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에브리맨> 필립 로스

<에브리맨>

1998년 퓰리처상 수상,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 번, 펜/포크너 상을 유일하게 세 번 수상한 작가, 필립 로스

2006년에 발표된 소설 < 에브리맨 >은 그의 스물일곱 번째 장편소설이며, 작가에게 세 번째로 펜/포크너 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다. 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죽는 이야기인 이 소설을 통해 삶과 죽음, 나이 듦과 상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사유를 보여준다.



KakaoTalk_20260218_151536699.jpg

여기, 사람들이 앉아 서로 토해내는 신음을 듣는 곳,

중풍 환자가 몇 가닥 남지 않은 마지막 을씨년스러운 머리카락을 흔드는 곳,

젊은이가 창백해지고 유령처럼 마르다가 이내 죽는 곳,

무슨 생각만 해도 곧 그득한 슬픔이 밀려오는 곳... 존 키츠 <나이팅게일>


황폐한 공동묘지에 있는 무덤 주위에는 전에 뉴욕에서 광고일을 하던 동료 몇 사람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그의 활력과 독창성을 회고하며, 딸 낸시에게 그와 함께 일 했던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의 두 아들 랜디와 로니, 그들이 여기 온 것은 그저 의무감일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의 형 하위와 형수, 그의 세명의 전 부인 가운데 두 번째이자 낸시의 어머니인 피비,

낸시는 관쪽으로 몸을 돌려 흙을 한 줌 쥐더니 그것을 관뚜껑에 뿌리기 전에 어린 소녀 같은 느낌으로 말했다.

“아 결국 이렇게 되네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하위의 순서였다. “ 아버지의 해밀턴 시계는 동생이 수영할 때문 빼고 낮이나 밤이나 차고 있었어요.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마흔여덟 시간 전에 영원히 풀어놓고 말았소. 간호사에게 주면서 안전하게 잘 보관해 달라고 했다는군. 수술. 결국 동생을 죽인 수술을 받는 동안에 말이오... 이제 그 해밀턴 시계를 차고 다니며 시간을 볼 사람은 조카딸이 되었소.”


그다음은 두 아들. 사십 대 후반인 그들은 검은 머리, 많은 말이 담긴 듯한 검은 눈과 서로 꼭 닮은 크고 관능적이고 푸짐한 입 때문에 그 나이 때 그들의 아버지를 보는 듯했다. 로니는 손에 흙을 한 줌 쥐자 몸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적대감이라기보다는 적대감 때문에 빠져나올 수단을 찾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랜디는 “편히 주무세요 아버지”라고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부드러움, 애통함, 사랑, 상실감은 흔적도 없어 소름 끼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관에 다가간 사람은 개인 간호사 모린이었다. 그녀는 삶이나 죽음 어느 쪽도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다. 웃음을 지으며 오므린 손에서 흙이 천천히 흘러내려 손에 스치고 관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어떤 육욕적인 행동의 서곡처럼 보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또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례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 빠졌다는 점이었다.

몇 분이 안되어 모두 가버렸다. 지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우리 종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활동으로부터 떠나가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 또는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진정으로 기뻐하기도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친구들이다. 그들은 막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을 추억하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이 장례식의 당사자인 '그'이다. 소설은 노년 시절의 '그'의 삶에 초점을 맞춰, 그의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삶과 죽음,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건강과 젊음이 떠나고 쇠잔해지는 육체. 찬란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곧 찾아올 영원한 망각을 기다리는 삶. 서글프고 애달프지만 그것이 바로 늙어가는 것임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삶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것은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우리가 맞아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고.


