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중국에서

중국, 단오절 단상

중국 시댁의 여름을 시작하는 루틴

by Groovycat


코로나 확진자가 지역에서 세 명이 추가되어 다음 주에 아이들이 학교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화상통화로 얘기를 한 게 화근이었다. 안 그래도 당신 손자들이 옆에 없어서 애가 닳는 시어머니를 더 조바심 나게 만든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남편에게 얘기하니 자기도 그냥 웃는다.

핸드폰 화면 너머로 보이는 중국은 굉장히 더워보인다. 연신 땀을 닦아내는 시어머니, '오늘은 그래도 34도 밖에 안 돼서 괜찮아. 며칠 전엔 38도였는걸'이라며 진이 빠져있는 남편을 보니 이제야 여름이구나 싶은 느낌이 든다.


여름을 여는 절기, 단오(두안우端午)가 오면 돌이킬 수 없는 여름이 되고, 중국에선 우리 집만의 루틴이 있다.

그 때부터는 구두쇠 시어머니도 전기세 걱정 안 하고 에어컨을 틀고, 냉동고엔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놓는다. 시장에서 머리통만한 작은 수박을 서너 개 사와서 서늘한 곳에 쟁여두어야 하고 아침 일찍부터 물을 끓여서 식히기를 여러번 반복하여 언제라도 물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둔다.

더워서 밥맛이 없어도 아이들과 중국에 있을 땐 단 한 끼도 거르지 않으시던 어머니도 혼자 계시는 지금은 필수 영양소에만 집중하시지만 매일 한 두개 먹는 아이스크림과 수박 반 통의 루틴은 빼먹지 않으신다. 그리고 단오절을 전후하여 약 보름 정도는 각종 종즈(粽子)도 하루에 적어도 두 개 이상은 드신다. 그것도 종즈 위에 설탕을 잔뜩 부어서 말이다.

粽子1.jpg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흑미 종즈, 안에는 대추와 팥, 콩 종류가 들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중국 절기 음식이 두 가지가 있는데 탕위엔(汤圆)과 종즈(粽子)이다. 탕위엔은 정월대보름에 종즈는 단오에 먹는다. 찹쌀과 오곡에 팥앙금을 넣어 대나무 잎에 감싸서 쪄내는데, 오곡의 향긋함과 팥앙금의 달콤함, 중간에 랜덤으로 박혀있는 달큰한 대추가 대나무 잎의 향과 어우러져 든든하고 기분 좋은 먹거리가 아닐 수 없다.

粽子.jpg 내가 살던 아파트에선 아침만 되면 찜통에서 대나무 잎의 향긋한 냄새가 진동을 했었다. 그러면 아파트 주민들은 좀비 마냥 슬리퍼 질질 끌고 종즈를 사러 갔었지...
슈퍼.jpg 인터넷에서 가져온 종즈 사진. 종즈는 원래 전통시장에서 사야 제맛인데... 겉으로 보아선 다 똑같지만 묶은 실 색깔로 속재료를 구분한다.

북방 종즈는 팥앙금이나 대추 같은 달콤한 맛이 많고, 남방에는 고기를 넣은 것이 많다. 난 단연히 북방 종즈가 좋다. 남방 종즈는 어쩐지 김밥에 젤리를 넣은 기분이랄까.

아이들과 여름 방학에 시댁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코로나라는 핑계도 있고 아이들도 크니까 시어머니에게도 부담이 될까 걱정이다. 하지만 단오의 향긋한 종즈는 항상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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