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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 투명의 매혹

강원도 인제에 다녀왔다. 아침으로 황태국을 먹은 후 배도 꺼트릴 겸 산에 올랐다. 눈내린 후 절경을 이룬다는 자작나무 숲길이었다. 몸과 마음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힘든 등반이었지만 녹지 않은 눈밭의 자작나무 군락은 꽤 장관이었다. 하얀 땅과 하얀 목피가 북유럽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도 보였다. 평생 남을 사진 한 장을 위해 칼바람에 맨살을 드러내는 열정이라니. 애인이 있다면 그 모습이 부럽기도 했을테지만 그렇지 못한 처지다보니 속이 쓰렸다. 술 생각이 간절했다. 보드카가 마시고 싶었다. 

보드카는 자작나무와 밀접한 술이다. 15세기의 러시아에 증류기술이 전파되면서 러시아의 문화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그 이전 러시아에서는 미드(mead)라는 벌꿀 발효주를 주로 마셨다. 발효주의 도수는 보통 20도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증류주는 마음만 먹으면 90도 이상도 만들 수 있다. 혹독한 동토의 나라에서 추위를 잊기 위해서는 독한 술이 효과적일터, 그래서 보드카는 금방 미드를 밀어내고 러시아의 국민주가 됐다. 


보드카는 순수하다. 무색이요 무취이며 무미다. 설원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아무도 밟지 않았을 때이듯, 보드카 또한 한없이 투명할 때 본령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감출 수 없는 알콜의 향과 맛이 술이 가진 날 것의 본질을 차갑게 과시한다. 보드카가 이런 순수한 술이 된 이유는 러시아의 냉대기후때문이다. 고급 증류주를 얻기 위해서는 떡갈나무로 만든 통에서 수년 이상 숙성하는 과정이 필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떡갈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따라서 숙성을 할 수 없었다. 과일이나 보리 대신 감자와 귀리, 호밀 같은 한대성 작물이 풍부했다. 그래서 곡물을 발효시켜 원주를 만든 후 증류하는 게 초기 보드카 제조 과정의 전부였다. 


이렇게 만든 보드카는 온갖 불순물이 섞여 역하다. 아무리 추위를 이기려 마셨다지만 마시는 즐거움이 없는 술은 술이 아니다. 쓴 약에 불과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향을 가했다. 바닐라부터 고추까지 다양했다. 무엇인가를 더하여 역한 맛을 지우던 시도가 끝난 건 18세기였다. 증류후 자작나무 숯에 여과를 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서 불순물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보드카는 이렇게 덧셈이 아닌 뻴셈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신은 러시아에 떡갈나무대신 자작나무를 선물하여 우리가 보드카를 마실 수 있게 한 것이다. 


보드카가 금지됐던 시절이 있다. 제정 러시아를 멸망시킨 볼쉐비키 혁명의 주역, 레닌의 집권기였다. 자신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기에 그는 ‘술이야말로 공산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데 방해가 되는 병적인 존재’라고 여겨 강력한 금주령을 실시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금주령이 지켜진 적은 없었다. 1920년대 러시아 농가의 30%이상이 엄벌을 무릅쓰고 밀주 보드카를 담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어떤 체제에서든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는다. 


소비에트 시절의 음악도 레닌 정권하의 보드카와 마찬가지 신세였다. 서구의 대중음악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젊은 층은 엑스레이 필름에 스크래치를 내서 레코드를 만들었다.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우리에게도 알려진, 소련을 대표하는 가수인 블라드미르 비소츠키는 생전 단 한 장의 앨범도 취입할 수 없었다. 공식적인 공연조차 열 수 없었다. 하지만 가정용 테이프 레코더, 심지어 촬영용 카메라를 통해 녹음된 그의 음악은 독재에 신음하던 인민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고, 테이프에 담긴 조악한 소리는 금단의 물약처럼 동토를 적셨다. 1980년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을 때 수만명이 장례식장에 모여든 건 레닌 시절의 보드카와 같던 그의 존재를 보여주는 단초다. 1970년대 그의 음악을 서방에 소개했던 프랑스 샹송가수인 샤를 아즈나부르는 이렇게 말했다. “비소츠키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토해낸다.” 그는 비소츠키의 공연을 처음 보자마자 잔을 가득 채운 보드카를 비웠다고 한다. 비소츠키의 음악은 화려하지 않다. 투박하고 거칠다. 어쿠스틱 기타 한대로만 노래했기에 전하고자 하는 바가 오히려 뚜렷하다. 향과 색으로 마시는 이를 미혹하는 다른 술과 달리 투명한 알콜향만으로 그 본색을 숨기지 않는 보드카처럼. 혹한의 시절, 인민의 몸을 덥힌 건 보드카였고 마음을 달랜 건 비소츠키였다. 


 손발이 꽁꽁 어는 추운 날, 보드카 한 잔을 들이킨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투명한 알콜향이 위장을 치고올라 다시 밖으로 향한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만 노래했던 외에는 비소츠키의 목소리에 인생의 고단함이 뚝뚝 묻어 있듯, 입김에 실려 날아가는 알콜향에 날숨의 온기가 배어있다. 술이 우리를 위로해주는 딱 그만큼의 온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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