책 속에서

그도 난공불락의 남자로 남아 있으려는 전투에서 계속 패배했다. 시간은 그의 몸을 붕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인공 장치들의 창고로 바꾸어 놓았다.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 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

... 젊은 시절 그는 스스로 고지식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소망보다는 부모의 소망에 부응하여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고 안정된 생계를 위해 광고계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혼은 그의 감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놓인 처지를 혐오하면서 내내 뭔가 안정된 것에 굶주려 있었다. 두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다만 나약했고 무방비 상태였고 혼란에 빠져 있었을 뿐이었다.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인생의 반을 발광 상태에서 살지 않으려다 보니 죄 없는 자식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도 사면받을 권리가 있다고 확신한다.


p47

창문 너머로 나무의 잎들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10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의사가 찾아왔을 때 그는 말했다. "언제 퇴원하죠? 1967년 가을을 놓치고 있잖아요" 의사는 침착한 표정을 귀를 기울이더니, 이윽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모든 걸 다 놓칠 뻔했는데."


아버지는 마지박 병에 걸리기 오래전에 랍비에게 자신의 장례식은 완전히 히브리어로만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히브리어가 죽음에 부여될 수 있는 가장 강한 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 그는 모든 종교가 불쾌했다. 그에게는 죽음과신에 관한 천국이라는 낡은 공상이 통하지 않았다. 그저 몸만 있을 뿐이었다. 태어나서 우리에 앞서 살다 죽어간 몸들이 결정한 조건에 따라 살고 죽는 몸. 그가 그 자신을 위한 철학적 틈새를 찾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틈새였다.


p60 그는 스무 명 남짓한 친척들과 함께 무덤가에 서 있었다. 평범한 소나무로 만든 관이 띠에 묶여 어머니의 관 옆에 파놓은 구멍으로 내려졌다. 죽은 사람은 그곳에서 자신이 보석을 팔면서 보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터였다.

아버지는 사업체를 자기 이름이 아닌 ’ 에브리맨 보석상‘이라 불렀다.

“노동자들이 다이아몬드를 사는 건 큰일이야... 어쨌든 자기 마누라가 그걸 끼고 있으면 그 남편은 단순한 배관공이 아닌 거지. 다이아몬드를 낀 마무라를 둔 남자가 되는 거야. 불명의 흙 한 조각, 죽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간이 손가락에 끼다니.”


p 64

무덤가 한쪽에 크게 쌓인 흙더미에 삽 두 자루가 날을 박고 꼿꼿이 서 있었다. 그는 무덤 파는 사람들이 두고 간 거구나. 나중에 묘혈을 메우는 데 쓰겠지 생각했다. 관 뚜껑에 흙을 한 줌 뿌리고 행사가 끝나면 모두 차로 떠나겠지 상상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랍비에게 전통 유대교 의식을 요청했으며 그 의식에 따르면 조객들이 직접 매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위는 엄숙한 태도로 무덤으로 걸어가더니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삽을 약간 아래로 기울여 흙이 미끄러져 떨어지게 했다

흙은 관의 나무 뚜껑 위에 떨어지면서 사람이 존재 안으로 빨려드는 소리를 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그들은 그의 아버지의 무덤이 옆에 있는 무덤들처럼 평평해질 때까지 그 흙을 삽으로 다시 구덩이에 퍼 넣어야 했다. 흙을 다 옮기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결국 힘든 노동은 하위와 하위의 네 아들과 그의 두 아들에게 돌아갔다. 여섯 아들은 둘씩 짝지어 흙을 교대로 퍼 날랐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그는 이 일이 절대 끝납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묻는 이 일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뚜껑의 장식은 다윗의 별뿐이었다. 흙이 뚜껑을 덮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단지 관 안이 아니라 흙의 무게 밑에 누워있게 될 것이었다.... 6명의 아들들은 고래의 제의를 담당하는 조객이 아니라 용광로에 연료를 퍼넣는 구식 일꾼들 같았다. 흙의 피라미드는 사라졌다. 랍비는 앞으로 나와 맨 손으로 표면을 고르게 다듬은 뒤 막대기로 흙에 무덤의 윤곽을 그렸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1센티미터씩 사라지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 맨 끝까지 그 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죽음 같았다. 그리고 첫 번째 죽음보다 덜 끔찍하지도 않은 죽음..... 그는 막대기가 흙에 그어놓은 금. 아이들이 놀이할 때 쓰려고 그어놓은 것 같은 금.

