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도 경고등이 있다면

'그저 그렇다'는 말은 경고등이 켜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았는데 자동차가 막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로 진입하려는 순간 계기판 화면에 노란색 경고등이 켜진다. 경고의 느낌표가 낯설다. 이게 뭐지? 공기압이 낮습니다 라는 친절한 멘트가 뜬다. 당황스럽다.경고등도 신호등처럼 색깔로 위급함의 정도를 구분하는데 노랑은 주의 점검, 빨강은 즉시 점검을 요한다는 신호다.

펑크가 난 줄 모르고 운전하다 난감했던 경험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오늘 켜진 샛노란 경고등은 타이어를 점검하라는 신호이니 당황할 일이 아니라 도리어 감사할 일이다.

삶에도 경고등이 있다면 우리는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마지막 거인'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거인들은 온 몸에 문신처럼 무늬가 있다. 그 무늬들은 계곡의 무늬처럼도 보이고 등고선처럼도 보이고 지도처럼도 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 무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상황 등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점이다. 사람의 몸에도 이런 무늬가 있어서 겉으로 신호를 보내줄 수 있다면... 우리는 몸의 언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몸은 수시로 신호를 보내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알아차린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곤 한다. 건강 뿐 아니라 관계에도 경고등이 켜진다면 .....

인연들을 맺어 온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옷장의 옷들은 많지만 막상 입는 옷은 정해져 있듯... 카톡 창에 지인의 리스트는 많지만 실제로 연락하는 이들은 한정적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관계에 대해서도 신호등 같은 것이 있어서 조언을 구할 수 있다면 삶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횡단보도 앞,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자 일사분란하게 건넌다. 어떤 신호는 점멸로만, 어떤 신호는 남은 시간을 숫자로 보여주기도 한다. 애매한 도로에서 주황 신호는 경계의 신호다.


사람의 몸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우리는 날마다 달린다. 저마다의 주행거리가 있고, 적당한 시기 오일을 갈아주어야 하고, 수시로 연료를 채워야 하고 타이어의 마모 상태도 점검해야 한다. 시동을 걸면 자동차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의 몸은 늘 살아있지만(살아있는 것 같지만) 늘 관심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 내 몸에 경고등이 켜진다면 어떤 색일까? 또 어떤 종류의 경고등이 켜질까?

제일 바라는 일은 경고등이 켜지지 않는 일이다.

"잘 지내?" " 응, 뭐 그저 그렇지" " 별일 없어. 사는 게 다 그렇지. "

사실은 '그저 그렇지 뭐'라는 말은 별다른 일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그저 그런', '그렇고 그런' 삶을 산다는 것에 감사할 일이다. '그저 그렇다'는 말은 경고등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커피가 위장에 들어가면 직유가 발기하고 종이는 잉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