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곳에 대하여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곳에 대하여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가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자격이 있지.”

_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J. D. 샐린저 등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꼽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화려한 재즈 시대를 배경 삼아 아메리칸드림과 물질주의, 계급적 동경과 부에 대한 갈망 등 미국을 지배하는 관념과 테마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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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능란하게 짜인 플롯에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이 대결하는 흥미진진한 로맨스다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 밤이면 역동적이고 모험적인 분위기로 충만한, 남자와 여자,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며 눈을 어지럽히는 이 도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5번가를 걸어 올라가 군중 속에서 신비로운 여자 하나를 찾아내 아무도 모르게. 그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그 여자의 삶으로 들어가는 나만이 공상을 즐겼다. 상상 속에서 나는 그녀들의 집까지 뒤 쫓아가고 그러면 그녀들은 어두운 거리 모퉁이에서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는 문을 열고 따뜻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는 것이었다. 대도시의 찬란한 어스름 속에서 나는 간혹 저주받은 외로움을 느끼고 그것을 타인들 – 해질 무렵, 거리를 서성이며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러면서 자기 인생의 가장 쓰라린 한 순간을 그대로 낭비하고 있는 젊고 가난한 점원들- 에게서도 발견하였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개츠비는 뉴머니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폴로용 말 떼를 거느리고 동부에 나타난 뷰캐넌은 올드머니에 가까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개츠비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를 알게 된 데이지는 그가 결코 자신들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남편인 톰에게로 돌아선다.

도덕과 법이 무너지고 노골적으로 돈과 출세를 좇는 세태에 충격을 받는 한편으로, 그 속에서 벌어지는 터무니없이 무모한, 그렇기에 더욱 순수해 보이는 개츠비의 사랑

개츠비는 데이지의 삶을 선망하고 데이지는 개츠비가 데려온 영화계의 스타들을 선망한다. 어찌할 수 없는 선망의 가혹한 대가..


무가치함의 위대함 혹은 위대한 무가치

개츠비가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랑하는 이 여성은, 실은 그런 사랑을 바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의 주인공 ‘위대한’ 개츠비가 인생을 걸고 사랑하는 여자가 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여자라는 아이러니는, 사실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 결과 이전의 몇몇 번역본에는 데이지의 철없음, 무지, 방종과 나약함이 순화(혹은 미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데이지라는 인물은 종잡을 수 없는 모호한 존재로 보이게 된다. (…)

그녀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허영에 사로잡혀 있으며 무책임하다. 화려한 것을 추종하고 모든 것이 자기 노력과는 상관없이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자신의 무책임이 심각한 결과로 돌아올 때에는 그 처리를 남에게 맡기고 달아난다.

그녀를 자기 저택으로 초대한 개츠비는 영국제 셔츠로 가득한 옷장을 열고 그 셔츠들을 하나하나하나 꺼내 산처럼 쌓는다. 그러자 데이지는 그 셔츠 더미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린다.

데이지는 인간 개츠비가 아니라 영국제 셔츠를 사랑하는 여자다. 개츠비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것. 아니, 그 여자를 지독하게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 개츠비의 ‘위대함’은 그가 인류에 공헌했다거나,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라

무가치한 존재를 무모하게 사랑하고, 실패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자신의 상상 속에 머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위대하다


재즈 시대, 그 화려한 영광의 나날 속에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신화와 차가운 진실

1922년, 1차 대전에 참전하고 예일대를 졸업한 서부 출신의 청년 닉 캐러웨이는 미다스를 꿈꾸며 월스트리트에 길게 늘어선 증권맨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동부 롱아일랜드 지역의 웨스트에그로 온다. 그의 사랑스러운 사촌 데이지 역시 부유한 폴로 선수 톰 뷰캐넌과 결혼하여 부촌인 이스트에그에 살고 있다. 데이지와 톰의 집을 방문한 닉은 톰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고, 데이지 역시 그 사실을 알지만 안락한 환경을 박차고 나올 마음이 조금도 없음을 알게 된다.

