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꽃을,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우리 자신을 가지고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꽃을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 드니스 레버토프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밀물 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꽃 필 차례가 우리 앞에 있다고 한다
파도치고 바람 불고 마음속 깊은 상처와
추운 겨울을 지나........ 나무들에 연두가 스멀거리며 돋아나고 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빚어낸 경쾌한 소란..
가느다란 전봇대 같은 나무 끝... 새하얀 목련이 피어있다.
목련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기술과 가장 처절하게 소멸하는 기술을 터득한 꽃이다
몽실거리는 목련의 꿈은 결국 나무의 꿈
그러나 머지않아 거대한 상실이 다가온다.
< 한 가지 기술 >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본래부터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날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라. 문 열쇠를 잃은 후의
당혹감, 무의미하게 허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이라.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하라.
장소들, 이름들, 여행하려 했던 곳들을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이 오지는 않는다
나는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보라! 내가 좋아했던
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집도 잃었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두 도시도 잃었다, 멋진 도시들을. 그리고 내가 소유했던
더 광대한 영토, 두 강과 하나의 대륙을 잃었다.
그것들이 그립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었다.
....
엘리자베스 비숍
많은 것들이 본래부터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라.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하라.
날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라고..
시인은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고 세 번이나 말하고 있다.
잊어버릴까 봐, 잊힐까 두려운 날들.
불안과 두려움, 걱정에 자꾸만 작아지는 마음.
그러나 소유하려 하지 말고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성큼 거리며 다가오는 날들.. 재빠르게 달아나는 날들...
그 어떤 날도 온전히 내 소유가 아닌 날들
바라본다.
하늘을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꽃을
불완전한 것조차 감추지 않는 꽃을
우리 앞에 봄이 있다. 꽃 필 차례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