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니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몇 개월간 무위도식하게 되었다. 종일 TV리모컨을 가지고 놀거나 그것이 싫증 나면 간혹 동네 마실을 다니는 게 일이었다. 이와 반대로 아내는 하루 종일 부산을 떨며 좀처럼 쉬지를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많아서 얼굴 맞대고 차 한잔 할 수 없는지 의아했다. 하루는 전업주부인 아내의 일과를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준비하고 아침 상을 물리면 설거지를 하였다. 차 한잔 마시기 무섭게 점심을 준비하고 또다시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였다. 잠시 자리에 앉는가 싶더니 장 보러 시장엘 갔다가 저녁 준비하고 상을 물리고 나면 7시가 되었다.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설거지와 집 청소, 빨래, 쓰레기 분리, 강아지 산책 등을 하고 나면 하루 해는 훌쩍 지나갔다. 하루의 대부분을 가사에 쏟다 보니 여유가 없다. 반복되는 가사로 종일 피로해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다. 회사 일이 일의 전부인양 으스대던 날들이 부끄러워졌다. 가사가 이리 많다는 것도, 단 하루도 미룰 수 없는 것이라는 것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봉급을 전부 주어도 과하지 않은 업무량이었다. 성과도 없고 당연히 보상도 없는 일을 표 나지 않게 묵묵히 해온 아내를 다시 보게 되었다.
가장으로 책임을 다 해온 세월이 30년. 어느 가장인들 퇴직할 때까지 가족을 위해 책임을 소홀히 했을까? 봉급은 생활의 기반이였을테니 가장의 퇴직이 가져온 가정 경제의 타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타격 못지 않은 것은 집안에서의 새로운 역할 변화였다. 더 이상 종전과 같은 가장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는 대신 가사의 공동 분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퇴직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뭐 해 가끔 청소를 하거나 빨래 개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런 어느 날 아내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여보, 당신이 가끔씩 이렇게 가사를 도와주니 내게도 그만큼 여유가 생겼어요. 그 시간에 차도 마시고 음악도 듣게 되어 너무 좋아요” 아내의 느닷없는 고백에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조금씩 가사를 분담하면서 아내는 한층 여유를 찾게 되고 웃음도 잦아졌다. 평소 하고 싶었던 취미도 새롭게 시작했다. 직장에서 퇴직하듯이 아내도 가사로부터 퇴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용케 가사를 도와준 덕분에 아내도 덩달아 가사에서 퇴직하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책임지고 있다. 퇴직하고 다녔던 요리 강습이 나이 들면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직업병처럼 팔이 저린다는 아내를 대신에 재료를 다듬어 주다가 이제는 아예 본업처럼 되어버렸다. 음식 준비를 할 때면 아내의 부름을 받아 조리대에 서게 되었다. 하고 보니 현대판 우렁서방 노릇도 할만하였다. 해마다 김장을 하고, 된장을 담가 먹는 일, 명절에 요리를 만드는 일이 나 없이는 어렵게 되었으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시면 대성통곡할 일이나, 우리 부부는 이렇게 함께 늙어가고 있다.
퇴직하고도 가장의 위세를 부리거나 가부장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100세 시대, 초고령 사회에서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가장의 역할 재정립이다. 다시 말해 가사를 분담함으로써 아내에게도 여유를 주는 일이다. 이를 나는 아내의 ‘가사 퇴직’이라고 부른다. 현대판 우렁서방이 되는 일이야 말로 아내를 가사에서 벗어나게 하고, 아내에게 여유를 선물하는 일이다. 아내도 노후에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내에게도 이루고 싶은, 가슴속 깊이 묻어둔 꿈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아내가 가사에서 여유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