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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Oct 23. 2019

나는 농장에서 쓸모 있는 존재일까..? 上

한국 우프, 우프, GG_105

우프를 시작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농장이  이상한 곳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지만 이와 정반대로 농장은 좋은 곳인데 내가 일을 제대로 못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었다.

농장은 좋은 곳이었다. 그랬기에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생산성에 대해 계속 의심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받고 있는 숙식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걸까..?

나는 농장에서 쓸모 있는 존재일까..?'

그래서 더 지내기로 마음을 먹고 호스트님께 문의드릴 때

 "혹시 제가 더 있는 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농장 일에 약간이나마 도움되는 면이 있다면 더 지내도 괜찮을까요..??"

라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사실 호스트님과 양 선생님은 곧잘 내게 우퍼로 와줘서, 일 잘 도와줘서 고맙다고 계속 말씀하셨었다. 하지만 자기 의심에 빠져있던 나는 그런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었고, 아주 소심하게 문의를 드렸었다.


경험이 쌓이면서 일이 꽤나 능숙해졌을 쯔음, '이제는 내가 좀 쓸모가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던 무렵의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왔고 양계장의 비닐하우스가 찢어져 버렸다. 찢어진 비닐 사이로 보이는 닭들의 모습은 괜히 띨빵해 보이기도 하고 귀여웠지만 이는 닭의 체온 관리, 건강 관리를 고려했을 때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얼른 비닐을 갈아주어야 했다.

비닐을 갈기 위해서는 우선 비닐을 끼울 가로 세로 여백을 잘 고려해 비닐로 하우스 전체를 적당히 덮어야 했다. 대략 학교 교실 3개 정도를 합친 크기의 비닐하우스를 덮어 내는 비닐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다. 내가 본 물건 중 표면적이 가장 넓은 물건이었다.



그냥 무던히 할 수 있는 일을 도시 뜨내기가 너무 감상적으로 받아들인 걸 수도 있겠지만, 비닐로 하우스를 덮는 작업은 어느 정도의 무력감마저 느끼게 하는 작업이었다. 사람의 체구에 비해 비닐은 너무도 커서 뜻 하는 대로 비닐을 부리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가뜩이나 바람도 많이 불어 비닐은 툭하면 작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펄럭거렸다. 더욱이 비닐하우스를 구성하고 있는 철골 구조물에 비닐이 걸려 찢기지 않도록 신경 쓰기까지 해야 했다.

이 어려운 작업에서, 사실 나는 아주 간단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 역할을 맡으면서
'이야 내가 농장에서 쫌 쓸모가 있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고 있다가 양 선생님의

"재성 씨 왼쪽 / 오른쪽으로 가 줘요~, 비닐 당겨줘요  / 풀어줘요~"

라는 지시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실상 말귀 알아듣고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어린아이들도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성인이든 어린애든 어쨌든 지시에 따라 실시간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역할이었다. 농장에 있는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역할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 농사를 접하고 공부했으며 그중에서 농부분들이 자신의 유기농 농사에 대해 직접 적으신 책들을 가장 좋아했다. 생명을 사랑하고 땅을 존중하시는 분들의 철학, 경험, 기술들이 너무 멋지고 따뜻하고 재밌었다. 그런 내게 농사는 장인의 영역 같이 느껴졌다.

그랬었기에 우프를 처음 알았을 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포함한 도시 뜨내기들 데려다가 유기농 농장에서 일 시킨다고 해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문구 그대로 '밥값' 할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농사와 농부분들을 존중하긴 했다. 하지만 존중과 별개로 농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기도 했다. 농사는 한 없이 전문적일 일과 한 없이 한 없이 단순한 일이 함께 한다는 것을 잘 몰랐다.

양 선생님은 하우스에 비닐을 씌울 때 가로 세로에 어느 정도의 여백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비닐이 벗겨지고 나서 보이는 몇몇 망가진 철골 구조물을 어떻게 수리해야 할지 여러 궁리를 하셨고 이는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동안 그저 비닐을 붙잡고 있기만 하는 것도 작업에 있어서 꽤나 중요한 일이었다.

또한 이후에 단순 작업의 끝판왕인 삽질을 엄청나게 하기도 했다. 양계농장의 닭들을 병아리 상태로 농장에 들어와, 자라나 알을 낳고, 노쇠해 비료값과 낳는 알의 채산성이 맞지 않게 되면 새로 들어올 병아리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생애 주기를 따르고 있다.(인간에 의해 그렇게 살도록 구성되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긴 하다..)

노쇠한 닭들이 비켜준 닭장에 새로 들어올 병아리들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늙은 닭들이 병아리 상태로 들어왔을 때부터 꾸준히 쌓여온 톱밥, 볏짚, 모래, 닭똥의 혼합물을 치워내는 일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GG_105와 같이 닭을 건강하게 기르는 농장의 경우에는 계분 비료로도 쓰일 수 있다.)



빽빽이 굳어 있는 혼합물을 곡괭이로 적당히 깨고, 삽으로 퍼내고, 손수레에 가득 찰 때까지 싣고, 정해둔 장소까지 가서 쌓아 둔다. 대략 20평 정도 되는 닭장 20칸에 걸쳐 이 작업을 계속했다.

굉장히 힘들었다. 늦겨울인데도 땀이 엄청나게 났다. 엄청난 노동이었다. 별 다른 운동을 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몸의 윤곽이 진해지기도 했다.

농장에서 이 작업만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작업하는 사람의 수는 고정적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3명이서 하다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 빈자리가 아주 크게 느껴졌다. 정말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힘들고 사람 손 하나하나가 아쉬운 작업이었다.

양 선생님은 병아리를 어느 날짜에 맞이하면 좋을지 신중히 고민하셨었다. 그리고 걷어낸 혼합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혼합물을 걷어 낼 자리에 어떤 재료를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하는지 등을 구상하셨다. 병아리를 맞이하는 일은 이런 고민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는 동시에, 엄청난 삽질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삽질 마친 이후 빈 공간에 어린 병아리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 볏짚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들을 칸마다 들어가 깔아주는 것도 꽤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지내는 동안 비닐을 갈아 끼우는 일, 새로 들어올 병아리를 맞이 하는 일 이외에도 여러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일이 겹치는 경우가 흔치는 않은 듯했다. 양 선생님께서는 농담으로

"재성 씨가 일복이 많네~"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로서는 정말 복이었다. 농사일을 배우고 싶은 나에게 다양한 일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기도 했고, 농사일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뜨내기가 여러 경험을 통해 농사일은 전문성과 단순성을 동시에 요하는 복합적인 일임을 뼈저리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농사일의 복합성을 인지하면서부터

'(특별한 기술도 요령도 없는) 내가 과연 농장에서 쓸모 있는 존재일까..?'라는 자기 의심 앞에서 조금 당당해질 수 있기도 했다. 나의 노동과 호스트님이 제공해주시는 숙박의 교환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교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호스트님과 양 선생님은 참 큰 분들이셨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교환'이라는 문구는 경제적 값어치를 중심으로 이리저리 저울질하고 있던 내게 적당한 답이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는 내가 지낸 우프 생활을 묘사하는 적절한 문구는 될 수 없었다.

우프를 하는 동안
'아니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는 거야???'싶은 순간이 많았다. 내가 한 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비해 과분하다고 느껴지는 마음 씀씀이 었다.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퉁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마음 씀씀이가 아니기도 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마음을 열 필요가 있었다. 너무도 교과서적이고 뻔한 말이지만 사람의 소중함은 쓸모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아름답고도 곧잘 무시되는 명제를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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