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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킬라 선라이즈

사랑의 달콤함, 이별의 씁슬함

1972년 롤링 스톤즈는 대규모 북미 투어를 벌였다. 1969년 비틀즈의 해체 이후 열린 춘추전국, 롤링 스톤즈가 그 누구보다 새로운 왕좌를 차지할 자격이 충분함을 보여주는 화려하고 거대한 투어였다. 샌 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친 후 그들은 전설적인 공연 기획자인 빌 그레이엄이 주최한 파티에 참석했다. 거나하게 취한 보컬 믹 재거에게 바텐더가 오렌지 색의 잔을 내밀었다. 이름하여 데킬라 선라이즈. 달콤하면서도 알콜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이 한 잔에 믹 재거는 반하고 말았다. 투어 내내 멤버들과 스탭, 게스트들과 함께 마시고 또 마셨다. 후일 이 투어를 ‘데킬라 선라이즈 투어’라 부를 정도였다. 롤링 스톤즈같은 거물이 전 미국을 돌며 각 지역의 유명 인사들과 나누는 술이 되다보니 캘리포니아를 넘어 전국의 바로 널리 퍼졌다. 마가리타가 독주하던 데킬라 베이스 칵테일 세계에 롤링 스톤즈는 이렇게 데킬라 선라이즈에게 광채를 부여했다.


데킬라 선라이즈는 1930년대 아리조나에서 탄생했다. 데킬라와 오렌지 주스, 그라네딘 시럽이 사용되는 지금의 레시피와는 달리 데킬라와 크렘 드 카시스, 라임 주스와 탄산수를 혼합해서 만들었다. 크렘 드 카시스의 색이 진보라색임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1970년초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들어진 현재의 레시피가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칵테일의 완성은 이름이다. 불렀을 때 입에 착 붙고 의미 또한 운치가 있을 때 기억된다. 폭탄주에 사교와 로맨스가 없는 이유도 이 이름에서 어떤 운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바텐더들은 자신들의 창작 칵테일에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다. 호사가들은 여기에 구라를 섞는다. 믿거나 말거나 한 스토리를 덧붙인다. 맛과 이름, 이야기가 만나 문화가 된다. 만약 데킬라 선라이즈가 오렌지 데킬라 같은 이름이었다면 아마 믹 재거가 그 한 잔에 반할 확률도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오렌지 주스와 그라네딘 시럽이 층을 이뤄 만드는 다층의 색이 야릇한 흥분을 부르고 데킬라의 거칠고도 강인한 맛과 향은 반전의 자극을 부른다. 데킬라 선라이즈가 작업용 칵테일로 사랑받는 이유도 이 로맨틱한 터프함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멕시코 여행을 할 수 있 건 아닐테지만, 판초를 두르고 맞이하는 리브레 마야의 아침을 상상하게 될 테니까.


롤링 스톤즈는 그토록 사랑한 데킬라 선라이즈에 대한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이글스가‘Tequilla Sunrise’를 남겼다. 이 술이 유행하고 있던 1973년, 두번째 앨범 <Desperado>에 수록했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씁슬함을 상징적인 가사와 처연한 멜로디로 그린 이 명곡의 가사는 ‘It's another Tequila sunrise’로 시작한다. ‘또 한 잔의 데킬라 선라이즈’로 번역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말에는 다른 뜻도 있다. 데킬라를 퍼마신 후 나타나는 숙취다.


해석이야 각자 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사랑은 달지만 이별은 쓰니까.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사랑은 더욱 쓰디 쓰니까. 세상이 끝난 듯한 이 절망감에 단 맛은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 독하고 쓴 술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임을, 잔을 비우며 깨닫는다. 사랑을 몰랐을 때는 왜 술을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별을 알게 된 지금에야 술의 맛을 느끼는 것이다. 노래의 화자도 데킬라를 물처럼 들이마시며 어른이 된다는 기분을 넌지시 만났으리라. 진정 바라는 것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질듯한 숙취에 녹이며, 또 한 잔하듯 노래를 읇조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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