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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회와 과메기

1월의 음식

12월이 겨울의 진입로라면 2월은 겨울의 퇴로다. 1월이야말로 겨울이라는 전장의 중심이다. 요컨데 매우 정확하게 추운 계절인 것이다. 수면양말을 신지 않으면 밤은 지옥이 되고 패션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뜨뜻하게 입지 않으면 외출은 셀프 고문이다. 이 한 문장을 쓰는데 벌써 짜증이 날 정도다. 그 정도로 추운 게 싫다. 정말 싫다. 이 짜증나고 화나는 계절에 따뜻한 곳으로 도망가지 않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이 없어서, 또 하나는 한 겨울에 제철을 맞는 음식들이 있어서. 


겨울이 싫은 건 생선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특히 등푸른 생선들은 나만큼 겨울을 증오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추운 겨울에 그토록 몸에 지방을 늘릴리가 없으니. (물론 사실은 산란철을 앞둬서 그렇다. 등푸른 생선의 산란기는 보통 늦겨울부터 늦봄에 걸쳐 있다.) 흔히 겨울의 등푸른 생선하면 방어를 떠올린다. 지방이 꽉 차 오른 겨울의 방어회는 훨씬 비싼 돈을 줘야 먹을 수 있는 참치못지 않다. 방어라고 같은 방어가 아니다. 대방어, 한 10kg이상의 큼지막한 놈들은 진정한 겨울의 맛을 낸다. 허나 몇 명이 모여서 그 큰 놈을 먹을 수는 없는 법. 요즘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모듬회를 파는 데가 많다. 발품을 팔아 아예 15kg가 넘는 개체를 잡아서 나눠 파는 집을 찾아 보자. 동네 횟집에서 먹었던 방어와는 다른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붉은 살 속 곳곳에 꽉 녹아든 그 눅진한 지방의 맛이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찔 것 같지 않은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기름진 맛은 곧 느끼함과 사촌이다. 참치회가 그러하듯, 아무리 맛있는 방어도 먹다보면 질린다. 내가 겨울의 대방어를 만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삼치를 알게 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구워먹는 생선인줄만 알았던 삼치를 회로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친구와의 남도 식도락 여행중이었다. 친구는 해남에서 법무관으로 근무했던 덕에 그 지역의 맛집과 음식을 훤히 꿰고 있었다. 어느 겨울, 그 녀석을 만나러 해남을 갔고 이 곳에서 꼭 먹어봐야할 음식으로 세 개를 꼽았다. 키조개 삼합과 청둥오리, 그리고 삼치회였다. 키조개와 한우 등심, 버섯을 함께 먹는 키조개 삼합은 제철이 아니었으니 패스, 천연기념물인 청둥오리를 먹었다가는 은팔찌 찰까봐 패스. 그런데 삼치? 삼치를 회로 먹는다고? 회라면 자다가도 뛰어 나갈 정도로 좋아했던 때였다.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삼치회를 취급한다는 가게로 향했다.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다. 아뿔싸, 문이 닫혀 있었다. 듣자하니 좋은 삼치가 없으면 장사를 안한다는 거였다. 일단 발동한 호기심,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서울로 올라와 수소문을 해보니 파는 곳이 있었다. 갔다. 시켰다. 냉동한 삼치를 썰어서 회로 내왔다. 역시 오래 전이라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별다른 맛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럼 그렇지, 삼치회가 그렇게 맛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먹었겠지, 하며 넘어 갔다. 


꽤 시간이 지났다. 제주도에서의 겨울이었다. 현지인과 약속이 잡혔다. “뭐 드시겠어요?” “글쎄요, 겨울이니까 고등어회나 방어회가 생각나는데…” “그럼 삼치회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삼치요? 그거 맛있나요? 예전에 한 번 먹어봤는데 그냥 그렇던데.” “삼치는 딱 추울 때만 회로 먹는 겁니다. 다른 계절에는 팔지도 않아요.” 경험치 증진하는 셈치고 그를 따라 나섰다. 제주에서도 파는 곳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렇게 간 곳은 추자도에서 삼치잡이 어선을 운용하는 선주가 직접하는 식당이었다. 방어, 고등어를 다 팔았지만 삼치를 주문했다. 스끼다시가 쫙 깔리고 이윽고 삼치회가 등장했다. 나는, 놀랐다. 일단 비주얼이 달랐다. 서울에서 먹은 냉동 따위가 아니었다. 잡는 즉시 손질하여 숙성을 한 삼치의 색깔은 연분홍색 혹은 살색이었다. 일가친척(?)들에 비해 근육량은 적고 살 속의 수분함량이 높은 덕에 한 눈에 보기에도 부드러웠다. 마치 5월의 가파도 청보리밭이 바람을 타고 눕듯이 접시에 한 가득, 연분홍 빛 부드러운 살이 한 방향으로 결을 이뤘다. 


