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아 운 좋은 삶을 영위한다.
2월 28일 미군과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이란의 초등학교 희생자는 175명으로 늘었다. 7살에서 12살, 꿈 많던 소녀들이 있어야 할 교실에는 주인 잃은 가방과 교과서만 남았다.
이란 국기를 둘러 겹겹이 쌓은 관들, 그리고 관 위에 사탕과 장미꽃잎을 뿌리며 말없이 흐느끼는 사람들
1m 간격의 구덩이가 꿈 많던 아이들의 마지막 거처다.
1m 간격의 직시각형, 반듯반듯한 네모
아이들의 꿈은 네모 안에 갇혀버렸다
세모이거나 동그라미이거나 타원형이거나... 그 밖의 수많은 모양이었을 꿈이
경직된 네모 안에 오열과 비탄, 안타까움으로 덮였다.
씨앗들이 짓이겨졌다. 전쟁의 참화 속에...
카테콜 비츠의 석판화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가 떠오른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1941년 석판화 카테콜 비츠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는 근대 독일의 역사 속 고통에 찬 민중의 몸짓을 기록한 화가다.
석판화 ‘씨앗을 분쇄하지 말라(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1942년
"인생에는 유쾌한 면도 있는데 왜 당신은 비참한 것만을 그리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확히 말해 두고 싶다. 나는 처음부터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에 동정을 하거나 공감을 했기 때문에 그들을 그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서 단순 명쾌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녀의 삶은 궁핍하지 않았고 유복했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작품들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 삶에 억눌린 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들과 손자의 죽음 때문일 수도 있다. 케테 콜비츠는 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를 잃었다.
전쟁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광기의 변주일 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이란과 미국(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결단의 버튼을 만지작 거릴 때 씨앗들은 짓이겨진다. 들판에서 자신의 집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전선에서 참혹하게 일상은 와해되고 붕괴된다. 사라진다. 멸종한다.
"페터는 절구로 빻아서는 안 될, 씨앗으로 쓰일 열매였다. 그는 뿌려질 씨앗이었다. 나는 씨앗 한 알, 한 알을 뿌리는 사람이며 재배자이다. 한스(차남)는 어떤가. 그는 미래를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으로서 성실히 봉사할 것이다. 그것을 인식한 이래 나는 다시 명랑해져서 냉정을 되찾고 견실해졌다. “
- 1915년 2월 15일 일기에서
아이들을 품에 감싸 안은 여인, 나이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품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팔을 벌려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여인은 이미 세상의 야만을 알고 있는 표정이다. 쉽게 짓이겨진다는 것을, 의도와는 무관하게 분쇄되고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다는 것을.
여인의 팔은 가냘프지 않다. 여인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아이와는 달리 다른 한 아이는 세상에 대해 무지한 시선이다. 세상이 무엇인지, 세상살이가 무엇인지 알기에는 일곱 살에서 열두 살의 나이는 충분하지 않다.
< 애도 >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
그동안 전혀 의견 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
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실내에 모인 가수들이 예행연습을 하듯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박자나 화음은 맞지 않지만 그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실하다
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조문객들이 눈물을 닦으며 줄기어 나가기 시작하면
왜냐하면 그런 날에는
전통 의식에 갇혀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9월의 늦은 오후인데도
햇빛이 놀랍도록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그때
당신은 갑자기
고통스러울 만큼 격렬한 질투를 느낄 것이다.
살아있는 당신의 친구들은 서로 포용하며
길에 서서 잠시 애기를 주고받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저녁 산들바람이
여인들의 스카프를 헝클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
‘운 좋은 삶’의 의미이므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
-루이스 글릭
씨앗들이 짓이겨진 175개의 네모를 받아들이는 대지의 구멍들
애도하고 오열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이 안타까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어오는 바람이 검은 스카프를 헝클어뜨릴 때....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누군가를 땅에 묻고 돌아와도 꾸여 꾸역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가고... 하던 일을 지속한다
운 좋은 삶의 일상이 그렇게 꾸역꾸역 영위된다.
길에 서서 잠시 애기를 주고받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저녁 산들바람이
여인들의 스카프를 헝클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
‘운 좋은 삶’의 의미이므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
전쟁의 참화 속에 사라지는 이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애도하는 아침. 나는 커피를 마시며 자판을 두드린다.
지금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