씁쓸한 마음으로 웨스트에그의 집으로 돌아온 날 밤, 닉은 우연히 집 앞 잔디밭에서 옆집 백만장자인 개츠비의 모습을 본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그리워하듯, 만 저편 이스트에그의 초록색 불빛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해 여름, 개츠비의 집에서는 주말마다 수백 명이 몰려드는 호화로운 파티가 벌어진다. 개츠비의 얼굴도 모르면서 파티에 초대받았던 그는 거기서 개츠비를 둘러싼 무수한 소문을 듣고, 장본인인 개츠비와 안면을 트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둘러싼 주위의 호기심이 점점 커져가는 가운데, 데이지의 친구인 골프선수 조던 베이커가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개츠비는 5년 전에 데이지의 연인이었고, 참전하느라 헤어졌지만 지금은 절박한 심정으로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행여나 그녀와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스트에그 근처에 대저택을 샀고, 그녀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매주 호화로운 파티를 열었던 것이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닉의 집에서 재회한다. 데이지는 다시 만난 옛 연인의 엄청난 부에 매혹되고, 개츠비는 자신이 지금까지 너무도 열렬히 그려온 여인을 다시 제 곁으로 데려올 것을 꿈꾼다. 그리고 둘의 관계에 대한 톰의 의심이 짙어져 가는 가운데, 어느 뜨거운 여름 오후, 개츠비와 조던 베이커, 톰과 데이지, 닉은 함께 맨해튼으로 향하고,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단순한 연애담이었다면 시대를 뛰어넘어 이토록 사랑받지는 못했으리라. 거기에는 당대 미국을 지배한 계급적 모순과 부에 대한 동경, 신생 강대국의 물질주의가 가져온 화려한 열락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낭만적 이상주의와 풍요와 번영에 대한 무한한 낙관주의에 사로잡혔다.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은 부와 성공의 꿈을 안고 대도시로 몰려들었으며, 도시는 밤마다 수많은 사교 모임과 무도회의 휘황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금주법의 시대였음에도 모두가 넉넉히 취할 만큼 밀주가 넘쳐났으며, 언제나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재즈의 선율이 흘렀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신화가 넘쳐났다. ‘올드 머니’의 폐쇄적 세계는 새로 등장한 ‘뉴머니’의 노골적인 부의 과시에 뒷자리로 물러났다. 19세기의 청교도적 성실함은 20세기의 물질주의로 대체되고, 이제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미녀를 손에 넣기를, 무비스타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것이 20세기 초, 아메리칸드림이었다.

그 가운데, 서부 촌구석 출신의 작가 피츠제럴드와 그의 등장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화려한 부의 세계를 누구 못지않게 동경하면서도 부자들의 위선적이고 핏기 없는 차가운 세계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환멸의 세계 이면에 감춰진 쓸쓸함과 인간적인 온기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거기가 바로 나의 중서부다. 밀밭도, 초원도, 사라진 스웨덴 이민자들의 마을도 아닌, 젊은 날의 가슴 떨리는 귀향 열차, 서리가 내리는 어둠 속 거리의 가로등, 썰매의 방울 소리, 그리고 불 켜진 창문의 불빛으로 눈 위에 제 모습을 드러내는 성탄 축하 장식의 그림자들이다. 나는 그것의 일부다. 긴 겨울을 겪으며 조금은 진중해지는 마음, 그리고 몇십 년간 가문의 이름이 주소를 대신하는 곳에서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우쭐함. 지금까지 한 얘기도 결국은 서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 그리고 나는 모두 서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동부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어떤 공통된 결함을 공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_본문에서

데이지와 톰, 개츠비가 지닌 인간적 결함과 파탄적 관계를 시종일관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았던 화자 닉이 개츠비에게 마지막으로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하는 온정 어린 위로의 말을 던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가치한 존재를 무모하게 사랑하고, 이상과 현실의 그 엄청난 간극 앞에서 의연하게 실패를 받아들이며 여전히 그 상상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 개츠비.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자극하는 물질주의의 황홀한 취기, 그 환락의 시대를 멋들어지게 묘사하면서도, 그 꿈의 이면에 감춰진 환멸과 절망을 폭로했으며, 또한 그와 동시에 그 속에 숨겨진 인간 본원의 순수를 이야기한 작가 피츠제럴드. 두 사람의 삶에는 씁쓸한 아이러니가 있으며 자조의 기운이 스며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문학을 통해 끝끝내 위대해졌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고. 개츠비에게는 데이지라는 목표가 있었고, 데이지에게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지향이 있었다. 지친 윌슨은 엉뚱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몸이 뜨거운 그의 아내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잘못 보고 제 몸을 던진다. 작가인 피츠제럴드마저도 당대의 성공과 즉각적인 열광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표적들을 향해 쏘아진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김영하 _해설에서 부분 발췌


