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희귀종 중고'로 남기 위해서 나는 여전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중고와 한정 판매에 대하여
'중고품'이란 말은 허름하고 오래된 물건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때로는 희귀본, 함부로 갖기 어려운 것이라는 느낌도 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 엄마는 아들 료코가 결혼할 상대가 처녀가 아닌 애 딸린 여자인 것을 알고
“하필 료코가 좋아한 사람이 중고라니 게다가 덤까지 딸린. 난 물건도 중고는 싫은데 사람을 중고로 가져오다니. 이왕이면 새 것과 살아야지. 료코는 참.”이라 말한다. 중고에다 덤까지 딸린.... 자신의 아들은 중고가 아닌 ‘신상’을 사귀어야 하고 ‘신상’을 결혼 대상자로 삼아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이다.
중고품. 중고의 시대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중고품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유통기한이 언제인지 다를 뿐이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 이후부터 해마다 오래된 중고로 전락한다. 연식이 오래된 중고. 갈아 끼울 부품도 마땅치 않은 중고 인간이 되어간다. 사람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태어난 날 이후부터 중고 상품이 된다. 새로 지은 최고급 아파트를 구매하여 그곳에 터를 삼는다 하여도 모든 것은 낡아가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벽은 허름해지고 실내 디자인도 유행 지난 그저 그런 느낌이 되고 만다.
코로나로 인해 새로 생긴 용어 중 ‘중고 신상’이란 말이 있다. 고등 3년의 혹독한 시간을 거쳐 대학생이 되었으나 온라인 수업으로 본격적인 대학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새내기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새내기이니 ‘신상’인 것은 분명 하나 비대면으로 얼굴조차 서로 알 수 없고, 새내기로서 누려야 할 일체의 것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중고’가 되어가니 그들 말처럼 ‘중고 신상’인 것이다. 올해로 ‘중고 신상’이란 용어가 끝이었으면 좋겠다.
‘중고’도 ‘중고’나름이다. 명품은 ‘중고’인 것도 여전히 명품의 대우를 받는다. 구하기 어려운 희귀종 중고... 만일 내가 중고 상품이라면 낡고 허름한 중고,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그런 중고가 되고 싶지는 않다. 구하기 어려운 희귀종 중고,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아무리 낡고 볼품없어도 그 존재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는 그런 중고가 되고 싶다.
사람들은 ‘한정 판매’라는 말을 들으면 구매 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구입하고 싶어 진다. 그러하기에 쇼핑몰 호스트들은 '30분 한정 판매' 혹은 '선착순 00명 한정 판매'라는 말들을 주로 사용하는가 보다. 머뭇거리는 사이 ‘완판’이라는 메시지가 뜨고 나면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어딘지 허탈한 느낌을 받는다. 사실 ‘한정 판매’니 ‘완판’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고단수 마케팅 전략의 일부일 뿐이다. '한정 판매'라는 말은 말에 끌려 구매한 상품 또한 냉정히 살펴보면 구매자에겐 꼭 필요한 상품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은 우리에게 ‘한정 판매’ 중인 상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이란 상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지 않는다. 쇼핑 호스트가 나타나 ‘오늘’을 한정 판매한다고 떠들지도 않거니와 ‘오늘’은 선착순 몇 명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줄을 서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오늘’이야말로 분명한 한정 판매상품인 것이다. 결코 다시 살 수 없는 ‘완판’되는 것. 그럼에도 ‘내일’이란 것이 있기에 무한한 것처럼 여겨진다.
눈에 보이는 물건, 소유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한정 판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한정 판매’에는 무덤덤하다.
나는 ‘중고’이면서 ‘한정 판매’되는 상품이다. 태어난 이래로 연식에 따라 낡아가기 때문에 '중고'이며 세상에 오직 하나이기 때문엔 '한정 판매' 상품이다. 한정 판매 상품의 판매 기한이 언제까지 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낡고 매력 없는 중고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희귀한 중고. 그리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귀종 중고로 한정 판매’ 되는 것이다. ‘특별한 희귀종 중고'로 남는 그 날을 위해 나는 여전히 자판을 두드린다. 오직 그것뿐이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