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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들 Dec 28. 2022

퇴직 허니문 즐기기

퇴직하고 6개월은 여행도 하며 자유롭게

  

   퇴직하고 나니 하루하루 의욕이 떨어지고, 공허한 날들이 많았다. 삶에 대한 회의까지는 아니어도 쉼 없이 달려온 세월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가정을 지킨다는 거룩한 사명은 있었지만 거기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봉급은 입사 후 두어 해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내 손을 거친 적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날까지 봉급 명세서에 만족하며 출근과 퇴근을 기계적으로 이어왔다. 무려 30년의 역사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 공허함을 위안받기 위해 어떻게든 잃어버린 과거를 보상하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뭔가 상징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나의 몫, 나를 위한 선물을 꼭 챙기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기회가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나를 잃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보상. 막상 결심은 하였으나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평소에 갖고 싶었으나 포기했던 것들을 떠올려 봤다. 카메라, 휴대폰, 승용차, 해외여행, 드론, 자전거, 캠핑 도구, 명품 브랜드... 갖고 싶은 것이 많았는 데 그동안 참 잘도 참아왔다. 비록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는 하지만 아내와 상의를 아니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퇴직 보상으로 승용차 구입과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선물 1 : 승용차 구입

   스펙을 고르고 신나게 드라이브하는 상상으로 요 며칠간 잠을 설쳤다. 새 차를 인도받기로 한 날, 밥을 두어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설렘과 기대감, 흥분과 떨림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편 20여 년을 한결같이 가족의 발이 되어준 애마에게는 무척 미안했다. 같이 늙어온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흘렀다.  시동을 걸기 전에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걸면 부드러운 엔진음으로 화답하곤 하던 애마. 차에 대한 험담이나 외제 차에 대한 부러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도 무척 조심했었다. 이렇게 서로 마음으로 연결되었지만 긴 세월에 애마도 지치고 병이 들었다. 기념사진을 남기기로 했다. 작별하는 순간까지도 애마는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한참 동안 차를 쓰다듬고 나서야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함께 해줘 행복했노라고!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새 차는 디자인이나 기능에서 최신 기술을 장착한 중형차였다. 키를 인수받는 손이 살짝 떨렸다. 전시장 밖에 준비된 차를 보니 더욱 흥분되었다. 안내를 받아 차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새 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익숙지 않은 차량 시스템과 기능, 몸으로 전해오는 시트의 낯섦 때문에 긴장되었다. 이렇게 퇴직 첫 선물로 나는 새로운 승용차를 갖게 되었다. 새로운 차로 떠나는 미래로의 멋진 드라이브를 상상해 본다.      


선물 2 : 여행 즐기기

   퇴직은 평소에 동경하던 가족 여행의 좋은 계기가 되었다. 여행은 ‘쉼’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다양하게 느끼고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가족이 여행을 통해 온기를 나누고 마음을 여는 일이야 말로 서민들이 가질 수 있는 소확행 아닌가? 여행은 설렘으로 가방을 싸고 아쉬움으로 다시 가방을 싸는 일이라는 데 그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퇴직하고 우리 가족은 두 번의 국내 여행을 했다. 열차를 타고 강원도 산간과 동해안을 둘러보는 설국여행과 봄기운이 도는 남도의 맛 탐방 여행이었다.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해방감을 느끼며 오랜만에 자유를 실컷 누렸다.

   해외여행은 퇴직 이듬해부터 있었다. 여행의 맛을 본 아내가 더욱 적극적이었다. 해외는 업무차 방문한 적은 있지만 여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가 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아내에게는 더욱 생소한 일이었다. 관심사가 되다 보니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게 여행상품이라는 데 놀랬다. 그렇게 해서 생전 처음 스페인 땅을 밟았다. 커다란 문화 충격을 느꼈다. 말로만 듣고 동경하던 유럽의 풍물을 직접 접하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세상은 넓고 볼 곳은 많은 것인가? 충격은 또 있었다. 일행 중 나이 드신 분의 한마디였다. 그분은 낡은 여권을 보여주며 남아프리카를 여행한 직후 바로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나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12시간 넘는 비행기를 타면서 답답증으로 몸살을 앓던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박히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로 매년 한 번씩 해외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프랑스와 미국 서부 여행은 그렇게 이뤄졌다. 최근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불가피하게 자제하였지만 여행은 삶에 귀한 선물이 되었다.    

  


퇴직 기념으로 나 자신에게 보상을 하였다.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었는데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렇게 해서 지나온 삶의 여정을 일단락 짓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퇴직 허니문. 퇴직하고 3개월~ 6개월 정도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허용이 되는 기간. 가정을 위해 밤낮으로 애써 온 것에 대해 가족 모두가 인정하고 어떻게든 위로하고픈 시간을 말한다. 퇴직 허니문은 퇴직 후 나를 위해 사치할 수 있는 생의 유일한 기회다. 가장 자유롭게 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심리적 허용기간을 초과하면 더 이상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퇴직 허니문을 잘 보내고 새로운 인생 여정을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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