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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성 Jan 02. 2019

ep10.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짧은 tip 

10년 전 강남의 모 병원에서 근무했을 때 일이다.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원무과 직원들과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나까지 다섯 명 정도였던 거 같다. 난 방사선사지만 두루두루 친했기 때문에 타 부서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우리는 지하철 안에서 서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 중이었다. 


잠실역을 지날 때 한 여직원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남자 친구와 며칠 후 기념일인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모든 연인들은 관계가 지속될수록 새롭고 특별한 것을 찾으니까 이해가 됐다. 동행하던 여직원들은 놀이공원이라던지 여러 가지 맛집을 추천하면서 퍼즐을 맞춰가고 있었다. 


그 당시 잠실경기장에서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한창이었다. 잠실경기장에서 진행하는 축제 같은 행사였고,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작품들을 전시하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 소품들도 판매하는 그런 좀 큰 규모의 행사였었다. 나도 참석을 했었고,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행사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그 여직원에게 잠실경기장을 추천해줬었다. 


하나 반응은 정말 싸늘했다. 돌아온 대답은 '선생님. 저희가 디자인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곳을 왜 가요? 깔깔깔깔'. 영문도 모른 체 순간 난 엉뚱한 사람이 되었고, 뭐가 재밌는지 서로 깔깔댔다. 당시에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난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었다. 


난 어릴 때부터 늘 미술관과 박람회 같은 곳을 즐겨갔었다. 새로운 디자인들을 볼 때면 늘 감동받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어서 아직도 참 좋아하는 곳이다. 그런 아이디어가 음악에 반영되기도 했기 때문에 미술관 같은 문화생활은 늘 즐거웠다. 하지만 나의 일상이 그들에게는 생소하고 쓸모없는 경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감동이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영화나 책을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누군가에게 따듯한 말을 들을 때 감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똑같은 결과물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아닐 수도 있다. 


올드팝은 아버지에게 감동이었지만 내 조카에게는 감동이 아니다. 블랙핑크는 내 조카에게 감동이겠지만 우리 어머니에게는 감동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쯤 되면 창작자로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난 상대방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팔짱을 끼고 마술을 보는 사람들을 본 적 있는가? 마술사에게 속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보는가 하면, 속임수를 쓰는 타이밍을 찾는 재미로 마술을 보는 사람도 존재한다. 또한, 마술은 어차피 장치를 이용한 기술이기 때문에 아예 시시해서 보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은 적어도 마술에서 감동을 얻을 수 없다.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클로즈업한 패널들의 얼굴을 보면 감동받으려고 작정한 모습이 역력하다. 연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연출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감동받은 모습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내가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던 감정이 메말라 있으면 감동은 없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삶에서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삶에 감동은 없다. 가족과의 저녁식사가 감동적이지 않은가? 그럼 가족과의 저녁식사에서 앞으로 감동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삶은 메말라 간다. 


결국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느낀다. 이것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마음을 고쳐먹으면 되는 일이니까. 물론 그게 쉽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닥칠지 모르는 감동을 받기 위해 난 오늘도 준비를 하고 있다.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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