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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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 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p11


인간의 행위야 단단한 바위에 기초할 수도, 축축한 습지에 근거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직 개츠비, 내가 내놓고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바로 그 속물에게만은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패스트모션처럼 무섭게 자라나는 나뭇잎들과 햇빛 속에서 나는 이 여름, 새로운 삶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친숙한 확신에 사로 잡혔다. p 15

어쨌든 나는 그 시절의 것들을 고스란히 되살려 모든 종류의 전문가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존재, 이른바 '균형 잡힌 인간'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어쨌든, 하나의 창으로 보면 실제보다 훨씬 더 근사해 보이는 게 인생이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p15


데이지의 음성은 뭐랄까. 귀가 따라가며 알아서 맞춰 들어야 될 것 같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흘러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다시는 연주되지 않을 음정들의 배열 같았다. 빛나는 눈동자와 정열적으로 빛나는 입, 그 눈부신 광채로 그녀의 얼굴은 처연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반면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녀는 좋아해 본 남자라면 잊기 힘든 어떤 흥분 같은 것이 실려있었다. 음악적인 충동과 속삭임, 방금 즐겁고 신나는 일을 해치웠으며 곧이어 또 다른 즐겁고 신나는 일이 벌어지리라는 약속..

지금도 도시의 하늘을 장식하는 이 방의 노란 창문들은 땅거미 내려앉는 거리를 지나다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비밀을 나누어주고 있으리라.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올려다보고 궁금해하는 자였다. 나는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었다. 놀랍도록 다양한 인간사에 매혹당하는 한편으로 진절머리를 내면서.- p50


잠깐 전 우주를 직면한 뒤, 이제는 불가항력적으로 편애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노라는, 그런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바로 그만큼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호의적 인상의 최대치를 분명히 전달받았노라 확신시켜 주는 미소였다.˝ p.65

웨이퍼 과자 같은 달이 개츠비 저택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은 아직 환한 개츠비네 정원의 소음과 웃음소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밤을 밝히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과 커다란 문으로부터 공허함이 넘쳐나 포치에 선 새 정중히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집주인이 실루앳에 왼벽 한 고독을 더했다. p 74

어지러운 흥분과 함께 문득 하나의 경구가 내 머릿속을 때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바쁜 사람과 피곤한 사람뿐이다.'- p101 -

그들은 소파의 양 끝에 앉아서 마치 어떤 질문 하나가 던져겼거나 아니면 던져진 질문이 아직 상대방에게 도달하지 않고 허공에 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데이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놀라운 것은 개츠비의 변화였다. 그는 문자 그대로 타오르고 있었다. 환희의 말 한마디, 몸직 하나 없이도 그로부터 뻗어 나온 새로운 행복의 광휘가 온 방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P 113 (5년 만의 재회)


작별인사를 하러 간 순간,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다시 돌아온 당혹스러움을 발견하였다. 현재의 행복에 대한 희미한 의심이 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보면 거의 오 년의 세월이었다. 그날 오후만 해도, 눈앞의 데이지가 그가 꿈꾸어왔던 데이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환상의 생생함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낸 독창적인 열정 속으로 밀어 넣은 후, 하루하루 그것을 부풀려갔고, 가는 길에 마주친 온갖 깃털로 장식해 왔던 것이다. 아무리 큰 불도, 그 어떤 생생함도, 한 남자가 자신의 고독한 영혼에 쌓아 올린 것에 견줄 수 없다.- p121


P. 123 매일 밤 그는 졸음이 망각의 포옹으로 갖가지 생생한 장면들 위에 막을 내릴 때까지 그 환상에 다양한 무늬들을 더해갔다. 한동안 이런 몽상들은 상상력의 배출구가 되어주었다. 이는 현실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일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이 세계의 기반이라는 것이 요정의 날개 위에도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보증 같은 것이었다.

p140

그는 과거에 대해 떠들어댔고 나는 그가 어떤 것,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생각, 즉 데이지를 사랑하도록 만든 바로 그것을 되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이후로 그의 인생은 혼란스러웠고 무질서했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찬찬히 다시 모든 것을 검토할 수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p141

