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꽃을,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우리 자신을 가지고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꽃을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 드니스 레버토프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밀물 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20260331_081316.jpg

꽃 필 차례가 우리 앞에 있다고 한다

파도치고 바람 불고 마음속 깊은 상처와

추운 겨울을 지나........ 나무들에 연두가 스멀거리며 돋아나고 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빚어낸 경쾌한 소란..


20260331_081312(1).jpg

가느다란 전봇대 같은 나무 끝... 새하얀 목련이 피어있다.

목련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기술과 가장 처절하게 소멸하는 기술을 터득한 꽃이다

몽실거리는 목련의 꿈은 결국 나무의 꿈

그러나 머지않아 거대한 상실이 다가온다.


20260331_081312(3).jpg


< 한 가지 기술 >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본래부터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날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라. 문 열쇠를 잃은 후의

당혹감, 무의미하게 허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이라.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하라.

장소들, 이름들, 여행하려 했던 곳들을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이 오지는 않는다


나는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보라! 내가 좋아했던

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집도 잃었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두 도시도 잃었다, 멋진 도시들을. 그리고 내가 소유했던

더 광대한 영토, 두 강과 하나의 대륙을 잃었다.

그것들이 그립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었다.

....

엘리자베스 비숍



많은 것들이 본래부터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라.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하라.


날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라고..

시인은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고 세 번이나 말하고 있다.


잊어버릴까 봐, 잊힐까 두려운 날들.

불안과 두려움, 걱정에 자꾸만 작아지는 마음.

그러나 소유하려 하지 말고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성큼 거리며 다가오는 날들.. 재빠르게 달아나는 날들...

그 어떤 날도 온전히 내 소유가 아닌 날들


바라본다.

하늘을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꽃을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우리 앞에 봄이 있다. 꽃 필 차례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20241226_170933.jpg
KakaoTalk_20260218_151536699_02.jpg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작가의 이전글봄은 고양이로부터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