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위로가 혈관을 타고 돈다.
데워먹는 프랑스 와인 '뱅쇼'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뱅'은 와인을 '쇼'는 따뜻하다는 뜻이라 한다.
레드 와인에 마른 과일이나 각종 향신 재료. 시나몬. 설탕 등을 넣고 끓인 와인.. 술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한방차(?)나 과일차 느낌이다. 처음 '뱅쇼'라는 단어를 듣던 날 누군가가 '뱀쇼'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뱀쇼든 뱅쇼든.. 받침 하나의 차이니...
뱅쇼는 익숙하지만 독일식 데워먹는 와인 '글루바인' gluhwein 은 생소하다
겨울이 몹시 추운,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원 기획복이나 감기 예방을 위해 마시는 따뜻한 와인이라 한다. 레몬과 시나몬을 추가하여 끓이면 아주 독특한 맛이 느껴진다.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은 처음 코르크 마개를 딸 때의 소리, 코르크 향에 벤 와인의 향기. 그리고 잔에 따를 때의 경쾌한 울림, 진 자주색 빛깔이 투명 와인잔을 물들일 때. 잔을 부딪치는 소리, 혀에 와 닿는 느낌. 등등 저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레드 와인을 마실 때마다 온 몸에 와닿는 그런 감각들이 좋다.겨울철에는 차가운 와인보다 글루바인이 좋은 듯하다. 추운 지방은 차 문화가 유난히 발달하고 열대지방은 말린 과일 종류가 다양한 것은 아마도 기후 영향 때문일 것이다.
알트버그 글루바인. 글루바인은 코르크 마개로 되어있지 않고 돌려서 따는 금속마개로 되어있다.초록색 유리병에 빨간 뚜껑. 글루바인 유리병 전면에 그려진 한겨울 눈 내린 날의 풍경..멀리 중세 유럽의 성이 보이고. 눈이 지붕 위에 쌓여있다. 성의 뾰족한 지붕만큼이나 높이 자란 나무... 나무의 가지마다 층층이 눈 덮인 풍경. 밤하늘에 별인지 눈인지 모르는 것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글루바인 병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중세 유럽... 어느 성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성 안에 눈 내리는 성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뜨거운 글루바인을 마시는 것.
우리가 '중세'라고 부르는 시대... 중세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았다. 좀 유별난 여자들(주로 책을 읽거나 예언자적인 발언을 하거나)은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던 시대였고 교권이 국왕의 권력을 능가하던 시대였다. 페스트와 같은 병이 창궐하던 시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다...
마차가 말똥 가득한 거리를 달리고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걷고 있을..뾰족한 지붕의 집들이 모여있는 거리의 모습을 상상한다.
지금 우리가 '중세'라고 부르는 그 시기가 그 당시에는 중세가 아니었다.... '중세'라는 명칭이 그러하듯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를 후인들은 무어라 부를까?
미래의 누군가가 자판을 두드리며.... 그 시대에는 코로나가 창궐하였으며... 인간소외현상,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던 때, 하늘을 나는 비행기.. 고속철.... 그런 교통수단들이 있었고 자동차에 기름을 주유해야 하던 시기라고 적고 있을지 모른다.
중세시대에 와인을 유난히 좋아하던 누군가가 추운 겨울날 집에 있던 말린 과일이나 시나몬 등을 넣어 뜨겁게 끓여먹던 것이 글루바인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그 누구의 시작이든 유럽에서 주로 마시는 글루바인을 이제는 세계 어디서든 마시고 있다... 추운 겨울밤, 잠 못 드는 불면의 시간에 글루바인 한잔은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레드 와인에 여러 과일들이 섞인 오묘한 맛.... 자줏빛 글루바인이 혈액처럼 온몸을 타고 도는 상상을 해본다.
여전히 눈 쌓인 도시의 풍경..... 글루바인 마시기 좋은 날이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