그가 말한 모든 것은 그 과장된 감상성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오래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포착하기 어려운 리듬과 잃어버린 단어들의 편린을 잠깐 동안 하나의 대사가 내 입을 통해 형태를 갖추려 시도했고 내 입은 놀란 숨소리 이상의 무언가를 뱉어내기 위해 기를 쓰는 벙어리의 입처럼 벌어졌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고 거의 떠올릴 뻔했던 기억 속의 그것은 영원히 소통 불가능한 것으로 남았다.


p151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야. 예전엔 몰랐지만 정말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충만했다. 돈 그 안에서 오르고 내리는 매력은 켤코 사라지지 않는다. 짤랑거리다가 예쁜 심벌즈 소리처럼 요란하게 울려대기도 하고, 하얀 궁전의 공주처럼 저 높은 곳에서 금으로 만든 소녀상처럼


p156

정비소의 위층 창문 하나의 커튼이 약간 젖혀져 있었고 그 사이로 머틀 윌슨이 차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인화되는 사진처럼 하나의 감정에 이오 또 다른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친숙했다.

여자들의 얼굴에서 흔히 보이는 표정이긴 했지만 딱히 어떤 의도도 없어 보였고, 뭐라고 단정 짓기도 힘들어 보였다. 질투와 놀라움으로 커진 그녀의 두 눈이 톰이 아닌 조던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던을 톰이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P160

우리는 플라자 호텔 무도장에서 올라오는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의 불길한 화음을 듣고 있었다..... 예식이 시작되면서 음악도 잦아들었다. 이제는 창가에서 긴 탄성이 들려오더니 단속적으로 와, 와, 와하는 외침이 뒤를 이었다. 춤이 시작되면서 재즈가 깔렸다

P163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개츠비가 말을 꺼냈다.

“개츠비 씨게서 이 몸에게 할 말이 있으시다잖아.”

“당신 부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데이지는 날 사랑합니다.”

“정말 돌았구먼.”

“ 내가 가난했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다 지쳐서. 당신하고 결혼한 거야. 끔찍한 실수였지”
“아냐 그녀는 날 사랑해, 그리고 데이지도 날 사랑해, 가끔 술독에 빠져 멍청한 짓을 저지르지만 나는 언제나 돌아와. ”

“당신 역겨워!” 데이지가 말했다.

“데이지 이제 그에게 진실을 말해. 사랑한 적 없다고.. 그럼 모든 게 지워지는 거야.”

“아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원해...” 그녀가 개츠비에게 소릴 질렀다.
지금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지나가버린 일을 어쩌라는 거야? 한때는 톰을 사랑했던 적도 있었어. 그렇지만 당신 역시 사랑했어”

“나 역시 사랑했었다고?” 게츠비가 그녀의 말을 반복했다.


P 169

그의 집 정원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람 하나 죽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게츠비의 굳은 표정은 오직 그런 기이한 방식이 아니면 묘사할 길이 없었다.

그런 표정을 수습한 후 그는 격정적으로 데이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부인하고 심지어 아직 제기되지 않은 비난들까지도 미리 방어하면서 그러나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데이지는 움츠러들었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말았다

오후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허망한 꿈만이 홀로 남아 싸우고 있었다. 방건너편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향해,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려고 애쓰면서 암울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으면서 끝까지 분투하고 있었다.

인간의 공감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그들의 비극적인 다툼이 맨해튼의 불빛 너머로 사라지는 것에 만족했다. 서른 살. 외로운 십 년, 독신남성으로서 숙지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가 점점 짧아지는 것, 열정이라는 서류가방이 점점 얇아지는 것,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는 것을 예고하는 나이.- p170


p173

신문에서 이름 붙인 ‘죽음의 차’는 멈추지 않았다.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서는 비극적으로 비틀거리더니 길모퉁이를 지나 모습을 감추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차에 치였습니다. 즉사했습니다.”

“여자가 도로로 뛰쳐나갔습니다. 어떤 개자식인지 차를 세우지도 않고 가버렸습니다,”

“차는 두 대였어요, 하나는 내려오고 하나는 올라가고.... 뉴욕에서 오던 차가 그대로 들이받았어요. 아마 시속 30~40마일을 족히 될 거요.”

