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까지 대기업의 부장이었지만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실업자다. 시간은 많은 데 무얼 해야 할지도 몰라 소파에서 뒹굴고, TV 리모컨을 끼고 산다. 넥타이를 한 정장 차림이 어색해지고 캐주얼 복이 편하게 느껴지고 세수를 하고도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 간혹 아내의 낯빛을 살펴야 하며, 이웃의 시선에 위축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아빠의 권위가 예전만 못하지만 오히려 아이들과는 가까운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 야속하지만 전 직장을 떠난 후로 세상은 나의 존재를 무시했고 나는 투명 인간처럼 잊혀 갔다. 사람들이 불러주기 전에는 아직 꽃이 될 수 없었다.
연말이 되어 경영지도사 송년 모임에 참석하였다. 퇴직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에 첫발을 딛게 해 준 자격증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이것이라도 없었으면 쓸쓸하게 연말을 보낼 뻔했다. 그날 동기들과는 처음 인사를 하였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 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oo 전문가‘라고 소개하였다. 경력들이 화려하였고 가지고 있는 꿈의 크기도 컸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었다. 사회 초년병으로 새롭게 시작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자기 스스로 전문가임을 주장한다고 사회에서 곧이곧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과거의 지위나 명예, 권위가 퇴직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기업이나 금융권의 임원, 고위직 공무원 등 화려한 과거를 가질수록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 목에 힘을 준다거나, 위세를 부린다든지, 아무튼 과거에 미련을 두는 사람일수록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연배우였던 인생 1막의 무대는 이미 내렸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 2막의 무대는 전혀 다른 무대인 것이다.
과거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말은 과거의 역사를 부인하거나 잊으라는 말이 아니다. 존재하는 과거를 부인하는 건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험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야 말로 미래에도 소중한 자산이다. 다만 과거의 지위, 타이틀과 같은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다.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주 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 씨, 데뷔 초에 그녀는 화녀, 장희빈 등에서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 후 영화와 연극,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배역을 맡았지만 대부분 조연이었다. 배역을 맡으면 어떤 역이던 최선을 다해 연기에 몰입한 것으로 잘 알려진 그녀가 과거의 화려했던 역할만을 고집했다면 현재의 거물급 배우가 될 수 있었을까?
퇴직 후에 매일 접하는 낯선 환경에서 가치관에도 혼동이 오기 시작했다. 물질적 풍요를 추구했던 지난 삶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행복이란 단어를 곱씹으며 앞으로 살아야 할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 행복에도 방정식이 있다면 행복은 ‘가진 것’을 ‘원하는 것’으로 나누어 1과 같거나 큰 것이라 했다. 소유한 물질의 크기를 욕망의 크기로 나눈 이 공식이 일견 일리가 있다고 본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아마도 ‘가진 것’을 늘리거나 ‘원하는 것’을 줄이면 될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 나만의 비법은 욕망을 크게 낮추는 것이었다. 소유한 재산으로 행복의 크기를 정한다면 나는 평생을 불행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현재의 수준에 맞춰 욕망의 크기를 줄이니 행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들은 넘쳐났다. 커피믹스 한 잔에 만족하고, 고급 음식점이 아니어도 따뜻한 한 끼면 배불렀다. 친구와의 술 한 잔에 흥이 오르고, 아내의 수다에도 미소 짓게 되었다. 간혹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코인으로 대박의 꿈 좇는 중년들을 본다. 내 기준으로보았을 때는 충분히 풍족하다고 생각하는 데 얼마나 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욕심을 내는지 모르겠다.
과거와 오늘의 나는 동일했지만, 신분은 변했다. 겉모양보다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미련을 두는 것, 물질에 욕망을 두는 것은 아직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으면 현실이 보인다. 욕망을 내려놓으면 행복이 찾아온다. 마음을 내려놓고 앞을 보자. ‘미래’, 내 앞에 놓인 무한 가능성의 시간들은 곧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