 목소리들을 먹고 자란 나무
선택할 수 없음 이란 말에 가슴이 아리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도 선택과 선택할 수 없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아닐까. 선택의 범위... 선택의 정의....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2월의 바람은 차갑다. 박노해의 사진집 올리브나무 아래에서를 읽는다
상처란 곧 성스러운 흔적. 인생에 대한. 걸어온 길에 대한 걸어갈 길에 대한....
가슴 안에 타오르는 것이 식지 않기를..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에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신중함일 수 있지만 그 신중함은 늘 벽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를 가두고 통제하는 그런 벽.
내 안에 그런 나무 하나 있기를
올리브 나무
상처를 성스러운 흔적으로 만들고야 마는 그런 나무 하나 있기를 기원하는 2월..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