고등어도 그렇고 삼치도 그렇고 제주에서 먹는 방식이 따로 있다. 회를 한 점 잡고 양파를 살짝 절여낸 간장 양념에 찍는다. 그리고 구운 김에 올려 밥 한 젓가락과 함께 싸먹는다. 느끼함을 잡아주기 때문이란다. 그 방식대로 제조하여 입에 넣었다. 음?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뭔가가 입에 퍼졌다. 메뉴얼을 무시하고 회만 집어 간장에 살짝 찍어 먹어 봤다. 세상에,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게 딱 맞았다. 흔히 회란 쫄깃한 식감으로 먹기 마련이다. 활어를 선호하는 한국에서는 더 그렇다. 그런데 삼치란 놈은, 한 겨울의 삼치란 놈은 왠만한 일본식 숙성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말 부드럽다. 그러면서 흐물거리지 않는다. 입에 착 붙는다. 그 부드러움 속에 등푸른 생선의 고소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만약 담백함과 느끼함 사이에서 삼치의 좌표를 찍는다면, 담백함 쪽에 살짝 기운 고소함일 것이다. 삼치는 서해와 남해에서 고루 잡히는 생선이지만 추자도 쪽에서 잡히는 삼치가 회로 먹기 딱 좋다는 설명이었다. 물살이 거세 활동량이 많아 근육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에서 먹는 삼치도, 남도에서 먹는 삼치도 대부분 추자도산이 많은 게 그래서다. 


그 후 겨울에 제주도에 갈 일이 있으면 방어는 안 먹어도 삼치는 꼭 먹었다. 12월이건 2월이건 삼치회를 파는 때에는 무조건이었다. 그래도 1월을 따라 갈 수 없었다. 가장 추울 때의 삼치는, 떡국처럼 한 해를 시작하는 음식이 됐다. 그 이후 나는 지인들에게 말하곤 한다. 1월에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삼치회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즐거운 연례 행사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그런 말에 이끌려 함께 삼치회를 먹었던 이들 역시 취향을 불문하고 다들 삼치의 맛에 반해 버렸다면 신뢰도가 올라 가려나. 


1월의 즐거움 하나를 더 꼽으라면 꼬막과 자연산 생굴, 그리고 과메기 사이에서 망설이게 된다. 모두 생각만으로도 소주가 땡기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게 한다. 할 말도 제법 된다. 고통에 가까운 숙고 끝에 나는 과메기를 골랐다. 알다시피 과메기는 겨울 음식이다. 꽁치나 청어를 매서운 바닷 바람에 얼리고 녹이는 과정을 반복해서 만든다. 두 종류가 있다. 통마리와 배지기. 통마리는 그야 말로 통째로 덕장에서 말린 걸 뜻한다. 배지기는 대가리와 내장을 때낸 후 말리는 방식이다. 이왕 과메기를 먹는다면 통마리를 먹어야 한다. 건조와 숙성 기간이 긴 탓에 구수한 맛이 한결 높다. (혹자는 비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계식 건조가 힘들어 해풍에 말린다. 과메기의 주산지인 구룡포에서는 약 보름동안 말린다. 그런데 지난 정권에서 과메기를 밀다보니 전국적으로 수요가 폭증했다. 보름씩이나 건조해서는 회전율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해풍이 아닌 기계로 건조하는 과메기가 등장했다. 해풍에 건조하더라도 배지기가 대세가 됐다. 빨리 건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과메기를 먹기 위해서는 통마리로 주문 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구 온난화 덕에 12월-1월 정도나 통마리를 먹을 수 있다. 당연히 1월이 더 추우니 그 맛도 더 좋다. 특히 청어 통마리는 과메기의 꽃이다. 어획량이 급감하여 꽁치에게 메인의 자리를 내줬지만 몇 년 전부터 청어가 다시 돌아오면서 비교적 쉽게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래봤자 청어 덕장은 구룡포에서도 딱 한 군데 밖에 없다고 한다.)


청어의 기름은 꽁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양과 질 모두 압도적이다. 뱃속에서 얼고 녹는 걸 반복하며 그 기름은 살을 꾸덕꾸덕하고 구수하게 만든다. 비닐 장갑을 끼고 대가리를 떼고 살을 발라 초고추장에 찍어 야채와 함께 먹어 보라. 만약 당신이 과메기라는 말에 조건반사적으로 음주 욕망이 발현되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꽁치 과메기를 쳐다도 안보게 될 것이다. 인생의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간 기분마저 들 것이다. 특히, 암놈의 배를 갈랐는데 알이 들어 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식도락계의 레어템을 획득했다. 어란이라고 들어 봤나. 청어알을 참기름을 발라 말리고 또 참기름을 발라 말리고… 이 과정을 반복해서 만드는 고급 음식 말이다. 그렇다. 바로 그 청어알이다. 제 몸의 기름으로 말려진 청어 과메기 속의 알을 맛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까지 읽으며 혹시 군침이 도는 사람이라면 소주도 땡길 게 분명하다. 마시자. 새해 첫 날부터 마셔줘야 참된 술꾼아니겠는가.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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