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낮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우리는 건너간다. 저마다의 등에 십자가를 지고.....

밤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낮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같은 길을 하루에 두 번씩 걷는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침 산책과 저녁 혹은 밤 산책 시간을 내려한다.


아침 산책길 어젯밤에는 보이지 않았던 화살나무에 장전된 봄의 화살을 보았다.

지난가을 떨어진 모과의 죽음을 보았다. 온전히 내어준 자의 모습을...

노란 산수유나무의 꽃망울의 개수가 더 늘어난 것을

앞동의 앙상한 매화나무에 매화꽃 향기가 더 짙어진 것을..

내 수호목이라 여기는 나무가 푸른 하늘을 향해 팔을 뻗는 결기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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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바람이 좋다.

무언가 아직 코끝을 찌르는 그 싸늘함이

아주 오래전 그를 대지의 아들로 돌려보내던 날....

축축한 검은흙 구덩이에서 풍기던 죽음의 냄새.... 혹은 삶의 냄새...

오늘 같은 바람이 불었다. 까마귀처럼 옹기종기 바람을 피해 앉은 유족들.

아버지의 젊은 친구들이 여전히 젊은 그를 애도했다.

한숨이든 안타까움이든 붉어진 눈시울이든.... 모두 대지의 아들이 된 그의 몫이 되었다.

아침 산책길에서 오래전 그 스산하던 들판의 풍경이 그려진다.

그가 다 살지 못한 삶을 나는 살아가고 있다.


아침... 밤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본다.

정성 들여 가꾸어놓은 누군가의 베란다. 차가운 바람에 팬지꽃이 몸을 웅크린다.

장미넝쿨을 나무 울타리에 매달아 놓은 집.... 장미꽃이 만발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십자가를 본다. 장미 가지가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꽃 한 송이 피우겠다고......

자유의 지대로 뻗어가지 못하는 고통. 못 박힌 자의 고통 같은 것일까...

꽃에 가려진 십자가를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오늘 장미 나무는 꽃피우기 위해 세상을 위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있다...


밤이었다. 화살나무의 장전된 화살도, 매화꽃도 산수유꽃도 떨어진 모과도, 고양이 집의 사료와 물도, 잘 가꾸어진 화단도, 장미 울타리 십자가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보이는 것은 일제히 도열해 있는 나무들의 전사 같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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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처럼 두 눈 두릅 뜬 자의 모습, 앙상한 잎사귀 여전히 매달고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모습뿐이었다. 집으로 퇴근하는 살 오른 고양이의 뒷모습... 그리고 불 켜진 집, 거실에 비치는 사람들의 흐릿한 실루엣..



수많은 시간을 건너가고 있다.

낮과 밤.... 나는 창 넓은 강의실, 온통 초록으로 꾸며진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기다린다.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나의 큰 즐거움이다.

. 학생들의 수가 많건 적건 그것은 내가 이 일을 생계유지의 수단이라 생각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들에 초연하다.

어떤 날은 개인, 어떤 날은 팀 수업...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표정의 학생들을 보는 날은 마음이 무겁다.

"그러니까 네 생각은?"

이라는 질문에.... 말이 없다. 자꾸 시계를 기웃거린다.

다른 학원으로 건너갈 시간인 것이다.

나는 건너가는 하나의 징검돌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징검돌을 딛고 지나가다 보면

그 아이 가슴속에 미세하게 라도 생각의 싹이 자라고 있지 않을까.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수없이 건너가는 아이들... 생각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직은 어린아이들이 세상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

저마다의 등에...

고등팀이 오는 날은 무언가 해 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좀 더 많은 것들을 , 세상에 대해, 문학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의 관계는 문제와 수행평가에 한정되어 있다.

주말에만 수업이 가능한 학생들 때문에 나의 주말이 사라졌다.


나의 사라진 주말을 아침 산책과 저녁 산책에서 찾으려 한다.

생각이 많아지는 3월 아침

오늘 불었던 바람에서 느꼈던 오래전 흙내음을 기억한다.

아직 나는 살아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간다.

등에 십자가를 지고..........

지금은 사순시기.....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시기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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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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