... 발은 멀어지는데도 마음은 계속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무덤을 메우는 동안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그는 묘지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입안을 막처럼 덮은 흙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P 69

스타피시 비치의 콘도미니엄은 지붕널을 얹은 매력적인 1층짜리 주택들이었다. 커다란 창문, 뒤편 목재 테라스, 주택 여덟 채가 관목을 심은 정원과 연못을 반원형으로 둘러싸며 하나의 단지를 이루었다. 이런 식의 단지가 100 에이커의 땅에 흩어져 노인 오백 명이 살았다.... 그는 이 마을로 이사 오자마자 방 셋 짜리 콘도의 해가 잘 드는 거실을 화가의 스튜디오로 만들었다. 매일 한 시간을 널을 깐 길을 따라 6km 남짓 걷고 난 뒤 하루의 남은 시간은 거의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야망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

p72 그는 그저 살아있기 위해 그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뿐이었다. 늘 그랬지만,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그는 종말이 꼭 와야 하는 순간보다 일 초라도 더 일찍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P73

환자들 대부분은 반대편 끝으로 나오겠지만 몇 주에 걸쳐 몇 명은 나오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침 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호출되어 수술실로 들어가기 위해 일어난 사람은 누구든 요청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읽던 섹션을 주고 갔다. 대기실의 차분한 분위기를 보면 뇌에 이르는 동맥을 찢어 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라도 깎으로 가는 것 같았다.

p75

의사 몇 명은 이미 수술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전신 마취를 원하는지 아니면 국부 마취를 원하는지 물었다. 꼭 웨이터가 레드 와인을 원하는지 화이트 와인을 원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혼란스러웠다.... 우리 한테는 국부가 낫죠. 환자가 의식이 있으면 뇌 기능을 더 잘 관찰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세 번 결혼을 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


p77

수술대에 누워 카테터가 꿈틀거리며 관상동맥을 따라 올라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일 년 뒤에 다시 혈관 형성 수술을 받아 좁아지기 시작한 이식 조직에 스탠드를 하나 더 넣어야 했고 그다음 해에는 한 번에 스탠드를 세 개 넣어야 했다.... 정신을 다른 데 두려고 아버지의 가게를 떠올리고 아버지가 판매하돈 손목시계 상표와 벽시계 상표 일곱 개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 씨앗 같은 기억........ 수많은 생각들이 저절로 떠올라 천천히 움직이는 시간을 채웠다.


p 83

낸시가 그의 병실 침대에 앉아 그의 품에서 운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열세 살 때 그가 그녀를 떠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부모의 화해라는 사라지지 않는 환상을 고백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는 작은 소리로 말하며 딸의 등을 쓰다듬으며 “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그것은 진실이었고, 또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P86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

크레이머는 뇌암으로 쓰러졌고, 부인이 휠체어를 밀며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는 광경이 눈에 띄곤 했다. 그는 은퇴를 한 상태에서도 계속 중요한 사명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치는 사람처럼 전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죽기 전 열한 달 동안은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작아진 것에 어리둥절했고, 자신이 무력한 것에 어리둥절했고, 제럴드 크레이머라는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하는 사람이 약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죽어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한때 독단적으로 모든 일의 한가운데 있다 이제는 아무 일에도 끼지 못하게 된 사람의 쓰라린 의기소침함이었으니. 사실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가 나서 절대적인 소거라는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꼼짝도 못 하는 영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통증이 사람을 정말 외롭게 만드네요" 그러면서 다시 허물어지며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정말 창피해요"

"창피할 일 전혀 없습니다."