“크고 노란 차.. 아주 최신형.”


p177

톰은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천천히 차를 몰다가 모퉁이를 벗어나자마자 밟아대기 시작했다. 쿠페는 어두운 밤공기를 가르며 달리지 시작했다. 낮고 허스키한 흐느낌이 들려왔다

p 179

관목 숲 사이에서 개츠비가 걸어 나왔다. 달빛 아래에서 빛나는 그의 핑크색 정장을 보는 순간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 여자 죽었어?”

“응...”

“그럴 거 같다고 데이지에게 말했어. 충격은 한 번에 받는 게 더 낫지. 데이지는 잘 견디고 있어.”

“샛길로 빠져서 웨스트에그로 왔어. 차는 차고에 있고....”

“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 내가 핸들을 돌리려고 했지만....”

“데이지가 운전했구나.”

“응... 그렇지만 내가 운전한 걸로 할 거야.... 데이지는 신경이 아주 날카로웠고 마주 오는 차와 엇갈리는 순간 그 여자가 우리한테 뛰어든 거야. 워낙 순식간이었지.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거 같아....”

“데이지가 계속 액셀을 밟았어... 멈추라고 했지만... 비상 브레이크는 당기고 그때부터 내가 운전했어.”


p180

“ 나는 여기서 대기하면서 혹시 톰이 데이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불을 껐다 켜기로 했어.”

데이지와 톰이 식탁에 마주 않아있었다. 톰은 진지하게 손을 뻗어 그녀 위 손을 감쌌고 그녀는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불행해 보인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 장면에는 분명 자연스럽고 친밀한 분위기가 있었고, 누구든 그 모습을 보았다면 그들이 지금 함께 뭔가를 모의 중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냥 집에 가서 잠을 자는 게 어때?”

“데이지가 잠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야.”

그는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마치 내가 거기 있는 것 자체가 자신의 신성한 임무에 모독이라는 듯 결연하게 돌아서서 길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달빛 속에서 홀로 공허를 지켜보도록 그래도 남겨두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P 184

“ 계속 기다렸는데 데이지가 네시쯤 창가에 와서 잠깐 서 있다가 그냥 불을 끄더라고.”
“어디 좀 피해있어야 하지 않나?”
“지금 떠나라고?”

그는 데이지를 내버려 두고 떠날 수 없었다. 마지막 희망에 사로잡혀있었다.

제이 게츠비의 존재가 톰이 도저한 악의로 인해 깨진 유리처럼 박살 나버렸다. 그의 비밀스러웠던 길고 긴 희가극이 비로소 끝나버렸다.

p 186

게츠비는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았다. 가질 수 있는 것을 모두 가지고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했지만 데이지는 성배였다. 데이지가 특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몰랐던 것은 ‘상류층 여성’이 어디까지 특별해질 수 있는가였다. 그녀는 개츠비에게는 아무 미련도 없이 가족에게 돌아갔고 풍족하고 넉넉한 인생에게 돌아가버렸다.

p188-189

개츠비가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데이지는 주변의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만나 바로 옆에서 그의 존재를 느끼고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했던 것이다.

데이지는 어렸고 그녀의 잘 꾸며진 세계는 난초향과 즐겁고 유쾌한 속물근성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이 당장 그럴듯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났으면 하고 바랐다.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결정을 내려주기를.... 사랑, 돈 혹은 재고의 여지가 없는 현실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것들은 바로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어야 했다.

그 ‘다른 무언가’는 봄이 한창인 어느 날 톰 뷰케넌의 등장으로 현실화되었다. 그의 자질과 신분에는 묵직한 무게감이 있었고 데이지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약간의 갈등과 약간의 안도가...

