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중국에서 2, 30대를 보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국에 와서는 적응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13년을 철저히 현지인들과 살아서 그런지 내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조선족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꿈을 중국어로 꾸는 건 중국에서 3년도 안 되어서부터 시작되었고 생각의 기본 틀이 중국인처럼 변해버린 느낌도 있었다.
내가 없는 13년 동안 한국은 변해있었고, 내 친구들도 변했고, 나도 변해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락이 없던 친구들을 하나둘 만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주 만나는 멤버는 거의 정해지게 되었다. 생업이 있고 자식이 있고 남편이 있다 보니 만나는 게 자유롭지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초등학교 추억부터 지금 남의 편 욕까지 소재는 항상 다채롭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스펙터클했다.
하지만 난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순간에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게 되었다. 도통 생각이 안나는 거다.
고등학교 시절 잠깐 단짝이던 친구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제야 그 친구와 나의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 내게 되었다. 끄집어낸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서랍에 구겨 넣었거나 접어 넣었거나 깊숙이 들어있던 과거의 일들을 꺼내보니 중간중간 손상된 기억도 왜곡된 기억도 바탕색이 칠해진 어렴풋한 배경 사진도 나왔다.
기억을 복기하느라 한참이 걸렸다. 거기에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니 그날 저녁은 잠을 밤새 설쳤다.
나름 촌동네라 고등학교 시절엔 전교생이 100명이었는데도 얼굴이 가물가물하고 친구들과 대화 중에 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냥 이제는 듣고만 있다.
중국에서 13년을 나 자신도 잊고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친구들과 기억을 복기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수학은 의외로 암기 과목인데, 풀이 방식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풀이 방식을 하루 뒤, 일주일 뒤, 한 달 뒤 이렇게 복습을 해주면 탄탄하게 기억이 자리 잡게 된다. 내가 깨달은 이것을 난 내 기억에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내 기억은 너무 깊숙한 곳에 넣어져 있어 그것을 꺼내는 순간 바스라져버린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 어르신들은 고스톱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방금 계산한 고스톱 점수를 기억하고 내가 뭘 먹을지 선택하는 순간 바로 집어야 한다. 이제 난 학창 시절 추억에 대한 미련은 버리기로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냥 웃으면서 동조해주면 되고 지금의 기억만이라도 순차적으로 복기하려고 한다.
아이들과 가족들과의 기억이 달아나지 않게, 서랍 속에서 바래져서 바스러지지 않게, 구글 사진이 귀띔해주는 작년 사진이 뜨면 아이들과 앉아서 ‘우리 작년에 이거 했었는데’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선 클라우드 공간부터 넓혀야 하나?
<시간 순으로 아들내미 사진, 매년 생일 때마다 찾느라 힘들다>