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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성 Jan 04. 2019

ep11. 익숙함이라는 덫

#제 3의 눈을 뜨다

내가 한국에 여행 온 것처럼 살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우리의 삶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매달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가족을 돌봐야 하고, 사고 싶은 물건들은 매일 쏟아진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때로는 그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을 꾸며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복잡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각자가 갖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절대적으로 돈이 필요하다는 걸 모두가 실감한다. 돈은 항상 모자라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면서 그 길이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견디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얼마큼 모아야 할지, 모으면 정말 행복해질지 그들도 장담은 못하겠지만 말이다.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는 걸 난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만약 내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핸들을 꽉 잡고 서서히 방향을 틀어보려 했다. 그리고 이왕 가야 할 길이라면 콧노래를 부르며 가고 싶었다. 그래서 주어진 상황은 그대로 둔 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현실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나 자신을 조금 바뀌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내가 첫 번째로 한 일은 한국에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설렘과 들뜨는 미묘한 감정을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으면 참 좋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한국을 여행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먼저였다. 


다행히도 한국의 풍경과 야경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섬과 바다를 비롯해, 낙산 공원과 남산 등지에서 보는 야경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이 나라에는 훌륭한 먹거리도 많아서 여행지로는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여행지처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익숙함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만 몇십 년을 살면서 도시가 변화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기 때문에 익숙함을 떨쳐내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림으로 내걸던 영화 간판이 사진으로 대체되었고, 1500원을 주고 비디오를 빌리던 우정 비디오 가게의 위치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했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를 지켜보면서 자라오다 보니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익숙함을 떨쳐내기 위해 내 몸의 감각을 온전히 무언가를 느끼는 데 사용했다. 밥을 먹을 때도 맛을 음미하면서 먹었고, 영화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온전히 수용기를 통한 감정을 느끼려고 집중했다. 


아가들이 처음으로 밥을 먹었을 때, 처음으로 무언가를 접했을 때를 상상해보면 내가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길거리를 걸을 때도, 거리에서 강아지를 마주할 때도 내 감각은 새로움을 느끼기 위해 깨어 있었다. 길거리에 그어져 있는 반듯한 횡단보도까지 무심코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햇볕 좋은 어느 날 일산 호수공원에서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다가, 지나치는 수풀이 우거진 나무들이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했었다. 햇빛은 강렬했으며,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선명했고, 바람은 하늘하늘 시원했으며, 나뭇잎 하나하나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의 감정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감정을 예로 들자면, 나이가 들고 어느 날 문득 주방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흰머리가 새롭게 보이거나, 아버지의 주름과 아버지와의 대화가 새롭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날 이후부터 난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감각이 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하루하루가 새롭다. 매일 먹는 밥도,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도 새롭게 느껴진다. 점점 익숙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한국을 여행지로 생각하는 첫 단계는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다음은 여행객처럼 행동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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