여전히 옥스포도에 붙잡혀있던 개츠비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P190

그가 돌아왔을 때 데이지와 뷰캐넌은 신혼여행 중이었다. 군대에서 받은 마지막 봉급으로 루이빌로 향했다.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일주일을 머물며 11월의 밤에 그들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었고 그녀의 흰 차로 함께 달렸던 비밀의 장소로 다시 가보았다. 좀 더 열심히 찾았더라면 어쩌면 그녀와 맞추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루이빌을 떠났다. 이제 그의 수중에는 돈 한 푼도 없었다... 선로가 구부러지면서 이제 기차는 태양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태양이 더 낮게 기울어지면서 그녀가 숨 쉬던 저 사라져 가는 도시 위로 마치 축복이라도 내리듯 빛을 흩뿌리는 것 같았다. 그녀로 인해 빛을 발했던 곳의 파편 하나라도 건지려는 듯 그는 필사적으로 팔을 뻗었다. 눈물이 번진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 도시에서 가장 멋진 것, 제일 좋은 것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p 199

윌슨은 계속 걸었다... 두시 반쯤 웨스트에그에 도착에 개츠비의 집으로 가는 길을 누군가에게 묻고 있었다.

개츠비는 매트리스를 메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무 사이로 고개를 감추었다. 전화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이미 받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시간까지...

그는 무시무시한 이파리들 사이로 생경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장미 한 송이조차 얼마나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수 있는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풀밭 위로 떨어지는 햇빛이 얼마나 날 것일 수 있는지를 발견하고는 몸을 떨었을 것이다. 희끄무레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 소리 없이 그에게 다가오는 저 잿빛의 기묘한 형상처럼

운전사가 총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현관 계단을 달려 올라간 순간 모두에게 경고를 날린 셈이었다.

모두가 뭔가를 직감했다. 운전사 집사, 정원사와 나는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 거의 물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잔물결들로 인해, 개츠비를 실은 매트리스가 불규칙적으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수면에 거의 파장을 만들지 못할 작은 바람 한 점만으로도 예정에도 없던.... 낙엽더미가 매트리스와 부딪치자 컴퍼스로 그린 듯한 붉은 원이 물 위에 생겼다.

우리가 개츠비의 시체를 떠메고 집으로 올라간 뒤. 정원사가 잔디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윌슨의 시체를 발견했다. 학살의 종결이었다.


p 204

개츠비의 시체를 발견한 후 삼십 분 뒤, 나는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오후 그녀와 톰은 여행가방을 챙겨 멀리 떠나버린 상태였다.

미네소타 주의 어느 도시로 부토 핸리 c, 개츠라고 서명된 전보가 도착했다.

개츠비의 아버지였다. 근엄한 노인이었다. 넉이 빠진 상태로 9월의 띠 뜻한 날씨에도 싸구려 오버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거의 졸도 직전이었다.


p 216

세시가 조금 되기 전 목사가 플러싱에 도착했다. 다른 차는 하나도 없었다.... 목사가 시계를 힐끔거렸다. 나는 삼십 분만 더 기다려 보자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섯 시쯤 세대의 장의차가 가랑비를 맞으며 묘지에 도착해 정문 옆에 멈춰 섰다. 비에 젖은 검은 장의차... 리무진에 개츠 씨와 목사, 그다음에 하인들과 우체부... 모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누군가 땅 위로 물을 튀기며 쫓아오고 있었다. 석 달 전 어느 날 밤 서재에서 본 올빼미 안경을 쓴 남자였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어쩌면 그럴 수가!! 수백 명이 몰려가고는 했었는데...”

"아, 기억나요?" 그녀가 덧붙였다. "언젠가 운전에 대해서 말한 적 있잖아요."

"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쁜 운전자는 다른 나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나쁜 운전자를 만났던 거예요. 안 그래요? 내 말은, 내가 경솔하게 혼자 내 멋대로 억측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난 당신이 좀 더 꾸밈없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당신도 남몰래 그렇게 자부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나는 이제 서른이에요."내가 말했다. "스스로를 속이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할 나이는 오 년 전에 지났어요."- p220


우리가 겨울밤의 한복판을 질주할 때, 진짜 눈, 바로 우리의 눈이 우리 바로 옆에서 녹아 번져가면서 창문 위에서 반짝거리는 순간, 그리하여 위스콘신 주의 작은 간이역들의 희미한 등불을 지나갈 때면 날카롭고 거친 기운이 갑자기 공기 속으로 뒤섞였었다. 저녁을 먹고 객차의 냉랭한 연결 통로를 따라 걸어 돌아오면서 우리는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다시 그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가기 전, 이 기묘한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이 지역과 우리가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없이 깨닫는 것이다.

