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폐허였고 열기예요
<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이장희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그들들 살찌게 하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돌 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의 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네 말을 다 듣는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대양 속의 소금같이, 허공 속의 저 외침같이, 사랑 속의 통일 같이, 나는 내 모든 겉모양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모든 겉모습들은 저녁의 지친 새들이 둥지에 들 듯 제 속으로 돌아올 거예요.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지워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 보세요. 제 어미가 입으로 물어다가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어린 고양이가 제 몸을 맡기듯 당신을 가만히 맡겨보세요."
고양이 물루는 행복하다. 세계가 저 혼자서 벌이는 싸움에 끼어들면서도 그는 제가 행동하게 된 원인인 환상을 깨뜨리지 않는다. 놀이를 하되 놀고 있는 저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나다. 조그만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나는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즉 그냥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연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비틀거릴 것이고 내 상대역이 묻는 질문에 해야 할 답을 잊어버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멍청하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
< 고양이 물루> 장 그르니에
봄은 고양이로부터 온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서,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서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서,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서
푸른 봄이 온다.
아침 산책로에서 고양이 가족을 만난다. 정성 들여 지은 고양이 집, 꽃이 만발한 앞 베란다는 고양이 가족의 놀이터다. 후드티를 쓴 여인이 문을 열고 나와 고양이 밥을 놓고 간다.
함께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걸어가는 자는 걸어가는 자대로
각자의 길에서 접점을 찾지만 방해하지 않는다
어미 고양이, 노란 꽃 아래 앉아 있다
연갈색 털의 아기 고양이 두 마리,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산책로 보도블록 한가운데로 걸어 나온다.
그리곤 날렵하게 바위로 타오른다.
다른 한 마리, 엉거주춤 따라 나온 다른 한 마리는 산책자의 걸음을 멈추게 할 모양으로 길 한가운데 드러눕는다. 여기는 내 영토이니 돌아가시오...
드러눕는 이유가 있었다.
절뚝거리는 뒷발.... 날렵하게 바위 위로 오를 수 없었다 때문이었다.
저 고양이는 물루처럼
내게 말한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기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꽃이에요, 풀이예요. 나무예요. 바람이에요, 폐허이면서 열기예요.
기쁨이면서 슬픔이고요... 사랑이면서 아픔이에요.
나는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즉 그냥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연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비틀거릴 것이고 내 상대역이 묻는 질문에 해야 할 답을 잊어버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멍청하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제1부 존재의 의미 찾기, 당신의 연극은 현재 진행 중이다 부분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나는 걸으면서 생각한다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라는 말에 대해서
주어진 역할놀이... 인생 무대의 몇 막 몇 장에 서있는지 모른다.
가끔 대사를 잊어버리고
해야 할 행동을 놓쳐버리고 허둥거릴 때가 있다
‘ 어떤 배역이 우리에게 정해질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그 배역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주어진 배역을 최선을 다해 충실히 연기해야만 한다. 배역에 불평해서는 안되고 어떤 배역이 맡겨지든, 어떤 상황 속에서 그 배역을 해내야만 한다면 나무랄 데 없는 최상의 연기를 펼쳐라. 그대에게 작가의 배역이 맡겨졌는가?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쓰라. 그대에게 독자의 배역이 맡겨졌는가?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읽으라
에픽테투스 『삶의 기술』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제1부 존재의 의미 찾기, 당신의 연극은 현재 진행 중이다 부분 p54~
역할에 충실하는 일.
미래라는 일방향으로만 가능한 시간여행자인 우리는 원하는 시간으로 앞질러 갈 수도
지나온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원하지 않는 배역이 주어졌다 해도 나무랄 데 없는 최상의 연기를 펼치라는
에픽테투스의 주문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는 그런 삶을 살았을까? 아마도 살지 못하였기에... 자신이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저 글을 쓴 것이 아닐까...
고양이... 고양이는 오직 현재에 충실하다.
율동과 관조하는 듯한 시선과 몰입.
봄이 흐르든, 세속의 시간이 흐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고양이만의 시간 속에
오직 고양이로소이다의 명제에 충실하다
한때는 바람이었고 꽃이었고 나무였고 달빛이었다 해도
온전한 고양이로소이다.
봄은 고양이로부터 온다......... 여전히...
앞으로도............/ 려원
<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