"있어요. 있어요" 그녀는 울었다.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거, 궁상맞게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건 전혀 창피한 게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돼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부끄러운 거로구나. 그는 생각했다. 자신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초라한 거겠지. 하지만 누군들 안 그럴까? 그들 모두 자신이 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안 그런가? 신체의 변화가 부끄러웠다. 남자의 힘이 줄어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를 비틀어버린 오류들과 그를 기형으로 만든 충격들 - 스스로 가한 것과 외부에서 온 것 모두 - 이 부끄러웠다.


밀리선트 크레이머가 겪는 축소의 과정에 무시무시한 웅장함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과 비교되어 자신의 황량함이 아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녀가 겪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심지어 손자들의 사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통 집 사방에 걸어놓고 있는 그런 사진들, 어쩌면 이 여자는 이제 그런 것도 안 볼지 몰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통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열흘 뒤 밀리선 트는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자살했다.


p98

가족사에 저항하려면 상당한 전투성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이제 그의 무기고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전투성은 거대한 슬픔으로 바뀌었다. 긴 저녁의 외로움 때문에 아들에게 전화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고 나면, 그 뒤에는 늘 슬픔이 찾아왔다. 슬프고 기진맥진했다.


P98

랜디와 로니는 그의 가장 깊은 죄책감의 근원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자신의 행동을 그들에게 해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청년이었을 때는 여러 번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때는 둘 다 너무 젊고 분노가 강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나이가 들고 분노가 강해 이해 못했다.


변함없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자세는 그럼 용서받을 만한 것인가? 아니면 그 결과가 덜 해로운가? 그는 이혼을 하여 가족을 깬 미국 남자 수백만 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다고 그가 그들의 어머니를 때렸는가? 그들을 때렸는가? 그들의 어머니를 부양하지 못했다는가, 아니면 그들을 부양하지 못했는가? 그들 가운데 누구라도 나한테 한 번이라도 돈을 구걸해야 했던 적이 있는가? 내가 한 번이라도 모질었던 적이 있는가? 할 수 있는 제안이라면 다 하지 않았던가? 무엇을 피할 수 있었을까? 그가 할 수 없었던 일, 즉 그들의 어머니와 결혼한 채로 계속 사는 것 외에 달리 무슨 일을 했으면 그들이 나를 받아들여주었을까? 그들이 그것을 이해해주느냐 아니면 이해해주지 않느냐, 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그리고 그들에게도) 슬픈 일이었지만, 그들은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또 그들이 잃은 그 가족을 그도 잃었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 자신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틀림없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스,픈일이었다. 그에게도 슬픔이 있었고 가책이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방어하려고 푸가처럼 이어지는 질문드를 던지도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그런 슬픔과 가책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130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삶이 우연히 예기치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알려진 또는 알 수 없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가장 좋았던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그의 마음이 맴돌곤하는 원들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가장 좋았던 순간을 기억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노년의 가장 좋은 순간을 즐겨야 하는 것 아닐까? 혹시 노년의 가장 좋은 순간이란 바로 그것 아닐까- 어린 시절의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갈망하는 것?그때 그의 몸은 관 모양의 싹과 같았다.


p135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질감‘ 이것은 그의 언어에서는 그에게 낯선 어떤 상태를 묘사하던 말이었다... 이제는 그 어떤 것도 그의 호기심에 불을 붙이지 못했고 그의 요구에 답을 해주지도 못했다. 그의 그림도, 가족도, 이웃도. 아침에 널을 깐 산책로에서 그의 옆에서 조깅하는 젊은 여자들을 빼면 아무것도. 맙소사

그는 생각했다. 한 때 나였던 남자! 나를 둘러샀던 생활. 나의 것이었던 힘. 그때는 어디에서도 ’이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한 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p162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냐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P164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 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p166