거기가 바로 나의 중서부다. 밀밭도, 초원도, 사라진 스웨덴 이민자들의 마을도 아닌, 젊은 날의 가슴 떨리는 귀향 열차, 서리가 내리는 어둠 속 거리의 가로등, 썰매의 방울 소리, 그리고 불 켜진 창문의 불빛으로 눈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성탄 축하 장식의 그림자들이다. 나는 그것의 일부다. 긴 겨울들을 겪으며 조금은 진중해지는 마음, 그리고 몇십 년간 가문의 이름이 주소를 대신하는 곳에서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우쭐함. -

p218쪽


p 221 늦은 10월의 오후... 톰 뷰캐넌을 만났다.

윌슨에게 차 주인이 누군지 알려줬어.

그 자식은 자업자득이야. 데이지를 홀리듯.. 머틀을 치고서 그대로 뺑소니를 치다니...

그건 진실이 아니라는, 도저히 차마 내 입으로 밝힐 수 없는 사실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 그는 모든 것을 자기 입장에서 정당화하고 있었다. 톰과 데이지는 경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물과 살아 있는 것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그런 다음에는 돈으로, 혹은 더 무지막지한 경솔함으로, 혹은 그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는 그 무언가로 보상했다. 그런 후에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말끔히 치우게 했다. -p222 -


나는 토요일 밤마다 뉴욕으로 나가서 잤다. 저 빛나고 화려한 그의 파티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탓에 내 귀에는 아직도, 희미하기는 하지만 끊이지 않는 음악 소리와 웃음소리, 그의 차도를 오가는 차들의 소리가 그의 정원 속에서 아직도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그곳에서 진짜 자동차 소리를 들었다. 차의 헤드라이트가 그의 현관 앞에서 멈추는 게 보였다. 하지만 나가서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다가 파티가 끝난 줄도 모르고 찾아든 마지막 손님이었으리라. - p223


그곳에 앉아 그 옛날 미지의 세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개츠비가 데이지네 집의 잔교 끝에서 빛나는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의 놀라움에 생각이 이르렀다. 바로 이 파란 잔디밭까지 오기까지 그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그의 꿈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그는 몰랐다. 자신의 꿈이 어느새 자기의 등뒤에, 저 뉴욕 너머의 혜량 할 수조차 없는 불확실성 너머, 밤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미국의 어두운 들판 위에 남겨져 있었다는 것을.

개츠비는 오직 저 초록색 불빛만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가슴 설레는 미래를. 그것은 이제 우리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무슨 문제인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24쪽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

표적들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역자 김영하의 말처럼 이 소설은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의 몸부림으로 가득 차있다.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인물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데이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사랑했으리라. 그녀가 그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가난으로부터의 탈출, 5년 만에 이루어낸 엄청난 경제적 성공... 땀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검은 유혹들을 잘 버무려 만든 불완전한 성공.

안정적인 것을 찾아 날아간 그녀를 좇아 웨스트가 그에 대저택을 마련하고 그녀 집에서 비치는 초록 등을 바라보는 것. 그녀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톰과 데이지는 전형적인 속물의 상징이다.

데이지는 끝내 자신이 머틀을 죽였다는 말을 하지 않고 톰과 일종의 적당한 합의를 통해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톰은 리볼버 권총을 쥔 윌슨에게 노란 차의 주인을 알려주는 것으로 정적으로 손쉽게 해결한다..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먼 곳으로 도피.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


물질만능과 자본주의의 허상, 이미지를 좇는 이들... 1925년 소설이

2026년 지금 읽어도 전혀 괴리감이 들지 않는다.

2026년 이란과 미국의 전쟁을 통해

물불 가리지 않고 자본주의를 딛고 만들어진 미국의 민낯을 본다
이 작품에서 개츠비가 1,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의 모습을 닮고 있다면

톰 뷰캐넌은 2026년 미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힘의 논리,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물질 만능주의

손 하나 대지 않고 방해자를 처리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천박한 의식.. 외모지상주의, 과시욕과 허세..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위대한가? 어떤 점에서?

위대하지 않은가? 어떤 점에서?

한 인간의 죽음... 표적을 빗나간 화살이 날아와 박힌 심장에서

피가 흘러 수영장에 동그란 붉은 궤적을 만들어내었다.

무의미한 죽음, 어처구니없는 죽음... 그러나 어쩌면 깔끔한 죽음인지도/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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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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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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