그는 세 번 이혼했다 한 때 헌신보다는 비행과 실수로 더 유명했던 연쇄 남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 감당해 나가야 할 터였다... 예측하지 못했고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 한 세기의 사분의 삼에 가까운 세월을 살았는데 이제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생활방식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때까지 남아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할 것 같았다.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거야.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낸시의 어머니와 함께 만을 헤엄치던 남자는 자신이 가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꾼적이 없는 곳에 이르렀다. 이제 망각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 지금이 그 먼 미래였다.


p 168

예정된 수술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토요일 아침, 무시무시한 꿈을 꾸었다. 그림교실의 밀리선트 크레이머와 벌거벗은 채 나란히 누워있는 꿈이었다.침대에서 그녀의 차가운 죽은 몸을 안고 있었다.

성공하지 못한 남편, 아버지, 질투심에 찬 동생, 한 입으로 두말하는 남편, 무력한 아들,그의 가족의 보석상으로부터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친족,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도 도저히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친족을 소리쳐 부르는 자신의 모습, “엄마, 아빠, 하위, 피비, 낸시, 랜디, 로니.. 어떻게 해야하는 지 방법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나 떠나고 있다고, 나는 이제 당신들을 모두 떠나고 있어.”

그 사람들이 고개만 돌려 너무나 의미심장하게 소리쳤다. “너무 늦었어!,”


P 171

그는 결국 뉴욕에 가지 못했다. 뉴어크 공항 바로 남쪽에 부모님이 묻힌 묘지로 나가는 출구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5에이커 면적의 유대인 묘지와 접한 오래된 트럭 통행로에 이르렀다.많은 무덤 주위 흙이 파이이고 대석이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고 모였을 때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에 그가 본 것은 열린 무덤에 걸쳐진 띠들 위에 놓인 관뿐이었다. 평범하고 수수했지만, 그 구멍은 온 세상을 삼켰다. 이윽고 잔인한 매장이 진행되고 흙이 입을 가득 메우는 듯한 느낌이 뒤따랐다.


P174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강렬한 일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정말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삶을 맛보고 나면 죽음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이 끝없이 계속 된다고 생각해왔지요. 내심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P175

그의 부모는 묘지의 경계선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거기 새겨진 두 사람의 이름을 보고 흐느낌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고 말았다.

들은 그저 뼈, 상자 속의 뼈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뼈는 그의 뼈였다. 그는 그 뼈에 가능한 한 바짝 다가가 섰다. 그렇게 가면 그들과 연결이라도 될 것처럼,미래를 잃은 데서 생겨난 고립감은 완화되고, 사라진 모든 것과 연결되기라도 할 것처럼. 그다음 한 시간 반동안은 그 뼈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뼈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육신은 녹아 없어지지만, 뼈는 지속된다. 내세를 믿지 않고,


P177

그의 어머니는 여든에 죽었고 아버지는 아흔에 죽었다.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저는 일흔 하나에요” “좋구나, 네가 살아있구나.”어머니가 대답했다. 그의 아버지는 “되돌아보고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것은 속죄하고 남은 인생을 최대한 활용해봐라.”

그는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지금 살아 있기를 바라는 갈망.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갈망도 감당활 수가 없었다.


P177

묘지를 통과하다 삽으로 묘혈을 파는 흑인과 마주쳤다.아직 다 파지 않은 50 cm깊이의 묘혈에 서 있었다.

“ 나한테 지도가 한 장 있습니다. 이 묘지에서 팔렸거나 터를 잡아놓은 무덤은 다 나와 있죠. 그 지도가 있으면 무덤을 찾을 수 있어요. 탐침을 가지고 땅을 50~100cm찔러봐요. 그렇게 해서 옆 무덤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알아내는 겁니다.땡 ... 옆 무덤 관에 닿으면 그런 소리가 나요.”

“파나가면서 계속 네모를 유지해야하는 거예요.우선 트레일러를 열 번 채울 때까지 흙을 팝니다.열번. 그럼 1미터 정도 되는거죠.”

“그럼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내 할 일을 하는데는 세 시간 쯤 , 심지어 네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요. 파는 곳에 따라 다르죠. 아들녀석은 두시반 반 조금 더 걸립니다. 무덤은 네모 반듯하고 바닥은 평평해야 합니다. 깊이는 2미터 정도, 멋있어 보여서. 구멍으로 한 번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도 들어야 해요. 바닥에 침대를 놓아도 될만큼 평평해야 합니다. 이 구멍은 유족을 위해서도 제대로 파야하고,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제대로 파야합니다.”


P 185

“혹시 우리 부모님 무덤도 파셨는지 궁금해서요.”

“그럼요 내가 팠죠.”

“댁과 아드님한테 뭘 좀 드리고 싶어요. 아버지는 ’네 손이 아직 따뜻할 때 주는 게 최선이다.‘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는 무덤파는 남자에게 50달러 두장을 건네주었다. 가까운 날에 그를 위해 침대를 놓을 수 있도록 평평한 구멍을 파고 있을 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p 187

그는 오른쪽 경동맥 수술을 위해 수요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갔다. 왼쪽 경동맥 수술 때와 정확히 똑같았다. 마스크를 쓴 마취의가 국부 마취와 전신마취 중 어느 쪽을 원하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이번에는 전신 마취를 부탁했다. 전보다 수술을 쉽게 견뎌보려는 것이었다.

뺘들이 해준 말 때문에 그는 기운이 솟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친바다 저 멀리 100미터나 나간 곳에서 대서양의 큰 파도를 타고 해변까지 단숨에 들어오던 늘씬한 작은 어뢰처럼 상처하나 없는 몸을 지닌 그 소년의 활력은 어떤 것으로도 꺼버릴 수 없었다.아, 그 거침없음이여. 짠물과 살을 태우는 태양의 냄새여! 모든 곳을 뚤고 들어가던 한 낮의 빛이여, 여름의 매일매일 살아있는 바다에서 타오르던 그 빛이여. 눈에 잠을 수 있는, 엄청나게 크고 귀중한 보물이었다.... 그의 고향을,십억,조, 천조 캐럿 짜리 행성 지구를, 그는 쓰러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불길한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느낌으로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하며 밑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 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에브리맨은 죽는다.

누구나 원하지 않았어도 태어났듯 누구나 원하지 않아도 죽음을 맞는다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 우리가 후손을 남기는 이유는 생의 마지막 순간. 조문을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해 줄 누군가가 있어야 2미터 정도 깊이의 네모난 땅 속으로 편안히 들어갈 것 같은.

'그'로 지칭되는 남자, 육체적 탐닉과 부, 열정으로 세속적 기준으로 보자면 성공한 인생이라 할 만한 그의 죽음... 레드 와인인지, 화이트와인인지를 고르듯 전신 마취와 부분 마취를 선택하는 삶

늙어감은 죽음을 향해가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설날 연로한 친척 어르신을 만나고 오는 날은 마음이 좋지 않다. 해가 갈수록 흙의 얼굴에 가까워지는...

어쩌면 그것은 그분만의 증상이 아닌 것. 인류의 보편적인 증상. '죽음'에 이르는 필연적 증상.

나 또한 예외가 아닌.

그러하기에 더욱 두려운....


<눈풀꽃 >

루이스 글릭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내면서

....


재의 수요일이다. <에브리맨>을 읽은 날... 입 안에 깊게 판 묘지의 흙 내음이 가득한 날... 마침 재의 수요일이다. 이마에 재를 바름으로써 ... 다시 흙사람이 될 우리를 기억할...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로마 미사 경본』 208면,

이 재는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인간의 유한함을 상기시키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려는 참회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생의 마지막을 알 수 없기에

오늘이 마지막 인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 모든 꽃이 지고 모든 꽃이 피듯.../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2024 12

20250122_091955.jpg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려원 산문집/ 2022

20240814_093321.jpg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작가의 이전글올리브 나무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